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은 10권!
매달 월말이 되면 다음 달 계획을 세운다. 모임을 체크하고 모임마다 읽을 책을 책상 모서리에 챙겨둔다. 모임이 6개 그곳에서 읽을 책이 7권. 한두 권 읽고 싶은 책까지 가져오면 책상 모서리에 움직이는데 걸리적거릴 만큼 책이 쌓인다. 내 한 달은 이곳을 비워가는 과정이다.
애서가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책이 쌓이고 읽을 게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좋은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한 달을 쪼개 책로드맵을 작성하다 한숨만 백만 번이다. 한 달에 10권이면 한주에 2~3권을 읽어야 한다. 이걸 읽고, 정리하고, 마인드맵을 그리고 글을... 아무도 강제하지 않았다.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라 당장 다음 달부터 그만둬도 사실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사서 받고 있는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성장 조급증 때문이다.
나는 경험이 없다. 학교 말고, 시험공부 말고 한 게 아무것도 없이 마흔을 넘겼다. 세상을 알게 되면서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잠재력이고 적성이고 이런 건 감도 오지 않을 뿐 아니라 당장 책도 읽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중년을 맞이했다. 그때부터 걸려 넘어질 듯 전력질주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달려도 남들과 비교해 걸음마 하는 것 같았고 전력질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붉은 여왕의 가설처럼 나만 정체되어 있는 듯 보였다. 숨이 턱까지 찼는데 말이다.
이런 불안과 조급이 지금 내 공부스타일을 만들었다. 우선 가만있지 못한다. 공백의 시간이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간을 버린다는 느낌에 마음이 불편했다. 전력질주로 일을 하나 끝내고 다른 일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끝나기 전에 다른 일을 시작해야 불안감을 줄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스트레스를 생성하며 사는 삶이다.
휴가는 스트레스의 해소가 되지 못했다. 내게 남들 하는 휴가는 더 큰 스트레스였다. 가만히 있는 게 불편해 휴가와 상관없이 휴가지에서 모임을 모두 진행하고, 2박 3일 여행에 책을 두 권 이상 챙겨가야 마음이 놓였다. 이동시간 중에 꼭 한 권을 완독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야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지금 이 글을 나누는 자리도 가족 여행지에서다. 딸과의 유럽여행에서는 3개의 미션을 수행했다. 첫 번째, 여행 전 여행지 관련 소설 1권과 에세이 1권을 읽었다. 두 번째는 여행 중 여행기록 노트를 한 권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미션으로 다녀와서 20개 이상의 포스팅과 포토북을 만들었다. 내 여행은 이런 식이었다. 가만히 있다는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미리 스트레스를 만들어 가져 다녔다.
이런 끊이지 않는 불안감과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삶은 의지력의 한계와 체력의 한계를 가져왔다. 문제는 스트레스라기보다 조급함과 불안이었다. 조급함과 불안을 없애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성공경험이다. 성공을 경험하는 바로 그날이 도파민이 터지면서 스트레스가 소멸하는 순간이다. 물론 스트레스 제로의 상태는 몇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순간의 쾌감은 그 무엇보다 건설적이면서도 짜릿하다. 이런 반복의 경험은 조급과 불안을 서서히 줄여준다고 믿는다.
이게 다일수 없다. 성장과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억지로 헬스장에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난 계단운동에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계단운동 20분, 처음에는 하늘이 노랗고 옷이 땀으로 흠뻑 젖으며 마냥 힘들다. 하지만 5번만 해보면 브레이포그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브레인포그는 스트레스와 수면의 질 저하, 음식 알레르기, 소장 내 세균 과잉 증식, 호르몬 변화 등에 의해 생기는 뇌신경의 미세한 염증으로 집중력 감소와 기억력 저하, 피로감, 우울, 식욕저하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현대인의 질병이다. 이름처럼 머리가 뿌연 연기에 쌓인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브레인포그에 즉효 처방이 유산소운동이다. 힘든 유산소운동을 하고 나면 처음에는 피로감을 느끼지만 1시간 정도 이후 머리가 명료해지고 이유 없이 즐거워진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또 하나의 날 위한 선물로 한 달에 한 번씩 친구와 책수다 날을 가진다. 시간은 보통 4시간, 모자란 시간에 매번 아쉬움을 남기며 대화를 마친다. 만남의 허무를 줄이기 위해서 비교적 혼자 읽기 힘든 책 한 권을 읽고 책에 기대어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진다. 책과 친구, 맛있는 음식과 색다른 장소는 서로를 서로에게 더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나는 그녀를 뮤즈라 부른다.
내 취미가 무엇인지 고민해 봤다. 취미는 스트레스를 날려준다고들 하기에... 독서? 아니다. 독서는 아까 말했지만 스트레스의 요인일 가능성이 크다. 공부? 역시 아니다. 내가 그 정도로 변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취가 좋은 것이지 공부는 힘들다. 하고 싶고 했을 때 즐거운 무엇. 하고 나면 노래가 절로 나오는 그것. 나는 모임이 좋다. 특히나 책을 나누는 모임을 좋아한다. 내 짧은 경험에 그들의 수백 년이 합쳐져 채워짐의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스트레스받으며 책을 읽는다.
스트레스받는 지금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스트레스 덕분에 글도 쓰고 모임도 하고 모임에서 즐거움도 느낀다. 쌓아놓은 과제를 줄이려는 스트레스 덕분에 완성도를 낮추고 해내는 일과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일의 구분도 가능해졌다. 사람이 모두 완벽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도 쌓이는 과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잠시 멈춰도 되고 집중하기 위해 하나에만 몰입하는 시간을 가져도 된다. 이런 삶의 과제를 해결해 가는 방법을 스트레스를 통해 배웠다.
그래도 읽어야 하는 책 생각하면...
아! 스트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