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에 안으면 15장-4부

(When I Hold You in My Arms)

by 스팅비 StinGBee

커버포스터 완전판 수정본.png “근데 정작 걸려드는 사람들은—시간의 쫓기고 급박한 사람들입니다.”

[PART 4/4] 너를 품에 안으면 [15장-4부] — 복제된 신뢰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5-4)

한 달 후

한 달은 길었다.


사건은 해외에서 돌고, AI는 얼굴과 목소리를 바꿔치기했다.
그래서 수사는 늘 한 박자씩 늦었다.


그 한 달 동안, 윤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반응하지 않고,

답하지 않고,
캡처만 쌓는 한 달.


선율의 말은 단순했다.

전화기 너머, 선율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너무 침착해서—윤서는 그 침착함을 일부러 더 오래 듣고 싶어졌다.


“그때까지는, 혹시라도 수상한 전화나 문자, 이메일…
어떤 것도 반응하지 마세요.
저희 수사팀에서 ‘공식 번호’로 오는 연락만 예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수상한 연락이 오면—차단도 하지 마시고요.
지우지도 마세요. 그게 증거입니다.”


윤서는 그대로 했다.

…라고 말하기 전, 윤서는 수화기를 귀에 더 바짝 붙였다.


숨이 한 번 길게 새었다가—목에서 걸렸다.

“네… 알겠어요.”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윤서는 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손바닥이 미끄러져 케이스가 작게 긁혔다.


그 작은 소리 하나에, 윤서는 더 약한 목소리를 골랐다.

“그런데… 혹시,”


윤서가 말을 삼켰다.
말끝이 끊기고, ‘네…’가 늦게 따라붙는 대신—침묵이 먼저 흘렀다.


윤서는 일부러 그 침묵을 한 박자 더 길게 남겼다.

“그 연락들… 계속 오면… 괜찮을까요?”


선율이 대답하기도 전에 윤서는 급하게 덧붙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도움을 구하는 사람처럼.

“제가… 제가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요.”


윤서는 그동안

차단하지 않고,
지우지 않고,
캡처만 쌓았다.

선율이 말한 대로—겉으로는.


하지만 윤서는 알고 있었다.
이건 ‘수사에 협조’가 아니라, ‘의도된 연출’이라는 걸.


그리고 윤서는 더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은 ‘피해자’가 아니라,

경찰서에서 한 번 ‘용의자’로 찍힌 사람이라는 걸.


입을 여는 순간, 그 말은 협조가 아니라 진술이 된다.
진술은 언제든—유리한 해명이 아니라, 확정된 혐의로 바뀐다.


그래서 윤서는 말하지 않았다.
말 대신, 캡처만 쌓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 사건이 남기는 건 무죄가 아니라—사용법이었다.


윤서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적어도 ‘혐의’ 자체는.

자기가 한 일이 아니었다.


돈도, 계정도, 흐름도—그녀와 무관했다.
시간이 걸릴 뿐,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윤서는 떨지 않았다.
떨리는 척만 했다.


윤서는 아주 잠깐, 눈꺼풀을 내렸다.
그리고 속으로—문장 하나를 완성했다.


“AI로 날 투자사기에 이용을 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그럼… 난 이걸 이용하면 되겠네.”


오는 것들 중 일부는 진짜였다.
이미 돌아다니는 리스트에 올라간 번호와 이메일.


이도윤으로부터 대충 전달받아 훑어본 그녀를 사칭한 AI 캠페인—
조용히, 정확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지만 일부는—
윤서가 일부러 남겨둔 것들이었다.


‘증거’처럼 보이게.
‘피해자’처럼 보이게.


수상한 번호는 계속 바뀌었다.
문장과 말투도 계속 바뀌었다.
그런데도 공통점은 늘 같았다.


너무 정중했고,
너무 깔끔했고,
너무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늘 같은 단어로 포장돼 있었다.

검증.

검증 완료.
검증된 수익.
검증된 시스템.


그 말이 많을수록, 더 위험했다.

윤서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캡처 버튼을 눌렀다.

딱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선율이 원하는 건 ‘반응하지 않는 피해자’였다.
윤서는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통화가 끝나려는 기척이 느껴지자, 윤서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형사님…”


“네, 말씀하세요.”


윤서는 숨을 한 번 더 삼켰다.
그리고 가장 ‘피해자’ 다운 질문을 꺼냈다.


“저…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 되는 거죠?
제가… 뭘 잘못한 건 아니죠?”


