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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Feb 28. 2024

3. 삽관은 했는데, 인공호흡기 세팅을 못 해서.

왜 소아응급을 했냐구요? 

어디를 가든 '너 왜 그거 하니'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 멸종 위기종인 소아응급 전문의가 된 계기는 생각보다 별로 대단한 사건이 아니었다. 세간에서 흔히들 말하는 소위 참의사라는 소리는 듣기도 싫고 하기도 싫다. 나는 그냥 일터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그걸 못 해서 부끄럽고 화가 나서 시작했다. 내가 못하는 게 싫어서 한 일이다.


응급의학과에도 분과가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의사들 사이에서도 생각보다 아는 분이 많지는 않더라. 내가 수련받은 곳에서는 크게 3분과로 나뉘어 있었다. 중환자의학, EMS(Emergency medical service 의료전달체계), 그리고 소아응급. 


변명을 좀 해보자면 요즘은 응급의학과에서 모든 소아 환자를 1차로 다 맡아서 보는 시스템이 되었지만, 내가 전공의 시절까지만 해도 3개월 미만의 환아나 기존 질환으로 다니던 환아들, 예를 들어 간질로 외래에서 약을 먹고 추적관찰 중인 환아가 다시 경련을 해서 오거나, 항암치료 중인 아이가 발열로 오는 등의 일이 있을 때는 소아청소년과에서 1차로 진료를 보았었다. 그렇기에 내가 보는 중환자라고 해봤자 간질중첩증(status epilepticus, 경련을 5분 이상 지속하는 상태) 정도였을까, 그나마도 소아청소년과에서 빨리 협진을 해서 내가 오랫동안 환자를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소아응급 턴이 적은 편이 아니었는데도 스스로 느끼기에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소아 분과였다. 성인 환자들의 경우 내가 수련받은 곳에서는 응급 중환자실과 응급병동을 자체 운영하고 있었기에 이때 주치의 일을 하고 나면 어느 정도는 중환자를 보는 능력이 생기게 되었다. 응급실에 온 중환자의 바이탈을 잡고 진단하고 처치하고, 입원 후에 환자의 상태 변화에 따라서 추가로 평가하고 치료하는 과정들을 꽤 깊게 배웠다. 인공호흡기 세팅이나 지속혈액투석(CRRT) 같은 것도 혼자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우게 되었는데, 소아의 경우에는 4년 차 말까지 스스로 볼 수 있는 수준이 한참 밑돌았다. 내가 생각해도 감기, 장염 같은 지역사회에 흔한 환아나 가벼운 외상환자 정도만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소아청소년과 의사도 아닌데 굳이? 이 이상 알아야 하나 생각도 할 수 있는데, 그때 나는 내가 2년 차 때 처음 소아응급실에 왔을 때나, 4년 차가 끝나갈 때나 할 줄 아는 게 크게 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냥 순수하게 내 능력치가 딸리는 게 싫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정말 크게 부끄러웠던 사건이 있었다. 소아응급실 주치의, 심지어 4년 차 수석전공의였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다들 생각하는 그 시절이었다. 열성 경련이 멎은 상태로 내원하였고,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던 환아가 있었다. 출근하고 인계를 받자마자 환아가 경련을 다시 시작했다. 경련에 대해서는 사실 프로토콜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응급실에서 단계별 초기 처치 약물이나 용량을 모르지는 않았다. 즉시 아티반(lorazepam, 경련의 제1차 처치 약제)을 체중당 0.1mg을 투여했다. 경련은 다행히 멎었는데, 항경련제 투여 후에 호흡이 억제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 아이도 호흡 수가 점점 떨어지고, 호흡도 얕게 쉬면서 산소 포화도가 80퍼센트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발 호흡이 너무 약해서 기도삽관을 해서 인공호흡기를 통해 호흡을 보조해줘야 할 상황이었다. 삽관 자체는 어렵지 않게 했다. 튜브 사이즈를 모르지도, 깊이를 모르지도 않았고, 삽관 자체가 어려울 환아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다음 과정이 문제였다. 고년차가 되도록 소아의 인공호흡기를 한 번도 세팅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성인이었다면 절대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소아의 기계환기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초기 세팅은 어떻게, 어떤 모드로, 일회호흡량(tidal volume)은 얼마나 해야 하는 거지?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니 감히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올 때까지 앰부를 짜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몰라서 소아청소년과 당직에게 물어봤는데, 새침데기 당직 전공의는 "그냥 하시면 돼요~" 하고 슥슥 세팅을 마치고 올라갔다. 