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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죄악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4살 어린 머리 좋은 의대생 동기들과 함께 본과라는 과정을 해나가면서 내가 가진 무기는 꾸준함과 인내심, 투지뿐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놀고, 먹고, 잘 때 공부해야 했다. 그렇게 공부했지만 나는 내 동기인 남편보다 2배의 많은 시험을 치며 본과 1~2학년을 넘겼다. 시험에 재시험에 재재시험까지 유급 없이 버틴 것도 신기하다. 포기하지 않고 했다는데서 점수를 받은 것 같다. 끝까지 한 덕에 유급 없이 학생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인내력 그게 내 강점이며 그곳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잘 먹지도 자지도 않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게 당연하게 생각되던 본과, 인턴 생활을 마쳤다. 인턴 중 신경외과를 2달 수련했었는데 시골병원 신경외과 인턴에게는 한 달에 딱 2번 퇴근이 허락되었다. 한 달이 30일이면 30일 근무를 하고 28일은 당직이라는 소리다. 지금은 전공의법이 있어서 말도 안 되는 근무조건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실제 인턴의 월급은 시급 1000원이 안된다는 말이 있었다.
몸을 혹사시키는데 최적의 마음가짐으로 공부하고 일하다가 암진단을 받았다. 아이를 잃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그때 내 나이가 36이었다. 딸이 엄마 없이 자라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남편과도 나눈 적이 있을 정도로 상황은 미지수였다. 다행히 나는 젊음과 투지로 암을 잘 극복했다. 그 과정이 당시에는 내게 일어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억울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게 된 고마운 시간이었다. 혹사시키는데 익숙한 나는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갔다. 어쩔 수 없이 급제동으로 멈추게 만든 암이 내 지독한 고된 삶을 끝내버렸다.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되었다. 일을 절반이하로 줄였다. 내 커리어는 사실상 접어버렸다. 아예 접어버리고 나니 그 욕구는 내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한 업무로 지원해 오전근무만 하고 퇴근했다. 우선 아이와 남은 시간을 채워나갔다. 같은 맥락으로 아이도 지금까지 학원에 가지 않게 되었다. 딸이 커가면서 조금씩 내 시간이 생겼고, 조금씩 하고 싶은 게 생겼다. 암진단 후 얻은 워라밸에 웰빙을 더해갔다.
혼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성장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내가 모르던 세상을 알아간다는 재미와 고통은 때로 삶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성장을 갈망하는 인간에게 모두 요구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처음 빠져든 자기 계발의 세계에서는 속도조절이 힘들다. 전력질주 하다가 지쳐 널브러져 있기도 하고 타인과 비교하며 한없이 가라앉기도 했다. 다행히 그래도 나는 그 영토에 계속 남아 있었다. 도망치지 않았다. 내 유일한 장점의 부활, 인내심으로. 혼란의 흔들림, 그 파동은 점차 폭이 줄었다. 인생과 인간에 대한 공부를 할수록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은 커져갔다. 물음은 능력개발에서 시작한 공부를 인문, 예술, 철학으로 옮겨놨다.
절벽에서 떨어져 물속 깊이 들어갔다. 물밖으로 나오려고 온몸에 힘을 주고 허우적거렸다. 겨우 떠있기는 했지만 살기 위한 발버둥을 멈추기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물에 몸을 맡기고 떠있다. 성장 속의 현재 내 모습이다. 아직 곁을 빠른 속도로 제치고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며 힘찬 발길질을 해보기도 하지만 리듬이 깨져버리면 훨씬 힘들어진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내게 잘 사는 방법은 비교라는 랜즈를 통해 밖으로 향한 시선을 내게로 돌리고 사람들을 이해하는데서 온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과거를 통해 지금을 만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나를 사랑하는 게 웰빙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음식 만드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경제공부를 하지 않는데 문제점을 느끼고 있다. 웰빙은 생활 그 어느 한 부분이 무너져도 유지될 수 없다. 과제가 많다는 생각을 하면 또 조급한 마음이 든다. 사람이란 이렇게 계속 고민하고 후회하는 다시 한번 일어서는 존재다.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은 과거에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음식은 주말 한두 번은 횟수를 늘려보고 경제공부는 다음 기회에...
어쨌든 나는 어제의 나보다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