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된 신뢰

— 15장 (1~4부 통합) —

by 스팅비 StinGBee

커버 새것.png

— 1부 | 지워진 얼굴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5-1)

낯선 집에서도 먼저 ‘규칙’을 세우는

한 여자가 텍사스에 이사 온 첫날,

그녀는 창문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렸다.


낮인데도 방 안이 어두워졌다.

그 어둠이—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밖에서 ‘누가 보고 있다’는 느낌이, 그제야 사라졌다.

그녀는 박스를 풀지 않았다.


침대도, 식탁도 아니고—노트북부터 꺼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손이, 이상할 만큼 익숙했다.

먼저 이사 온 지역을 인터넷으로 훑었다.

당장 살아야 하니까—필요한 것부터 찍었다.


한인 마트. 병원. 약국. 은행. 식당.

어디가 가깝고, 어디가 덜 눈에 띄는지.

지도 위에서 동선을 몇 번이나 겹쳐 그렸다.

모자는 현관에 걸어두지 않았다.

손이 닿는 곳에 둬야 했다.

밖에 나갈 때마다 그건 습관이 아니라 절차였으니까.


캘리포니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그녀는 ‘도피’가 아니라 ‘재시작’이라고 믿었다.

처음엔 나름 초호화 저택이었다.

게이트가 있고, 잔디가 있고, 밤이면 조명이 자동으로 켜지는 집.


사진 한 장만 올려도 사람들이 “꽤 괜찮아 보인다”라고 말해줄 배경.

댓글은 늘 비슷했다.

“그래도 잘 사네.”

“아직 많이 남았네.”


그 말들이 위로처럼 들렸다. 적어도 그때까진.

하지만 집은—남는 게 아니라, 줄어드는 쪽이었다.

처음엔 “임시”였다.

다음엔 “정리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사가 아니라 후퇴가 됐다.

방이 하나씩 사라졌다.

천장이 낮아지고, 창문이 가까워지고, 마당이 없어졌다.

그 대신 늘어난 건 박스였다.

뜯지 않은 박스. 다시 테이프를 붙인 박스.

처음부터 “다시 나갈” 걸 알고 포장한 것 같은 박스.


시간이 지나면서 집은 점점 작아졌다.

처음엔 “관리 부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마지막엔—그냥 현실이었다.


작은 집.

작은 집은 불편한 게 아니라, 변명이 줄어든다는 게 불편했다.

공간이 작아질수록 숨길 것도 작아져야 했다.

한인 마트, 한인 카페, 교회 앞 주차장.

그 작은 반경에서 시선은 늘 먼저 붙었다.

반가움이 아니라 판정이었다.


한물간 연예인.

실패한 연예인.

나이는 못 속이지.


말은 직접 오지 않았다.

직접 오지 않아서 더 정확하게 들렸다.

그래서 그녀는 더 멀리 옮겼다.

교포가 상대적으로 적고, 자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덜한 곳.

“설마?” 하고 지나가줄 만큼 넓은 곳.

그 정도면 숨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텍사스는 “조용한 도시”가 아니었다.

여긴 조용해서 안전한 게 아니라—그냥 사람 눈에 덜 띄는 곳이었다.

문제는, 사람 눈을 피한다고

시스템까지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렌트 계약서의 이름, 전기·인터넷 명의, 운전면허 주소—

그런 것들은 조용히 남고, 조용히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남아 있는 것’들이

신고서 한 장이랑 붙어버리면—절차는 그녀를 찾는다.

텍사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사 상자가 아직 벽에 기대어 있던 오후,

모르는 번호가 울렸다.


여자는 받지 않으려다—받았다.

받지 않으면 더 크게 돌아오는 게 전화였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건조했다.

상냥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절차였다.


“OO Police Department. This is Officer Barnett.

Am I speaking with Ms. Choi Yoon-seo?”

(자막: 경찰서입니다. 바넷 경관입니다.

최윤서 씨 맞으십니까?)


“I’m calling regarding your fraud report.

I need to confirm a few details.”

(자막: 사기 신고 건 관련해서

확인할 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We’ll need to schedule an in-person interview.

What date works for you?”

(자막: 직접 오셔서 면담이 필요합니다.

가능하신 날짜가 언제일까요?)


윤서는 “저요?”라는 말을 삼켰다.

그 말은 늘—너무 늦게 나오니까.

