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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Feb 28. 2024

5. 정답이 없는 질문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고민들.

'아무것도 안 해줬다'의 뒷면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촉이라는 것은 인생이 쌓아 올린 빅데이터라고 했던가. 유난히 중환을 자주 맞닥뜨리든, 유난히 많은 수의 환자를 받든, 둘 다이든, 소위 환자를 많이 '타는' 이들은 촉이 좋다. 그들이 뭔가 싸하다고 하면 싸한 거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노래 가사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날도 그랬다. 보통 응급실에 내원하는 초진 환자들은 인턴이 먼저 보고, 전공의나 전문의에게 환자를 보고하고 필요한 검사나 처치를 하는 식으로 돌아갔는데, 그날은 정말 화장실 한 번 못 갈 정도로 환자가 너무 많았다. 성질 급한 응급의학과 의사답게, 그리고 그 시간에 가장 무거운 책임을 가진 사람답게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들었다. 인턴과 전공의가 환자를 보는 동안 나도 직접 초진을 따로 봤다. 아예 환자 중증도 분류하는 구역에서 간호초진을 듣고 바로 데려와서 진료를 이어가는 식으로 일을 했다. 


그런데 환자분류소의 아이 안색이 왜 이렇지? 크게 아픈 애는 아니었다고 하던데 설명할 수 없게 혈색이 좋지 않고 뭔가 오랫동안 지병이 있었을 것 같은 느낌. 글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임상 의사들끼리 말하는 소위 '때깔이 좀 이상한' 아이. 타원에서 진료를 보고 소견서를 지참해서 왔기에 읽어보니 폐렴이라 적혀 있는데, 보호자의 이야기는 또 폐렴은 아니라던데 엑스레이가 안 좋다고 들어서 보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람. 호흡수가 약간 빨랐고, 산소 포화도가 90대 초반 정도(보통 94퍼센트 이상을 정상으로 본다). 뭔가 이상하다.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숨을 힘들게 쉬었냐 물으니 한 1주일 되었는데 기침이나 가래는 크게 심하지 않고 열도 없었고, 주변에 감기 걸린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이상하다. 폐렴과는 좀 다른 자연경과인데.


소생실로 바로 데려갔다. 환자들이 다 자기 살 길 찾아서 알아서 온다고 누가 그랬더라. 어차피 애초에 인턴이나 전공의 수준에서 볼 환자가 아니었는데, 딱 마침 성질 급한 전문의의 레이더에 바로 걸렸구나. 즉시 산소를 비강으로 투여하며, 청진을 했는데 한쪽 폐음이 거의 들리지가 않았다. 엑스레이를 불렀다. 그때 일하던 센터에는 초음파 기계가 소생실에 구비되어 있어, 바로 폐음이 들리지 않는 쪽에 갖다 대었다. 폐가 있어야 할 곳이 물로 그득하게 차 있다. 흉수가 이런 식으로 찬다고? 폐렴으로 이 정도로? 자세히 물어보니 아이가 기력이 없었던 것은 한 달 남짓, 당시 감기니 모세기관지염이니 한창 유행하던 시기라 그런가 보다 하고 약을 먹이면서 기다려보셨다고 한다. 엑스레이를 확인하니 한쪽 폐가 흉수로 아예 하얗게 변해 있고, 기관이 한쪽으로 밀린 수준이었다. 소아과 측의 협진을 요청했다. 중환자실 부재로 수용이 불가하고, 전원을 빨리 보내자는 의견을 주었다. 흉수에 대해서 흉부외과 협진을 통해 즉시 흉관삽관을 하자는 의견을 주셨다.


원칙적으로 몸 어딘가에 고인 물이든, 고름이든, 뽑아서 확인하는 게 가장 정확하기는 하다. 흉수가 생기고 호흡곤란이 진행한 상황이라면 진단적으로든 치료 목적에서든 뽑아서 봐야 한다. 검사 결과를 통해 이것이 폐렴으로 인한 것인지, 결핵인지, 종양인지, 등 가닥을 잡을 수가 있기도 하고 흉수로 인한 호흡곤란 역시 배액을 해서 증상을 해결해야 한다. 특히 이 환아처럼 흉수 양이 많아서 기관을 옆으로 밀 정도라면, 흉관을 삽입하여 배액을 하는 것이 시급한 것은 맞다. 언제 호흡곤란이 악화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진은 맞았다. 또한 우리 병원에서 수용이 어렵다면 다른 검사를 하며 기다릴 것이 아니라 치료가 가능한 곳으로 빠르게 전원 하여 진행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동의는 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런 환자가 성인이라면 정말 갈 만한 병원들을 찾기가 이 정도로 어렵지도 않았을 텐데, 아니 내가 일하는 병원 수준에서도 충분히 수용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아는 이런 케이스, 서울 경기권의 병원 내에서도 받아줄 만한 곳이 몇 군데 되지 않았다. '전원을 보내자'는 결정에 솔직히, '도대체 어디로?'가 입 밖에 튀어나올 뻔했으나, 그럴 여유조차도 없었다.


