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마음의 우물에 깊이 빠진 듯한 날이 있다.
그 마음의 우물에 빠져 한없이 우울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그런 날.
날씨가 너무 좋아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걸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은 날이 있다.
죽고 싶진 않지만 복잡한 세상살이 벗어던지고 지금 이대로 증발해버렸으면 하는 날.
나는 사람마다 마음의 아픔을 견딜 수 있는 종이를 한 장씩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물에 잘 젖지 않게 코팅까지 한 두꺼운 하드보드지와 같은 마음의 종이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어떤 사람은 금방 찢어지고 물에 젖어버리는 습자지 같은 마음의 종이를 가지고 태어난다. 똑같은 아픔이 왔을 때 두껍고 튼튼한 마음의 종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버티겠지만, 습자지 같은 얇은 마음의 종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죽을 만큼 괴로울 것이다.
물론 이런 마음의 종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가족으로부터 충분히 많은 지지를 받거나 스스로 단단하게 테이프를 동여맬 수 있겠지.
나의 경우 튼튼하지는 않아도 보통 정도는 되는 A4용지 정도의 마음의 종이를 가지고 태어났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나마 있던 종이가 상하는 일들이 많았다. A4용지로 시작된 마음의 종이는 여러 일들을 겪으며 단단해지지 못하고 그대로 찢어지고 얇아져 버렸다. 보통 이럴 때 마음의 병이 오는 것 같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 종이가 전부 찢어져 버렸을 때. 그러니 지금 마음의 병을 얻어 본인이 약하다고 느껴질 때. ‘다들 이 정도는 버티고 사는데 왜 나는 이것도 견디지 못할까.’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난 마음의 종이의 두께가 다르고 종류가 달랐으니, 남들은 잘 견디는 그 일들이 나에게는 죽을 만큼 힘들 수 있다. 그리고 두께만 다를 뿐 종이는 전부 변색되고 찢어지고, 상처가 난다. 아무리 두꺼운 하드보드지를 가지고 태어났어도 모두 아프다. 우리가 살아봐서 알지만 세상을 살아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예상치 못한 슬픔이 깊숙하게 박히기도 하니까. 그러니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아 너덜너덜해진 나의 마음에 나까지 상처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 다 버티는 것을 너는 왜 이것도 못 버티냐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나를 너무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타고난 마음의 종이가 다른 탓이니 내가 나를 조금 더 안쓰럽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
모든 치유는 인정에서 시작된다. 내 마음의 종이가 많이 상해 다시 쓸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인정하고 다시 이 종이를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주변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상하게 이 종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깊게 찢어지지만, 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단단하게 치료받기도 한다. 기대하지 않고 동생에게 한 전화 한 통에 치유받기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 써나갈 나의 글도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