“네. 제가 최윤서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상대는 몇 가지를 확인했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

윤서는 짧게 대답했고, 대답하는 동안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필요하면 안내 전달을 위해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 한 문장에, 윤서의 심장이 한 번 더 내려앉았다.

경찰이 집에 오면 이웃의 커튼이 흔들린다.

커튼이 흔들리면, 다시 시선이 붙는다.

시선이 붙으면—이름이 돌아온다.


경찰서로 가기 전.

전화를 끊고도 여자는 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엄지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

변호사.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업계 지인이 “혹시 몰라”

하고 남겨준 번호가 있었다.

윤서는 연락처를 눌렀다.

통화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예전 같으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돈이 아니라 체면이 먼저였고, 체면을 지키는 게 일이었다.

근데 지금은 달랐다.

변호사 비용이—갑자기 현실로 다가왔다.


저택에서 작은 집으로 옮겨오면서,

그녀는 “비용”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배웠다.

렌트, 보험료, 생활비, 예상치 못한 수리비.

그리고 ‘상담료’ 같은 단어가 이제는 가볍지 않았다.


‘지금 변호사를 부르면… 일이 더 커지는 걸까?’

‘내가 뭔가 숨기는 사람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그리고… 내가 그 돈을 낼 수 있나?’


윤서는 결국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대신 폰을 내려놓고, 작게 중얼거렸다.


“우선… 내가 직접 가서 정리하자.”

집에서 기다리느니—직접 가자.


절차가 나를 끌고 가기 전에, 내가 먼저 들어가자.

그런데 그 ‘우선’이 하루를 넘겼다.

윤서는 집에 혼자 앉아, 전화 화면만 몇 번이고 켰다가 껐다.

다음 날 오후, 초인종이 울렸다.


문밖에는 제복을 입은 **uniformed officers** 두 명이 서 있었다.

순찰차는 도로 쪽에 반쯤 걸쳐 세워져 있었고,

한 명은 손에 얇은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고 건 관련해서요.

다시 전화드렸는데 연결이 안 돼서, 서류 전달 겸 안내드리러 왔습니다.”


그들은 집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문 앞에서 필요한 말만 했다.

신분 확인도 길게 끌지 않았다. 이름과 주소만 짧게 대조했다.


“가능하시면 경찰서로 연락 한번 주시고요. 면담 일정만 잡으시면 됩니다.”


대신 연락처 카드 한 장과 케이스 번호가 적힌 안내문을 남겼다.

경찰이 돌아가자, 집은 더 조용해졌다.

조용한데—커튼이 흔들릴 것 같은 공기만 남았다.

윤서는 그제야 결론을 냈다.

기다리면 커지는 건 오해가 아니라—절차였다.


여자는 휴대폰을 쥔 손을 놓지 못한 채,

저장된 연락처 목록을 천천히 내려갔다.

수많은 이름. 수많은 번호.

그중 **‘이도윤기자’**라고 저장된 이름 위에서,

가느다란 손가락이 멈췄다.


윤서는 숨을 한 번 고르고, 휴대폰 화면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두 번 울린 뒤, 잠긴 목소리가 받았다.


“응. 나야.”


말을 고르려 했는데, 입에서 먼저 나왔다.


“뭐 좀 알아봐 줘야겠어.”


짧게. 더 짧게.

감정을 넣으면, 상대가 먼저 냄새 맡는다.


“방금 경찰이 날 보자고 했어.”

“내가… 어떤 투자사기에 ‘가해자’로 올라가 있대.”


잠깐 정적.

윤서는 그 정적을 못 참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네가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가능하면 빨리.”

“알아내는 대로 바로 연락 줘.”


더 말하면 흔들릴 것 같아서, 그녀는 마지막을 딱 잘랐다.


“끊어.”


통화가 끝났다.

윤서는 휴대폰을 내려놓고도 한참 손을 놓지 못했다.


그때서야, 자신이 숨을 제대로 쉬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 2부 | 브리핑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5-2)

선율 — 다음 날, 오후

김민수 영사관 사칭 사건 이후로,

선율은 한동안 민수가 마지막에 남기고 간 말을 떼어내지 못했다.


“저 사람들… 제발 잡아주세요.”

“저 말고도 또 당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수사는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진전은 없었다.

절차는 복잡했고, 공조는 느렸고,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많이 잡아먹고 있었다.


