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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Feb 28. 2024

18. 만나면 슬픈 친구.

우리 서로 기억하지 말자. 

모 방송사는 만나면 좋은 친구라고 그랬는데, 나는 만나면 슬픈 친구가 아닐까. 특히 단골손님이라면 더더욱. 내가 수련받았던 병원은 특히나 만성질환 및 희귀질환 환아들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보니 응급실에 단골처럼 오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암환자들은 항암치료 후 약 2주 전후로 호중구 감소증을 동반하면서 이 때가 감염에 매우 취약한 시기이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 발열이 있으면 무조건 응급실에 내원하여 입원하는 절차들을 겪게 된다. 특히 소아응급 분과전임의 2년을 보내면서, 왔던 환아들이 또 오는 일들은 빈번하게 있었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별별 것을 다 기억하곤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자주 오는 친구들은 어쩐지 환아의 보호자들도 일부러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하게 되었다. 특히 내가 본 차팅이 남아있으면 그 때의 기억들이 생각이 나서, "지난 항암 때도 발열로 오셨었네요" 같은 한 마디를 건네면 좀 더 라뽀가 쌓이기도 하고 좋으니깐. 

자주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친구들은 마음이 좀 아프다. 이런 친구들은 본인들이 본인 증상을 더 잘 알아서 이번에도 같은 걸로 왔어요~하고 담담하게 말하고 보호자들도 무덤덤하고 의료진에게도 협조적인 편이라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안 좋다. 자주 오는데 순응도가 떨어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특히 제 1형 당뇨로 다니는 아이들, 한창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을텐데, 친구들하고 떡볶이 한 번 사 먹기도 힘들다보니 몇몇은 정말 맘대로 먹고 인슐린 주사도 몇 번 건너뛰고, 당뇨병의 급성 합병증인 '당뇨병성 케톤산증'으로 의식도 처져서 몇 번이나 오기도 했다. 이런 친구들은 좀 더 강하게 말해서라도 의료진의 지시를 따르게 하고 싶은데, 병원 돌아가는 사정을 뻔히 아니까 또 더 말을 안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본인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응급실 의료진과는 잘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고, 본인의 지정의만 찾고 없는 병실을 빨리 내어달라고 재촉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별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보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소아응급실 인턴 시절부터 전공의, 전임의 때까지 응급실에 자주 오던 환아라 환아 부모님도 나도 서로 마주치면 눈인사정도는 하던 분이 있었다. 처음 진단 받을 때 내가 그 아이의 검사 킵(keep : 통증이 따르거나 협조가 필요한데 어려운 어린 아이들은 약물로 진정시켜서 검사를 하는데, 이 때는 의사가 동행하여 산소포화도 등 활력징후를 감시해야 한다)을 했었기에 더 잘 알았다. 하늘이 무너지게 울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어떻게 잊나. 소아응급 전임의 하면서 주 3회 응급중환자실 당직 서고, 당직 선 다음 날 오후 6시까지 계속 병원에 있던 시절이 있었다.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었는데 중환자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는데 유난히 무뚝뚝했던 아버지가 툭, 말을 건넸다. 


거 내가 며칠 봤는데 왜 맨날 집에도 안 가고 여기 계셔. 

그러게요 제 별명이 여기 지박령이에요 호호호. 


이번에는 뭘로 입원하셨냐고 안부인사도 건네고 했었는데, 며칠 뒤에 원내 심정지 방송이 나서 심폐소생술을 하며 중환자실로 들어오는데 그 아이였다. 소아 중환자 교수님도 이전에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좀 안보인다 싶던 애들 중에 별이 된 아이들이 제법 있다고. 자주 보면 마음이 안 좋은데, 안 보이면 덜컥 할 때가 있다나. 

수련 후 발령받은 병원은, 단골로 오는 만성질환 아이들이 많지는 않은 곳이었기에 이런 일은 잘 없었다. 그래도 흔한 지역사회 환아들의 발열이나 복통 등으로는 자주 오다 보니 오히려 보호자들이 기억을 할 때가 있더라. 지난 번에도 선생님이 봐주셨어요, 혹은 어머니가 낯이 익어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둘째도 선생님이 어제 보셨어요, 이런. 경련으로 우리 병원에 다니거나, 상심실성 빈맥으로 다니는 친구들은 내가 일하는 이 곳에도 더러 있기에 몇 번 만나고 나니 좀 라뽀가 쌓였다. 이번에는 약 잘 먹었니? 그동안은 별일 없이 잘 지냈어? 같은 말을 하다보면 보호자도 조금 더 잘 따라온다. 이 사람은 우리 아이의 병력, 병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구나. 하는 믿음인 거지. 


그렇게 나를 만나고 울면서 왔다가 방긋방긋 웃으며 집에 가는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스러운데, 그래도 내가 기억하지 못할 만큼만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그 아이의 응급실 전용 의사같은 느낌이 아니라, 그저 소낙비를 피할 정자 정도로만 삶 속에서 나를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만나면 슬픈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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