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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01. 2024

19. 응급의학과 의사의 실력이란.

나는 어디쯤에 와 있을까.

너는 어떤 의사가 되고 싶니, 라는 질문에는 항상 내 대답은 같았다. 실력 있는 의사요. 그 바람이 나를 많이 버티게 해주기도 하고, 성장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요즘은 고민거리가 된다. 실력이란 뭘까, 이것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은 빚을 이제 갚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요즘 드는 생각 하나 더, 그래서 그게 밥 먹여주는 세상은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것. 어쩌면 너무 순진했던 지향점이었다. 


임상의사의 실력은 어떤 걸로 말할 수 있을까. 


수술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려운 수술을 몇 례를 하고, 몇 례를 성공시켰나에 달릴 것이고, 내과의사의 경우도 내시경 시술이나 심혈관조영술 시술 케이스, 뭐 이런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 같은데 나같은 응급의학과 의사의 실력은 누가 어떻게 이 사람이 실력이 있다 없다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 나는 '실력'이라는 허상을 좇아서 이제까지 달려온 사람이 되는 걸까. 


인턴 때랑 전공의 때는 큰 고민없이 말할 수 있었다. 할 줄 아는 것이 많은 사람. 못 잡던 중심정맥관을 잡을 수 있게 되고, 기도 삽관을 할 수 있게 되고, 중환자를 볼 수 있게 되는 사람. 전임의 때도 그런 고민을 떨치지 못해서 중환자 세부 전문의를 하고 싶었던 것도 컸다. 내 실력이 지금 겨우 응급실에 온 환자, 소아과 올 때까지 버티는 수준밖에 안 되는데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많았으면 좋겠다는 조금은 순진한 생각. 내가 모든 과의 모든 분과를 다 섭렵할 수는 없고, 어떻게 수련을 받는다고 해도 그 길만 가는 사람에 비해서는 당연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태생적으로 제너럴리스트인데 스페셜리스트만큼 모든 걸 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어찌 보면 과했던 걸지도 모른다. 


일단 응급의학과 의사의 실력은 어떤 걸로 판가름이 날까. 내가 생각하는 실력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어떤 환자가 와도 무서울 게 없어보이는 분. 할 엄두도 안 나는 기도삽관도 쉽게쉽게 하시고 못 하는 술기가 없고,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중환자도 어떻게든 살려내시는 분. 여쭤보면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은 분. 응급실의 과밀화에 대해서 항상 큰 그림을 그리면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원을 분배하는 것에 탁월한 분. 화술이 남다르고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서 어지간한 까다로운 환자들도 팬이 되게 만드시는 분. 여러 직종과 소통이 원활하신 분. 재난 상황에서 재빠르게 위기상황에 대응할 시스템을 즉각적으로 구성하고 진두지휘하는 분. 주요 학술지에 논문을 찍어내다시피 싣는 분. 


다들 '실력있다'라고 한 마디로 묶을 수 있는데, 다 다른 결이라 어떤 것이 내가 바라는 실력인지 모르겠다. 진료, 연구, 교육 이 3가지를 생각한다고 쳤을 때, 연구능력 젬병인 나는 이미 연구를 하는 영역에서는 떠나왔고 교육 역시 그러하다. 교육이야말로 기다릴 줄도 알아야하고, 재미와 실속을 동시에 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교육자로서의 나는 성질도 급해서 결국 내가 해버려야 성에 차는 사람이라 이런 면에서는 실력이 없다. 교육에 대해서도 이미 어느정도는 떠나온 영역이 맞다. 


그렇다면 진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나는 진료를 얼마나 '잘 보는'의사인가. 그건 누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응급실에 몰려들어오는 환자를 빨리 보는 사람이 실력이 있나? 그럼 놓치는 환자가 있을텐데, 느리게 봐도 중환을 놓치지 않는 의사가 더 실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중환인 환자를 잘 보는 의사와, 경환 속에 중환을 잘 캐치하는 의사 중 어떤 의사가 더 실력이 있고, 어떻게 그것을 '정량화' 시킬 수 있을까. 보호자의 컴플레인이 아주 많은 부서의 특성상, 컴플레인을 만들지 않는 능력도 실력일까. 그럼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사람이 가장 실력이 있는 걸까, 근데 그 의사 혼자 좋은 사람 되고 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이 복잡해졌다. 


나는 나름대로 큰 병원에서 여러 케이스 보고 이것저것 겪은 게 많지만, 늘 스스로가 반쪽이라는 컴플렉스에 시달려왔다.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중환자를 입원시키고 퇴원시켰던 게 아니라, 백업 교수님이 있는 곳에서 전공의처럼 일을 했고, 그 때 넉 달 해본 걸로 그래도 중증도 있는 애들 입원시켜서 해봤네 하고, 스스로의 특장점으로 취직할 때 PR하고 다녔다. 뻔뻔하게도 의외로 먹혔다. 이 정도 병원에서 이 정도 일해봤으면 보장한다, 라고 다들 봐주신 덕인데, 사실은 반쪽짜리인데, 그나마도 아마 이 반쪽짜리도 귀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지만 그렇다. 채워지지 않는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걸 채우려면 중환자를 제대로 배우러 지금이라도 전임의를 들어가야 할 것인데, 그렇게 따내고 나면 그 다음은? 현실적으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 선뜻 저지르지는 못하게 되더라. 


작년에 이직하면서 면접을 보는데, 이 정도 경력이면 실력은 보장이 되어 있네요,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에 가시가 콕콕 양심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보장이 된 것이 맞는지 스스로 선뜻 수긍하기는 어려웠기에 그저 웃으며 과찬이십니다, 한 마디만 드렸다. 일하면서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어느만큼 제 몫을 하고 있는지, 혹여나 '경력은 저런데 실력없네' 평을 듣지는 않는지, 무엇보다 내 스스로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고민이 된다. 그냥,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내가 근무할 때, '오늘은 힘든 날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만 하지 않도록 하자고 조금 일찍 출근하고 인계를 꼼꼼히 받고, 일이 몰리면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든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언제쯤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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