피로가 쌓이면 말은 결국 의미만 남고,

소리는 배경으로 무너졌다.

커피를 몇 잔을 마셨는지,

저녁을 먹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선율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같이 붙은 동료들도 같은 얼굴이었다.


“요즘 온라인 사기 신고 계속 들어오잖아.”

“AI까지 엮이면 피해자도 더 빨리 무너지고.”

“인력 더 끌어와야 돼. 안 그러면 우리 과로로 죽는다.”


다른 동료가 비틀 웃었다.


“와이프가 그냥 경찰서에서 살래. 집엔 오지 말래.”


웃음이 났지만, 그 웃음은 길지 않았다.

누구도 농담이 농담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후 늦게, 반장인 **캡틴**이 팀원들을 불렀다.


캡틴: “야, 다들 모여봐. 브리핑 짧게 한다.”


사이버수사대 브리핑룸이 조용해졌다.
키보드 소리만 몇 번 툭툭 끊겼다.


캡틴: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국방장관 목소리를 AI로 복제해서

100만 유로가 털린 사건 있었지. 다들 뉴스로 한 번쯤 봤을 거다.”


팀원 1: “… 국방장관 목소리요? 그게 된다고요?”


캡틴: “된다. 더 무서운 건—‘진짜처럼’ 됐다는 거야.”


캡틴은 서류를 한 장 넘기듯 말을 이었다.


캡틴: “그리고 이런 것도 있었다.

단 3초짜리 음성만 따서 가족 목소리처럼 만들어서,

피해금 2억 원 날린 케이스.

삼촌 목소리인 줄 알고 돈 보냈다는 피해자도 있었고.”


누군가 짧게 헛웃음을 삼켰다.


캡틴: “세 번째. 70세 노인이 영상통화로

‘연인’이라 믿었던 사람한테 속아서

약 1만 달러대를 보냈다.

얼굴도, 표정도, 말투도—전부 진짜 같았다.”


로페즈: “……하. 영상통화면 거의 끝 아닌가요?

그걸 어떻게 구분해요.”


캡틴: “마지막. 모두들 알만한 인기드라마의 유명 배우인 것처럼

만든 딥페이크 영상으로 43만 달러가 사라진 사건도 있었다.

이젠 목소리도, 영상도—그 자체로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야.”


잠깐 정적이 흘렀다.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사건 목록이 갑자기 더 차갑게 보였다.


아사드: “… 캡틴. 우린 절차가 있으니까 그나마 버티죠.”


아사드는 잠시 멈칫했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아사드: “근데 문제는… 우리야 그렇다 치고,

보통 사람들은 이런 거 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피해자들 보면, 당하는 순간엔 그게 사기인지 구분을 못 해요.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캡틴: “맞는 말이다.”


캡틴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투를 더 딱딱하게 눌렀다.


캡틴: “그래서 우린 사건 처리만 할 게 아니라,

예방 가이드를 머리에 박고 있어야 한다. 피해자한테

‘왜 속았냐’가 아니라—‘어떻게 안 속게 하냐’를 먼저 알려줘야 해.”


로페즈: “근데 요즘은… 진짜 구분이 되나….”


선율: “캡틴,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율: “일반인한텐 복잡한 기술 설명 필요 없습니다.

규칙 몇 개만 박아두면 됩니다.”


선율: “첫째, ‘지금 당장’ ‘급하다’ ‘비밀이다’—

이 말 나오면 일단 멈추게 해야 합니다.


둘째, 끊고 공식 번호로 다시 전화(콜백) 하게 하십시오.


셋째, 돈·계좌·상품권 요구 나오면—무조건 가족이나

지인 한 명 더 끼워서 교차 확인하게 해야 합니다.”


아사드: “…그러니까 결국, ‘목소리랑 영상’

믿지 말고, 절차를 믿어라… 그거네.”


선율: “맞아. 요즘 사기는 사람을 속이는 게 아니라,

사람 판단 속도를 속여. 그래서 ‘빨리 결정하게 만드는 말’부터 끊어야 돼.”


로페즈: (팔짱을 낀 채 피식) “야… 말은 쉽지.”

로페즈: “솔직히 의무 보수교육도 시간 없어서 겨우겨우 듣는데,

이제는 이놈의 AI까지 전부 의심하라고?”


선율: “그래서 더 해야 돼. 바쁠수록, 급할수록—그때가 제일 털린다.”