그깟 거 좀 알려주지 그냥 하면 된다가 말이야 뭐야. 좀 얄밉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그깟 것도 모르는 나 자신에게 정말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마 그 전공의 입장에서도 이 심오한 기계환기의 세계에 대해서, 그 바쁜 당직 중에 나를 어떻게 붙들고 가르쳐 줄 여유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어디까지 아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그렇다고 백지상태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어찌 설명을 해주겠는가. 그때는 조금 얄미웠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해한다. 그 얄미운 마음은 부족한 나 스스로가 하는 투사였을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번 더 했던 것이 모교에서 잠깐 일할 때였다. 소아응급을 싫어했던 적은 없고, 오히려 턴 돌 때마다 늘 가장 좋은 평을 해주셨던 곳이었지만 4년 내내 나는 성인 중환자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아마 지금 생각하면 전공의 때 중증도 있는 환자들을 보면서 내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해내는 게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재미있기도 했고. 다만 수련을 마친 다음 바로 그 살인적인 전임의 생활을 바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과장님께서 내게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곧 오는데, 연구에 매진하고 한창 더 공부해야 할 시기에 네가 나가서 지금 놀고 오겠다는 거냐'라고 만류하셨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바깥세상이 너무 궁금했다. 어찌 연이 닿아 내려갔던 모교의 응급실에서도 주로 성인 환자들을 봤다. 소아의 외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아과에서 보던 시스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1시간 넘게 경련발작을 하던 환아가 왔고, 소아청소년 전공의가 응급실로 내려오기 전까지의 1분, 2분이 급했다. 마냥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혈관이 확보되지 않아 골강내 주사를 잡아 항경련제를 투여하고 기도삽관을 했다. 마찬가지로 그다음 단계를 내가 또 몰랐다. 소아과에서 내려와서 기계환기를 시작할 때까지 나는 앰부(ambu, 호흡 보조에 이용하는 공기주머니)를 짜고 있었다. 내려온 전공의가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성인과 생각보다 많이 다르게 하지는 않는다는 인상은 받았지만, 내가 혼자 있을 때 혼자서 바로 시도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이 배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어졌다. 그 해 소아응급의학회 연수강좌에서 다시 의국 교수님들을 뵈었고, 내려가는 기차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다 놀았니, 슬슬 올라오렴. 네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중환자 트레이닝 시켜줄 테니. 그렇게 코가 꿰었다. 처음 생각했던 소아응급 세부전문의이자 중환자 세부전문의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적어도 전임의 생활을 거치고 나서 삽관은 했지만 기계환기 첫 시작도 못하는 수준은 이제 아니다. 여전히 나는 마음 한구석에 소아 중환자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 남아 있다. 그 시절, 부끄러움과 분노가 이끈 길을 온전히 다 걷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걸어보았던 게 내 인생을 많이 바꿔주었다고 생각한다.


남 일이라고 생각하고 써놓은 글을 한번 읽어보니 참 이때의 나는 차라리 순진했던 것 같다. 못하면 못하는 거고,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될 일. 내가 하는 데까지만 하면 되지, 뭘 기계환기 하나 못한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화를 낼 게 있나. 아마 내가 그때의 나를 보면 그런 말을 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순진했던(?) 나는 그렇게 소아응급 전문의의 길을 아직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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