짧은 정적.
그 정적이 선율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걸—윤서는 알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저희가 끝까지 확인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짧은 안내음.
통화가 끊겼다.


그리고—그 역할이 오래 갈수록,
선율은 더 깊이 믿게 될 것이었다.


윤서는 폰 화면을 내려보며, 캡처를 저장했다.
하나, 둘, 셋…
증거는 늘어났는데,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 윤서는 한국에 심어둔 그림자 이도윤 기자에게서
선율이 모르는 조각들을 조용히 받아보고 있었다.


수사정보가 아니었다.
취재로 긁어모은 조각들이었다.


피해자들이 보낸 캡처,
닫힌 커뮤니티의 제보,
광고 계정이 남긴 흔적들.


그 조각들을 한데 놓자, 패턴이 보였다.

문자와 이메일은 끊임없이 떴다.


어떤 메시지는 지나치게 정중했고,
어떤 링크는 지나치게 깔끔했고,
어떤 계정은 “성공한 사람의 삶”을 지나치게 잘 흉내 냈다.


소개 글은 늘 비슷했다.
짧고, 확신 있고, “검증”이란 단어가 유난히 많았다.


그리고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상대는 계속 “윤서”를 불렀다.


이름을 반복해서,

이름을 진짜처럼 만들었다.


이도윤과의 통화는 길지 않았다.
둘 다—길게 말하면 기록이 남는다는 걸 알았다.


도윤: “실장님...”


이도윤이 숨을 한 번 고르고, 짧게 던졌다.

도윤: “여기에 패턴이 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떠요.

피해자들 캡처가 계속 들어옵니다.”


윤서: “내용은?”


도윤: “너무 정중해요. 링크는 너무 깔끔하고요.
계정들은… ‘성공한 사람’ 흉내를 너무 잘 냅니다.”


윤서가 낮게 물었다.

“이름은.”


도윤: “계속 불려요. ‘최윤서’라고.”


이도윤이 덧붙였다.

“이름을 반복해서… 진짜처럼 만들어요.”


윤서는 잠깐 웃을 뻔했다.
웃음이 아니라—확인이었다.


이도윤이 말을 이었다.

“재밌는 건요, 실장님. 여기선 실장님이 잠적한 연예인이 아니에요.”


윤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윤서: “…그럼?”


도윤: “‘성공한 투자자’ 요. 프로필, 기사 캡처, 인터뷰까지 깔아놨습니다.”


윤서가 쓴웃음을 삼켰다.

“진짜 저렇게 성공했으면… 내가 여기까지 오진 않았겠지.”


이도윤이 잠깐 말을 멈췄다가, 낮게 물었다.

“실장님, 그건 그렇고… 고윤아 쪽은요. 계속 파볼까요?”


짧은 정적.

“설마… 잊으신 건 아니죠?”


윤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늦을수록, 상대는 더 말을 얹었다.


“저는… 실장님이 하자는 건 다 해드렸습니다.”


이도윤이 목소리를 낮췄다.

“설마 지금 와서… 방향 트시는 건 아니죠?”


통화 너머로, 윤서의 숨이 아주 얕게 들렸다.

잠깐.

그리고 윤서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잊을 리가...”


그 한마디에,
한 달 동안 쌓인 캡처들이 갑자기—다른 의미로 보였다.


윤서는 화면 속 ‘성공한 투자자’의 웃는 얼굴을 잠깐 바라봤다.

그건 그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윤서는 폰을 내려놓고,
캡처 폴더를 다시 열었다.


이름이 반복되고 있었다.

윤서.
윤서.
윤서.


이름은, 진짜가 되어가고 있었다.

최윤서.


—다음: 16장-1부 에서…


안녕하세요.

독자분들의 원활한 열람을 위해 본편(최신 회차) 업로드 일정을 아래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본편 연재 업로드 일정]

3부 구성 챕터: 화~목, 하루 1부씩 업로드

4부 구성 챕터: 화~금, 하루 1부씩 업로드

※ 가능한 한 각 챕터는 동일 주 내 업로드를 완료하여, 이야기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운영하겠습니다.


통합본(정주행용) 업로드 안내

통합본은 매주 월요일 업로드됩니다.

현재 통합본은 본편 진행 상황 대비 약 2~3 챕터 정도 후행하고 있습니다. 통합본은 정주행 하시는 분들을 위한 아카이브(묶음) 버전으로, 완결된 챕터부터 순차적으로 묶어 업로드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꾸준히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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