로페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반박할 말도 없다는 얼굴이었다.


캡틴: “좋다. 결론.”

캡틴: “앞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건,

오늘 이야기한 사례들 전부 참고해서 본다.


‘이게 말이 되냐’가 아니라—‘이게 가능하냐’부터 체크해.”


캡틴: “연결성 확인. 재검증. 공식 채널 확인. 이 세 개는 기본이다.”

캡틴: “각 팀, 오늘부터 적용한다. 브리핑 끝.”


“그리고 야, 로버트.”


선율이 고개를 들자, 캡틴은 아래층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래층에 한국인 여자 한 명 와 있어.”


“면담 네가 가. 한국어 되니까.

이 건은 고소 접수된 투자사기고, 아직 확정 단계 아니야.

용의자 몰이 하지 말고 사실관계만 확인해.”


그리고 캡틴은 덧붙였다.

웃긴 듯 말했지만,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지미가 봤다는데… 엄청 예쁘대.”


동료들이 바로 끼어들었다.

그중 로페즈가 팔꿈치로 선율 이를 툭 치며 웃었다.


“뭐야, 로버트. 너 여기서 살더니 이유가 있었네?”


“지미가 신분 확인 때문에 잠깐 마스크 내린 거 봤다며?


지미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 자식 보기보다 눈이 높거든. 그럼 거의 확정이지.”


“야, 로버트. 경찰서에 몰래 숨겨둔 여자친구 데려오면 어떡하냐.”


그가 킥킥 웃었다.


“야, 빨리 내려가 봐. 우리도 궁금하다고.”


그 말에 몇 명이 동시에 낄낄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을 가장 먼저 비틀어 꺾은 건—아사드였다.


FTO 때, 선율이 와 다리 밑에서—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자기 딸을 인간방패로 썼던 날.

그날 팔에 총을 맞았던 아사드가, 팔을 한 번 쓸어내리며 말했다.


“야, 로페즈. 너 방금 뭐라 그랬어? … 여자친구?”


아사드가 눈만 들어 로페즈를 쳐다봤다.

피곤한데도, 말은 또렷했다.


“캡틴 말 못 들었어?”

“한국말하는 경찰관 찾는다고 했잖아.”

“그럼 당연히 초면 아니겠어?”


로페즈가 입을 벌리려는 순간, 아사드가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 어떻게 여기 부서로 들어왔는지 몰라.”


입꼬리만 올라갔다. 딱 그 정도—사람을 깎아내리는 웃음.

잠깐 정적.

그리고 로페즈가 아사드를 향해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F—k you, man.”

(자막: 엿 먹어, 인마.)


웃음이 터졌다.

진짜로 즐거워서라기보다—

피곤한 얼굴들이 잠깐이라도 숨을 쉬기 위해 내는 소리였다.

누군가가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야, 우리도 이제 한국어 배워야 되는 거 아냐?”

“‘안녕하세요’만 해도 승진한다며?”


또 한 번 웃음.

그때 캡틴이 손을 한 번 들어 올렸다.

웃음이 딱 끊겼다.


“됐고. 로버트.”


농담이 끝나자, 현실이 다시 들어왔다.

선율은 웃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김민수의 목소리가 그 틈으로 다시 들어왔다.


“저 말고도 또 당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선율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몸이 무거웠다.

무거운데도, 내려가야 했다.


동료들이 계속 여자와 선율의 관계를 자기들 마음대로 상상해 붙였다.

말이 말꼬리를 물었고, 웃음이 웃음을 밀어냈다.

서로 더 신나서 떠들어대는 걸 보면서,

선율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농담인 걸 알았다.

근데 피곤한 몸엔—그 웃음조차 피로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1층 로비로 내려갔다.

그 순간엔 몰랐다.


오늘 들어오는 사람은 “참고인”이 아니라—

앞으로 자기 인생을 비틀어 놓을 얼굴이라는 걸.



— 3부 | 첫 만남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5-3)

텍사스 경찰서 로비는 화려하지 않았다.

벽은 무난한 색, 조명은 밝기만 맞춘 형광등.

그런데도 딱 필요한 만큼은 깔끔했다.

누가 봐도 “정기적으로 관리받는 곳”이라는 느낌.


대신 너무 현실적이라서 더 서늘했다.

여자는 접수창구 앞에 섰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자는 목소리를 낮췄다.


