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쉼과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쉼이 있기에 각자의 하루를 만들어나간다. 하루가 24시간이고 보통 우리는 세 종류의 시간을 보낸다. 8시간쯤 일을 하고 8시간쯤 잠을 잔다. 그리고 남은 8시간 생리적인 활동과 선택적인 활동을 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삶의 1/3 정도 휴식에 시간을 쓴다. 쉼에는 저마다 다른 가치와 기준을 가진다. 휴식시간의 편안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데 반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내가 그렇다. 쉬는 게 편하지 않다. 오랜 시간 체화되어 버린 성장 조급증 때문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다른 휴식이 시간낭비로 느껴졌다. 늘 계획표에는 도달하기 힘들 만큼의 계획이 들어와 있었고 잠시의 짬도 놓치면 안 되었다. 휴식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더 많은 실패를 의미했다.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편하고 즐거운 마음이 아니라 돌아온 후 쌓여있는 할 일의 걱정이 먼저 떠올랐다. 여행 계획의 앞뒤로 더 많은 할 일을 배정하곤 했다. 그랬으니 여행이란 것을 휴식으로 느낄 수가 없었다.
내 유일한 휴식은 수면이었다. 다행히 수면의 질이 좋다. 베개에 머리를 얹고 2분 이내 잠든다. 중간에 깨는 일은 거의 없고 아침 아주 작은 소리로 설정해 둔 알람이 울리면 오뚝이처럼 일어난다. 10시~11시부터 4시까지 5~6시간은 죽은 듯 잘 수 있다. 하지만 이만큼의 수면시간은 내게 휴식으로 충분하지 못했다. 일주일 중 2번 정도 2~3시간의 낮잠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낮잠은 30분 이상 자게 되면 오히려 활력을 떨어뜨리고 멍한 상태를 만든다고들 한다. 또 긴 낮잠시간 이후 밤잠을 잘 자지 못하고 불면증을 유발한다. 어떤 이론이든 대게 그렇다는 거다. 개인차가 있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3시간 낮잠을 자고도 밤잠 잘 때 한 번도 누워서 잠 못 자고 5분을 넘겨본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2~3시간 낮잠 잔 후 일어나 3시간 쉬지 않고 어떤 일에 몰두할 수 있다. 단점이 있다면 낮잠 후 집안일을 시키면 화가 난다. 그만큼 성과에 결정적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수면 만으로 마음의 휴식이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타이트하게 조여졌던 집중을 풀면서 환기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명상, 체조, 차 한잔, 음악감상, 피아노 치기 등등. 가장 마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쉼이 책에 있었다. 나란 인간은 어느 정도 열심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남들이 생각하기에 정신 사납도록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한꺼번에 읽곤 한다. 지금 읽는 책은 세계철학사 근대 편, 호밀밭의 파수꾼, 생각의 탄생, 방구석 미술관 1이다. 어디 하나 연결점이 없는 책을 쉴 때마다 바꿔 읽을 때 희열감을 느낀다. 이중 휴식을 위한 책은 철학사책을 제외한 3권이다.
일을 하다가 쉬어야 할 시간이 오면 자리를 옮긴다. 같은 곳에서는 과제의 무게가 그대로 얹어있어 반드시 자리를 이동한다. 여건이 안되면 방향이라도 다르게 고쳐 앉는다. 읽던 쉼을 위한 책을 꺼내 표시해 둔 부분부터 읽어나간다. 뭉크의 죽음, 불안(방구석 미술관)에 콜필드의 삐딱한 시선(호밀밭의 파수꾼)이 겹쳐지며 그 안에 비슷한 내 모습을 떠올린다. 소설에 미술이, 미술에 철학이, 소설에 인문학이 끼어든다. 섞이면 섞일수록 쉼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
내 열정적인 휴식은 생각의 전환에서 왔다. 일하던 생각에서의 전환, 일생각에서 벗어남이 곧 휴식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다가도 잠시 그림이야기를 읽고 왔다. 일을 하다 보면 진행이 안될 때가 있다. 그때 조급과 불안이 목구멍에 걸려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때 10분 정도 잠시 보는 책은 목구멍에 걸려있던 조급 불안을 배꼽 정도까지 내려준다. 이후 더 좋은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뜨거워지면서 "아이 C~"이런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아주 가끔씩은 쉬러 들렀던 책 속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의 전환을 발견하기도 한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쉼의 스타일이 있다. 누구의 것이 좋아 보일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들 쓰는 스탠더드형 휴식의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렇다고 지금하고 있는 내 휴식 방법이 내게 맞는 최적의 휴식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아직도 이따금 나는 누군가를 따라 한다. 누군가의 멋져 보이는 휴식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내 순수 욕구 속에서 찾아 실행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 스타일을 만들어간다. 잠도 취미도 결국 나는 모든 걸 고려한 후 내 맘대로다. 일상의 전환, 휴식도 결국은 나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