일단 빅 5부터 먼저 전화를 해보자. 처음 전화를 돌리면서는 다른 검사들이 급한 것이 아니라, 빨리 갈 곳을 찾아서 진행하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세 군데 병원에서 까이고 난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전화들 돌리고 갈 곳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이도저도 안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더라.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첫 번째,  흉관 삽입을 바로 할 것인가. 폐렴이 아니라면 뭘까. 처음 진단된 암이나 암성 흉수에 대해서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한 달씩 아이가 기력이 점점 나빠진 추세였다면 더더욱. 그렇다면 내가 이것을 침상에서 어설프게 건드리는 것이 맞을까. 두 번째, 암이라고 생각한다면 혈액검사와 CT검사를 빨리 해서 어느 정도 진단에 가닥을 잡아야 전원 문의를 할 때 할 이야기가 더 많지 않을까? 어차피 지금 언제 전원병원이 결정될지 요원한 상황에서 병원들마다 전화만 하면서 '흉수가 찼는데 기관이 한쪽으로 밀렸어요, 다른 검사는 안 해서 몰라요. 그쪽에서 받아서 진행해 주세요'라고만 하면 전원을 받기 더 어렵지 않을까. 세 번째, 그렇다면 아이는 전원문의를 하며 기다리는 동안에 흉관삽관 없이, 이 검사들을 버틸 수 있는 상황일 것인가. 아이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 지속된 증상인데, 이 상황이었다면 흉수가 천천히 차올랐을 것이며, 그렇다면 전원을 기다리는 몇 시간을 버틸 수 없는 상황은 아닐 거다. 지금 산소 요구량이 많은 편도 아니고, 호흡이 당장 가빠서 넘어갈 정도는 아직 아니니 검사들을 하면서 기다리자. 대신 모니터를 아주 주의 깊게 하면서 언제든지 기도삽관을 할 준비를 하고, 정말 그렇게 환아가 나빠지는 상황이라면 내가 흉관삽관을 해도 할 수 있으니 그때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보호자에게도 상황을 설명했다. 단순히 폐렴으로 생긴 것이라고 보기에는 환아 엑스레이 소견이 그리 좋지 못하고, 전원 갈 병원들을 찾고 있는데 여의치가 않아 계속 찾고 있는 중이다. 환아가 지금 당장 기도 삽관을 급히 할 정도는 아니고 어느 정도 버티고는 있으니, 여기서 할 수 있는 검사들을 하면서 기다려달라고, 어떻게든 내가 갈 곳을 찾아내겠다고 말씀드렸다. 보호자분들이 당황스러우실 상황이었는데도 차분히 잘 따라주셔서 감사했다. 그 사이 중앙응급의료센터까지 도움을 요청했다.


예상한 대로 암이었다. 림프종으로 추정되는 암이었는데, 주변의 큰 혈관들도 누르고 있을 정도로 퍼져 있었다. 특히 상행대정맥을 누르는 상태는 종양학적 응급에 해당되어, 정말로 빠른 처치가 필요한 상황. 다시 주변의 큰 병원에 읍소했다. 처음 문의했을 때 입원 병상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하시기는 했는데, 이러한 상황에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절대 해결이 불가한 수준이라, 혹시 받아주실 수 없는지. 소아응급 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서로 사정 빤하게 안 좋은 거. 그리고 정말 이 빅 5들은, 본인들이 못 받으면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도 정말로 너무 잘 아신다. 한숨을 한번 폭 쉬고, 보내달라고 하셨다. 대신 오늘이 아니라 내일은 되어야 입원자리가 날 것이라고 충분히 설명을 해달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전화기에 대고 구십 도로 절하며 전원을 준비했다. 소견서를 작성하고, 보호자에게 시티를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갈 곳이 정해진 것만으로도 기뻤지만, 고민이 끝나지는 않았다. 이제 전원을 갈 때, 기도삽관을 해서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병원이 차로 30분 정도의 거리였고, 산소 요구량이 늘거나 호흡수가 더 가빠지지는 않았다. 삽관을 하고 진정제를 투약하며 보내는 시간에 차라리 빠르게 전원을 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의료진을 동승하여 전원을 보냈다. 기도삽관을 할 준비를 갖추고 모니터를 달고, 무슨 일이 생기거든 바로 나에게 전화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다행히 환자는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 이렇게 되면 표면적으로는 어떤가. 흔히들 많이 듣는 말이 하나 있다.


"병원에 갔더니 첨에 검사만 이것저것 하더니 아무것도 안 해서 다른 데 가라고 하더라."


어쩌면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의 보기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나는 환아에 대해서, 혈액검사와 CT 검사는 했다. 하지만 흉관을 삽관하여 배액 하지도 않았고, 기도삽관도 하지 않은 채 처음 환아를 보자마자 처치한 비강 내 산소투여만 한 채로 환아를 전원을 보냈다. 처음 내가 환아를 데리고 와서 본 상태 거의 그대로 환아는 전원을 갔다. 하지만, 어떤 처치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떤 처치를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 역시 의학적인 결정이다. 그것도 처치를 시행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결정.


환자를 보내고 난 다음에, 그날 밤, 그리고 다음날까지 내 결정에서 아쉬운 것이 없었을까를 내내 고민하고 뒤돌아봤다. 다른 소아응급 전문의들과도 의견을 나누고 조언을 구하고 곱씹어보았다. 결론을 내렸다. 그때로 돌아갔어도 나는 같은 결정을 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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