‘연예인’이 아니라 ‘민원인’의 톤으로.


“전화받고 왔어요. 사건 관련해서… 협조하라고요.”


“성함이요.”


여자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딱 필요한 만큼만 말했다.


“최… 윤서요.”


직원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직원이 윤서의 발음을 한 번 듣고, 잠깐 멈칫했다.


“통역 필요하세요?”


여자는 잠깐 망설였다.

필요 없다고 말하면 자존심은 지킬 수 있다.

근데 지금 필요한 건 자존심이 아니었다.


“한국어 가능한 경찰관… 있나요?”


“알겠습니다. 잠시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여자는 의자에 앉았다.

그 순간,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비었다.

여기선—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그게 자유 같았다가,

곧바로 끝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직원이 덧붙이듯 말했다.


“신분 확인 때문에요. 아이디랑 얼굴 대조해야 해서…

마스크 잠깐만 내려주세요.”


여자는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대기 의자에서 20여 분을 버티는 동안,

로비는 사람 소리보다 에어컨 소리만 더 또렷해졌다.

그리고 마침내—문이 열렸다.


여자 시야 바깥에서 선율이 가 들어오는 걸 보고

누군가가 작게 킥킥 웃는 소리가 났다.

접수대 근처를 서성거리던 남자—지미였다.


누군가 웃음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지미는 선율 이를 보면서 입꼬리를 올리며,

지미는 선율을 보더니, 고개를 아주 작게 까딱였다.

‘맞지?’라는 표정으로.


여자는 못 본 척 고개를 숙였다.

점점 여자에게 다가오는 선율.

셔츠와 배지.

키가 컸고, 걸음이 정돈돼 있었다.


무뚝뚝한 얼굴. “친절한 사람”이라기보다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의 인상이었다.

그가 여자 앞에 멈춰 섰다.

서류를 한 번 확인한 뒤, 절차처럼 말했다.


“서류상 이름이… 최윤서 씨로 되어 있는데, 맞으세요?”


그 순간, 기록 속 ‘여자’는 최윤서가 됐다.
숨는 법을 배운 사람이—절차 앞에서 다시 불려 나오는 방식으로.

윤서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스크를 천천히 내렸다.

선글라스도 벗었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 가슴에서 꿈틀댔다.


‘혹시 날… 알아보려나.’


선율은 아주 짧게—미소를 지었다.

윤서는 바로 알았다.

그 미소는 ‘알아봐서’가 아니었다.

민원인을 안심시키려고 꺼내는, 형식적인 미소였다.


“안녕하세요. 로버트 신입니다. 한국 이름은 신선율이고요.”

“안쪽으로 가시죠.”


면담실(인터뷰룸).

문이 닫히자 선율은 테이블 위에 놓인 사건 파일을 당겨 펼쳤다.

맨 위엔 고소 접수 기록과 진술 요약이 클립으로 묶여 있었다.


혐의명, 피해금액, 계좌번호, 캡처, 링크, 신고 요약…

펜 끝으로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며 사건을 정리했다.

그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정확했다.


윤서는 그 모습을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녀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의 반응을 더듬었다—자기를 알아보는지.


“혹시 예전에 어디서 뵌 적 있나요?”

“저… 기억 안 나세요?”


선율의 손이 멈췄다.

그는 서류 위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잠깐, 정말 잠깐 윤서 얼굴을 올려다봤다.


“네…?”


윤서의 목이 한 번 잠겼다.

선율이 조심스럽게, 너무 현실적으로 말했다.


“아, 죄송한데… 제가 기억이 잘 안 나서요. 누구셨더라…”


윤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선율은 놀리거나 비웃지 않았다.

정말 몰라서 묻는 톤이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오늘이 처음 뵙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윤서 씨 말씀대로라면, 어디서 보셨는지 언제였는지 말씀해 주세요.”


윤서는 잠깐 웃을 뻔했다.

웃음이 아니라 허탈함이 올라왔다.


“… 한국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윤서는 여전히 웃지도 못한 채, 짧게 물었다.
“TV… 안 보셨어요?”


선율은 더 캐묻지 않았다.

이 질문이 윤서에게 어떤 종류의 상처인지, 본능적으로 아는 눈이었다.

선율은 펜을 다시 들고 사건으로 윤서를 돌려세웠다.


