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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Jun 06. 2024

피아노 뭐 치세요?

쇼팽 에뛰드 10-12번.


피아노를 친다고 하면 다들 뭐 치는지 궁금한가 보다.

꿈의 곡. 사람들이 쇼팽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곡이다. 이곡을 피아노 연주하는 것, 오래된 내 버킷리스트였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던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때 처음으로 전축이라는 세계를 만났다. 지금 생각해도 이게 우리 집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부모님 중에 음악을 좋아하는 분은 없다. 지금은 트로트를 몇 곡 흥얼거리는 게 전부였고, 돈을 주고 음악을 듣기 위해 테이프나 CD를 구입하는 건 이해 안 될 일이었다. 단지 남들 집에 다 있는 must have item이라 우리 집에도 전축이 텔레비전 받침대 역할로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도 친정에 30년 그대로 골동품 기계가 텔레비전을 받치고 있다.


CD플레이어가 있었지만 한 번도 CD를 산적은 없었다. 구입할 때 사은품으로 들어온 CD 3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거기서 처음 들은 쇼팽 에뛰드 10-12번이었다. 피아노 독주곡이었고 누가 연주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 태어나 처음 피아노 연주곡을 듣고 피아노의 해머가 마음을 울렸다. CD가 망가질 때까지 그 곡을 들었고, 처음 듣던 그때부터 쇼팽의 혁명은 내 인생곡이자 피아노로 연주하고 싶은 내 꿈의 곡이 되었다.


1980~90년대 피아노 학원에서는 찍어낸 듯 일률적인 교육을 했다. 아무리 내가 무슨 곡을 치고 싶다고 하더라도 헛소리일 뿐이었다. 초등학생시절 집에 사람이 없어서 보육의 차원에서 나와 동생을 피아노 학원에 가게 되었다. 그러니 부모님도, 한꺼번에 7명의 아이를 레슨 해야 했던 피아노 선생님에게도 내 꿈의 곡 같은 건 관심 밖이었다.  


인생 과제를 해결하느라 나도 잊고 산지 오래, 7살 딸과 함께 피아노 레슨을 등록하게 되었다. 우울증으로 마음의 치유가 필요했던 때였다. 남편 공보의 월급만으로 빠듯하게 생활하느라 날 위한 무언가를 안 한 지 오래였지만 성인취미반 레슨을 시작했다. 그리고 잊고 있던 꿈이 되살아났다.


내 일상에 가장 남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한쪽 구석이다. 소중하고 사랑함에 누군가의 응원이 필요 없는 나만의 향유였다. 딸이 지금 13살이고 피아노 친지 7년이 되었으니 내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은 지도 7년이 되었다. 쉬운 유에이지로 시작한 레슨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드뷔시의 달빛,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거쳐 쇼팽의 에뛰드를 1년에 한곡씩 천천히 넘어가고 있다. 첫 에뛰드는 흑건이라고들 부르는 쇼팽 에뛰드 10-5번이었다. 그리고 작년 10월부터 드디어 쇼팽의 혁명을 연습하고 있다.


실력이 늘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2년 동안 같은 곡을 칠 각오를 하고 시작했다. 곡이 정해지고 연습 전부터 지금까지 조성진의 쇼팽 혁명은 1000번도 더 들은듯하다. 500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 곡이 클래식이라서도 있겠지만 그 아름다운 곡을 내가 친다는 현실 그러나 환상에 가까운 이미지 트레이닝 덕분이다. 내가 뚱땅거리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대가들의 연주를 들으며 손가락을 움직여보기도 하고 그들의 연주에 눈을 감고 악보를 그려보기도 한다. 나만의 안락의자에 거금을 들여산 헤드셋을 끼고 3분 남짓한 그 곡만으로 30분쯤 듣고 나면 마치 내가 연주라도 마친 것처럼 기쁨과 자신감이 솟아난다.


곡을 완성해 가는 여정은 전혀 아름답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서 일주일에 한 번 받는 레슨이 전부 인 때가 더 많다. 완성할 수 있을까 의심이 수시로 올라와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다. 성향 탓인지 나처럼 노력형 인간에게는 여유로운 향유는 게으름처럼 느껴진다. 이것도 병이다. 내겐 향유도 어느 정도 노력형이다. 어렵기만 한 악보를 어쨌든 레슨 받은 지가 9개월이 되어가고 머리가 아니라 손이 기억해 간다. 어설픈 연주 속에도 어제보다 오늘 오른손의 멜로디가 더 살아난다. 건반을 맞게 누르느라 정신없다가 살짝의 여유로 셈여림의 표시, 페달에 신경을 쓰면 가슴이 뚫리는 느낌이다. 그만큼 평소 답답하게 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요새 들어 드디어 수도 없이 들었던 그들의 연주가 내가 치는 동안 순간의 찰나적 떠오름이 생겼다. '조성진은 이렇게 쳤었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로 도파민 폭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절대 흉내 비슷하게도 내지는 못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상 속의 나는 얼굴에까지 감정을 쏟으며 악보도 없이 멋진 연주를 미스터치 없이 할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는 손이 말을 안 듣는다. 선생님은 매번 말씀하신다. "어머님 하농 좀 치셔요^^"


나는 오늘도 연습이라고 쓰고 향유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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