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에 안으면 6장-3부

(When I Hold You in My Arms)

by 스팅비 StinGBee

커버포스터 1 최종.png 컴퓨터는 조용히, 빠르게,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화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PART 3/3] 너를 품에 안으면 [6장-3부] — “Don’t mess with Texas.”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6-3)

다음날도 똑같이 학교 앞에서 담배를 꺼냈다.
동생이랑 말없이 피웠다.

동생은 오늘도 말이 없었다.

대신—눈이 더 빨랐다.


멀리서 오는 발소리, 문 열리는 소리, 차가 멈추는 소리.
그런 걸 먼저 듣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멀리서부터 보였다.

경찰관 둘.
선생님 셋.


걸음이 일정했다.
급하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았다.

마치 이 동네에선 이런 장면이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경찰관이 가까이 와서 말했다.


“What are you guys doing? Put that cigarette out!”
(자막: 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그 담배 꺼.)


뉴욕 경찰은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거칠고, 시끄럽고, 때로는 미친 듯이 화가 나 있었다.

근데 여기 경찰은 달랐다.

감정이 아니라 절차로 사람을 눌렀다.

그게 더 숨 막혔다.

소년이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발끝으로 한 번 더 눌러 끄고—그냥 가려 했다.


그때, 경찰이 짧게 끊었다.

“Uh-uh-uh.”

(자막: 어어어.)

턱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Pick that up.”

(자막: 그거 주워.)


소년이 멈칫하자 경찰이 이어 말했다.
화가 난 게 아니라—규칙을 읽어주는 톤이었다.

I don’t know where you guys are from, but that’s not how it works here.

(자막: 너네 어디서 왔는진 모르겠는데, 여기선 그렇게 안 해.)

그리고 마지막에, 딱 한 줄.

“Don’t mess with Texas.”

(자막: 텍사스 더럽히지 마.)


소년과 동생은 서로를 봤다.
말은 없었다.

대신 얼굴에 동시에 떠오른 표정 하나.

진짜로—“what the f—k.”

(자막: 씨발...)


동생의 눈이 한번 뒤집혔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텐데,
지금은 혀끝까지 욕이 올라오는 얼굴이었다.

소년이 아주 낮게—동생만 들리게 말했다.

“야. 됐다.”


동생은 이를 한 번 악물고,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소년은 천천히 몸을 숙여

담배꽁초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그 문장이 더 오래 남았다.

not allowed도 아니고, detention도 아니고—

그냥 한 줄.

Don’t mess with Texas.

(자막: 텍사스 더럽히지 마.)

그때 들었던 소리는 규칙이 아니라, 경계선이었다.

여기부터는 너희가 알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 확실한 선이 느껴졌다.


예상했던 대로, 앞에는 나이 많은 백인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딱 봐도 교장 같았다.
아니면 최소한, 이 학교에서 애들 혼내는 일을 맡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반듯한 셔츠, 굳은 표정, 그리고 애들 변명쯤은 수도 없이 들어봤다는 얼굴.

그가 두 형제를 한번 쓱 훑어보더니 말했다.

“You boys get caught smoking again, and next time it’s gonna be a whole lot worse. For today, you’re going to D-Hall.”
(자막: 너희 앞으로 또 담배 피우다 걸리면 다음엔 훨씬 더 크게 벌 받을 거야. 오늘은 D-Hall이다.)


말투는 크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더 기분 나빴다.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미 끝났다는 식이었다.

소년과 동생은 동시에 옆을 돌아봤다.


동생이 얼굴을 찌푸리며 낮게 말했다.

“What the f—k is D-Hall?”

(자막: 씨발, D-Hall이 뭔데?)

소년도 작게 받아쳤다.

“How should I know?”
(자막: 내가 어떻게 아냐.)

동생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Man, what kind of name is that?”
(자막: 아니, 이름이 왜 저따위야?)


알고 보니 별거 아니었다.
뉴욕에서 흔히 듣던 detention.
수업 끝나고 남겨 두는 벌반, 반성실 같은 거였다.
이름만 D-Hall로 달랐을 뿐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이상하게 달랐다.
detention이라고 했으면 바로 알아들었을 걸,
D-Hall이라는 낯선 말 하나가 붙는 순간
마치 훨씬 더 심한 데로 끌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년은 그 순간 어렴풋이 알았다.
여긴 말만 다른 곳이 아니었다.
혼나는 방식도, 선을 긋는 방식도,
사람을 겁주고 길들이는 방식도 전부 달랐다.

그날 이후로도, 학교는 계속 비슷했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반듯한데
그 반듯함이 소년을 더 구석으로 몰아넣는 느낌이었다.


시간 나면 소년은 컴퓨터가 아니라 콘솔게임을 켰고,
VHS를 돌렸고,

근처 한국 비디오 가게에서
한국 드라마나 음악 프로그램, 예능을 빌려 보곤 했다.

한국말이 들리면
머리 어딘가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날이 갈수록 변해 가는 한국의 모습을
비디오로 따라 본다는 건
소년에게 꽤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학교에선 카우보이 학생들하고 몇 번 소동도 있었지만
아직은 “큰 문제”까진 아니었다.

말이 소동이지—

사실은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 눈치 싸움이었다.


겨우 졸업할 때쯤 몇 안 되는 한국 학생들과 엮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페트릭이었다.

그는 한국말은 전혀 못 했다.

한국인이긴 한데… 한국의 냄새가 하나도 없었다.

소년은 페트릭이랑 친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친해진 척했다.


차가 없어서
스쿨버스를 타야 했는데,
소년은 그게 죽어도 싫었다.

스쿨버스는 이상하게
“나는 여기서 밑바닥이다”라는
표식처럼 느껴졌다.

한마디로—
쪽팔렸다.


마침 페트릭은 차가 있었다.
그래서 소년은 거의 매일 페트릭 차를 이용했다.

페트릭은 솔직히 좀 찌질했다.

근데 그 찌질함이 소년한테는 편했다.

위협도 없고 평가도 없었다.

소년은 속으로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이건 우정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걸 인정하면 자기가 너무 비겁해지는 것 같아서.

페트릭은 당시 한국에서 뜨던 "서태지와 아이들"에 미쳐 있었다.

노래는 제대로 못 따라 하는데
음악만 나오면 눈이 반짝였고
춤도 따라 하려고 애쓰는 게 너무 어설퍼서—
소년은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묘하게 안심했다.


…아,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그렇게 별일 없이 졸업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근데 그때, 소년은 몰랐다.

자기가 VHS를 돌리고 게임을 하고
한국 비디오 가게에서 시간을 버티는 사이—


어느 한쪽에서,
컴퓨터는 조용히, 빠르게,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화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진화가 소년에게 닿을 때는

그냥 “편리함”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정확하게, 아주 잔인하게
소년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걸.


—다음: 7장-1부에서…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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