“알겠습니다. 근데 최윤서 씨,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누가 알아보느냐가 아니라—누가 최윤서 씨 얼굴을 쓰고 있느냐입니다.”


윤서가 낮게 물었다.


“…그럼 전, 피의자예요?”


선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지금은 확인 대상이고요.”

“자료 보면 볼수록… 피해자일 가능성이 커요.”


윤서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그 내려앉음은 안도라기보다, 버티던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선율이 캡처 한 장을 짚었다.


“이 문장 습관이 달라요. 말투도요.”

“그리고 이 패턴은 보통 개인이 아니라… 팀이 움직일 때 나옵니다.”


윤서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팀이요…?”


선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직형.”


윤서는 그제야 알았다.

세상이 날 몰라서 서운한 게 아니라,

세상이 날 알아서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무서운 거였다는 걸.


선율이 말했다.

“지금부터는 제가 질문할게요. 기억나는 것만 정확히.”

“잡을 수 있다고 가볍게 말하진 않을 겁니다.”

“근데… 찾는 건 제 일이니까요.”


윤서는 아주 작게, 교민처럼 짧은 단어를 흘렸다.

“…okay.”

(자막: …네.)


선율이는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무뚝뚝한데—이상하게 믿을 만했다.

윤서는 그제야 처음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선율은 그 숨을 붙잡지 않았다.


오늘은 깊게 파고들 날이 아니었다.


“오늘은 기본 정보만 확인할게요.”


그는 서류를 한 장 꺼내, 윤서 쪽으로 살짝 돌려놓았다.


이름, 생년월일, 현재 주소.
연락 가능한 번호와 이메일.

최근 바뀐 번호나 계정이 있는지.

선율은 펜 끝으로 한 줄을 짚었다.


“최근 6개월 동안은요.”
“어디서 지냈고, 주로 뭐 하셨어요? 큰 흐름만요.”


윤서는 짧게, 가능한 사실만 골라 말했다.
선율은 고개만 끄덕이며 체크했다.

감정은 끼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선율은 펜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윤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저는요?”


선율은 현실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곧 연락드릴 겁니다.”


선율은 한 박자 쉬고 덧붙였다.


“그리고 당분간은 연락 가능한 상태로만 계세요.
정식으로 수사가 들어갔습니다.

추가 확인 때문에 바로 연락이 갈 수 있어요.”


“이동 계획 있으시면—특히 장거리나 출장이면—미리 말씀만 주세요.”


“그때까지는, 혹시라도 수상한 전화나 문자, 이메일…

어떤 것도 반응하지 마세요.

저희 쪽에서 연락이 오면, 제가 먼저 드린 번호로

다시 전화해서 확인하고 받으세요.”


윤서가 입술을 떼려 하자, 선율이 먼저 끊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수상한 연락이 오면요—일단 캡처부터.”

“증거 확보하기 전까진 차단하지 마세요.”

“그게 증거입니다.”

“날짜랑 시간은 꼭 보이게요.”


선율은 한 박자 쉬고,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전화가 오면 받지 말고—통화 기록만 남기세요.”


“문자나 이메일은 ‘읽음’ 표시가 뜰 수 있으니까,

가능하면 알림에서만 확인하고 캡처하세요.”


“링크는 절대 누르지 말고, 계좌번호나

이름 같은 게 나오면 그것도 같이 캡처해 놓으십시오.”


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율이 덧붙였다.


“캡처 모으신 건…

제가 연락드리면 그때 넘겨주세요.”


“지금은 윤서 씨가 움직이는 것보다,

기록이 쌓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윤서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난 게 아니었다.


문을 열기 직전, 선율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했다.


“그리고요.”


혹시라도 이메일이나 전화에서 ‘긴급’ 또는 확인 요청. 보안. 제한.

같은 표현으로 행동을 재촉하면—

그 자체가 가장 위험한 신호입니다.


“급하다고 재촉하면, 그게 신호예요.”

“또한 투자 사기 피해자라며 돈 요구하면 끊으세요.”

“모르는 변호사, 중개인—‘도와주겠다’는 말도요.”

“캡처. 기록. 그리고 공식 채널로 다시 확인하세요.”


윤서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면담실 문이 닫혔다.

윤서는 복도를 걸었다.

숨은 다시 들어왔지만,

가슴속 어딘가가—아직도 잠기지 않았다.


— 4부 | 복제된 신뢰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5-4)

한 달 후

한 달은 길었다.


사건은 해외에서 돌고, AI는 얼굴과 목소리를 바꿔치기했다.
그래서 수사는 늘 한 박자씩 늦었다.

그 한 달 동안, 윤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반응하지 않고,

답하지 않고,
캡처만 쌓는 한 달.


선율의 말은 단순했다.

전화기 너머, 선율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너무 침착해서—윤서는 그 침착함을 일부러 더 오래 듣고 싶어졌다.


“그때까지는, 혹시라도 수상한 전화나 문자, 이메일…
어떤 것도 반응하지 마세요.
저희 수사팀에서 ‘공식 번호’로 오는 연락만 예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수상한 연락이 오면—차단도 하지 마시고요.
지우지도 마세요. 그게 증거입니다.”


윤서는 그대로 했다.

…라고 말하기 전, 윤서는 수화기를 귀에 더 바짝 붙였다.


숨이 한 번 길게 새었다가—목에서 걸렸다.

“네… 알겠어요.”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윤서는 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손바닥이 미끄러져 케이스가 작게 긁혔다.


그 작은 소리 하나에, 윤서는 더 약한 목소리를 골랐다.

“그런데… 혹시,”


윤서가 말을 삼켰다.
말끝이 끊기고, ‘네…’가 늦게 따라붙는 대신—침묵이 먼저 흘렀다.

윤서는 일부러 그 침묵을 한 박자 더 길게 남겼다.

“그 연락들… 계속 오면… 괜찮을까요?”


선율이 대답하기도 전에 윤서는 급하게 덧붙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도움을 구하는 사람처럼.

“제가… 제가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요.”


윤서는 그동안

차단하지 않고,
지우지 않고,
캡처만 쌓았다.

선율이 말한 대로—겉으로는.


하지만 윤서는 알고 있었다.
이건 ‘수사에 협조’가 아니라, ‘의도된 연출’이라는 걸.


그리고 윤서는 더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은 ‘피해자’가 아니라,

경찰서에서 한 번 ‘용의자’로 찍힌 사람이라는 걸.

입을 여는 순간, 그 말은 협조가 아니라 진술이 된다.
진술은 언제든—유리한 해명이 아니라, 확정된 혐의로 바뀐다.


그래서 윤서는 말하지 않았다.
말 대신, 캡처만 쌓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 사건이 남기는 건 무죄가 아니라—사용법이었다.


윤서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적어도 ‘혐의’ 자체는.

자기가 한 일이 아니었다.

돈도, 계정도, 흐름도—그녀와 무관했다.
시간이 걸릴 뿐,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윤서는 떨지 않았다.

떨리는 척만 했다.


윤서는 아주 잠깐, 눈꺼풀을 내렸다.
그리고 속으로—문장 하나를 완성했다.

“AI로 날 투자사기에 이용을 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그럼… 난 이걸 이용하면 되겠네.”


오는 것들 중 일부는 진짜였다.
이미 돌아다니는 리스트에 올라간 번호와 이메일.

이도윤으로부터 대충 전달받아 훑어본 그녀를 사칭한 AI 캠페인—

조용히, 정확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지만 일부는—

윤서가 일부러 남겨둔 것들이었다.


‘증거’처럼 보이게.
‘피해자’처럼 보이게.


수상한 번호는 계속 바뀌었다.
문장과 말투도 계속 바뀌었다.
그런데도 공통점은 늘 같았다.


너무 정중했고,
너무 깔끔했고,
너무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늘 같은 단어로 포장돼 있었다.

검증.

검증 완료.
검증된 수익.
검증된 시스템.


그 말이 많을수록, 더 위험했다.

윤서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캡처 버튼을 눌렀다.

딱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선율이 원하는 건 ‘반응하지 않는 피해자’였다.

윤서는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통화가 끝나려는 기척이 느껴지자, 윤서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형사님…”


“네, 말씀하세요.”


윤서는 숨을 한 번 더 삼켰다.
그리고 가장 ‘피해자’ 다운 질문을 꺼냈다.


“저…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 되는 거죠?
제가… 뭘 잘못한 건 아니죠?”


짧은 정적.
그 정적이 선율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걸—윤서는 알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저희가 끝까지 확인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짧은 안내음.
통화가 끊겼다.


그리고—그 역할이 오래 갈수록,
선율은 더 깊이 믿게 될 것이었다.

윤서는 폰 화면을 내려보며, 캡처를 저장했다.

하나, 둘, 셋…
증거는 늘어났는데,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 윤서는 한국에 심어둔 그림자 이도윤 기자에게서
선율이 모르는 조각들을 조용히 받아보고 있었다.

수사정보가 아니었다.

취재로 긁어모은 조각들이었다.


피해자들이 보낸 캡처,
닫힌 커뮤니티의 제보,
광고 계정이 남긴 흔적들.


그 조각들을 한데 놓자, 패턴이 보였다.

문자와 이메일은 끊임없이 떴다.

어떤 메시지는 지나치게 정중했고,

어떤 링크는 지나치게 깔끔했고,
어떤 계정은 “성공한 사람의 삶”을 지나치게 잘 흉내 냈다.


소개 글은 늘 비슷했다.
짧고, 확신 있고, “검증”이란 단어가 유난히 많았다.

그리고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상대는 계속 “윤서”를 불렀다.

이름을 반복해서,

이름을 진짜처럼 만들었다.


이도윤과의 통화는 길지 않았다.
둘 다—길게 말하면 기록이 남는다는 걸 알았다.


도윤: “실장님...”


이도윤이 숨을 한 번 고르고, 짧게 던졌다.

도윤: “여기에 패턴이 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떠요.

피해자들 캡처가 계속 들어옵니다.”


윤서: “내용은?”


도윤: “너무 정중해요. 링크는 너무 깔끔하고요.
계정들은… ‘성공한 사람’ 흉내를 너무 잘 냅니다.”


윤서가 낮게 물었다.

“이름은?”


도윤: “계속 불려요. ‘최윤서’라고.”


이도윤이 덧붙였다.

“이름을 반복해서… 진짜처럼 만들어요.”

윤서는 잠깐 웃을 뻔했다.

웃음이 아니라—확인이었다.


이도윤이 말을 이었다.
“재밌는 건요, 실장님. 여기선 실장님이 잠적한 연예인이 아니에요.”

윤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윤서: “…그럼, 뭐로 돼 있는데?”


도윤: “‘성공한 투자자’ 요. 프로필, 기사 캡처, 인터뷰까지 깔아놨습니다.”


윤서가 쓴웃음을 삼켰다.

“진짜 저렇게 성공했으면… 내가 여기까지 오진 않았겠지.”


이도윤이 잠깐 말을 멈췄다가, 낮게 물었다.

“실장님, 그건 그렇고… 고윤아 쪽은요. 계속 파볼까요?”


짧은 정적.

“설마… 잊으신 건 아니죠?”


윤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늦을수록, 상대는 더 말을 얹었다.


“저는… 요구하신 대로 다 맞춰드렸습니다.”


이도윤이 목소리를 낮췄다.

“설마 지금 와서… 방향 트시는 건 아니죠?”


통화 너머로, 윤서의 숨이 아주 얕게 들렸다.

잠깐.

그리고 윤서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잊을 리가...”


그 한마디에,
한 달 동안 쌓인 캡처들이 갑자기—다른 의미로 보였다.

윤서는 화면 속 ‘성공한 투자자’의 웃는 얼굴을 잠깐 바라봤다.

그건 그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윤서는 폰을 내려놓고,
캡처 폴더를 다시 열었다.


이름이 반복되고 있었다.

윤서.
윤서.
윤서.


이름은, 진짜가 되어가고 있었다.

최윤서.


—다음: 16장-1부 에서…


안녕하세요.

독자분들의 원활한 열람을 위해 본편(최신 회차) 업로드 일정을 아래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본편 연재 업로드 일정]

3부 구성 챕터: 화~목, 하루 1부씩 업로드

4부 구성 챕터: 화~금, 하루 1부씩 업로드

※ 가능한 한 각 챕터는 동일 주 내 업로드를 완료하여, 이야기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운영하겠습니다.


통합본(정주행용) 업로드 안내

통합본은 매주 월요일 업로드됩니다.

현재 통합본은 본편 진행 상황 대비 약 2~3 챕터 정도 후행하고 있습니다. 통합본은 정주행 하시는 분들을 위한 아카이브(묶음) 버전으로, 완결된 챕터부터 순차적으로 묶어 업로드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꾸준히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작품 속 사건은 허구 또는 각색이며, 어떠한 범죄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저작권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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