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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Jul 05. 2024

캔버스와 페이지사이 한컷

고전적이며 문학적으로 영화 보기

'아~ 운동 가기 싫다..'


시계를 보니 3시다. 4시에 PT가 예약되어 있어 30분 뒤부터는 옷을 챙겨 입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따라 몸은 나른하고 기분은 가라앉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할 일은 많다. 다음 주에 모임이 3개 있고 아직 덜 읽은 책이 두 권에 써야 할 글은... 휴~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다. 보통 때라면 그럴 일이 없는데 지금은 진짜 아무것도 못하겠다. 남은 30분 중 20분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운동 갈 준비 없이 그대로 침대에 옆으로 누워 휴대폰을 나란히 마주했다. 


숏폼, 유튜브 중독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 영상은 일주일에 한 번 통목욕할 때 10분 정도 보는 게 전부였다. 가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책상에 앉아서 강의처럼 들은 적은 더러 있었다. 쇼츠는 안 본다. '다들 이걸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지?' 하며 유튜브 쇼츠에서 고양이와 강아지가 나오는 영상을 터치했다. 다음 영상도 봤고 그다음 영상도 봤다. 

늦었다! 벌써 40분이 지났다! 


숏폼 영상물이 처음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남는 것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싫어한다. 흘러가고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뭔가 모를 죄의식도 느껴진다. 시간 없어서 영화도 안 보는데 단지 눈이 즐겁기 위해 30~40분을 1분처럼 날려버렸다. 


원래 영상 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TV도 영화도 유튜브도 시간이 있어도 잘 안 본다. 성장에 조급증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세상에 알아야 할 것은 너무 많고 내가 모르는 게 또 너무 많았다. 책은 읽어도 읽어도 줄어들지 않았고 스스로 짜놓은 모임, 계획이 넘치도록 있었다. 영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처음부터 영상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나 연애, 사랑 주제를 안 본다. 이유는...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감정이입이 심하다고나 할까? 영화나 드라마를 본 후 일어나는 감정이 일상을 방해했다. 주인공 남자를 진짜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비슷하게 무섭거나 분노하게 되는 내용도 못 본다. 영상물로 보통의 삶이 힘들 정도로 휘둘려서 아예 휘둘리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안 봤다. 그리고 안보다 보니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영화가 있기는 하다. 뜬금없지만 내게 여행은 어느 정도 문학적이다. 여행에 책이 함께하고, 책에 나온 곳을 여행하고, 책에서 주인공이 걸었던 거리를 19세기를 상상하며 같이 걸어보기도 한다. 이처럼 나는 영화도 어느 정도 문학적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많이 보지는 않고 아주 가끔. 책이 좋아 영화를 만나면 영화에 빠지기보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빠지는 느낌이 든다. 그 첫 영화가 "오만과 편견"이었다. 이때도 남자주인공 다아시와 사랑에 빠졌다. 이렇게 소설을 들렀다가 만난 남자주인공은 fall in love가 아닌 상상 속에 내가 만들었던 다아시와 비교의 인물이 된다. 그리고 내 상상 속 다아시가 언제나 더 멋지다. 


최근 지인의 추천으로 다른 도전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도 어느 정도 문학적이다. 책의 바닷속에 있으면 철학과 예술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렇게 넓어진 관심분야에서 미술을 만났다. 책에 관심이 있어 그림을 만나게 되었고,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봤다. 그러다 화가의 삶이 궁금해졌고 자연스럽게 영화로 이어졌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 넷플릭스에서 봤던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아직 진행 중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미술 작품과 화가들은 일부러 연결이라도 시켜놓은 것처럼 얽혀있었다. 처음 만났던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진짜 고흐와 고겡처럼 보이는 배우가 마냥 신기했다. 고흐의 일생을 한번 따라가 본 것 같아서 좋았다. 감정이입 보다가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뿌듯함이 우선이었다. 고흐의 빛나는 노랑은 압생트의 에메랄드빛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자살을 타살로 그려놓은 마지막은 압생트의 저주가 그려놓은 환각이었다. 어쩌면 고흐는 자살할 생각이 없었을지도... 


두 번째 봤을 때 고흐가 영화에서 그렸던 스쳐 지나간 그림 하나하나가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내 눈앞에 등장했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내 뇌는 의미 없는 데이터로 넘겨 버렸을 그림들이다. 정말 진부한 이야기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 "아! 신발그림!!" 관광객 없는 외국에서 한국사람을 만난 것보다 반가운 느낌이랄까? 


마지막으로 영화를 한번 더 봤을 때 꽂혔던 '검은 돼지' 술집. 그곳에 테오와 함께 갔던 고흐는 고갱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다른 책에서 검은 돼지 술집을 다시 만났고 그곳에는 뭉크가 있었다. 검은 돼지는 19세기 진보 미술가들의 모임장소였다. 여기저기에서 "나도 거기 있었소!" 하며 화가들이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영화 속에 작은 힌트를 책에서 만나고 책에서 만난 이야기들을 영화 속에서 만나 비교할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좋다. 


내 취향은 19세기에 머물러 있다. 문학도 예술도 음악까지도 나는 그곳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물론 현대의 안락함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궁금하고 들어가 보고 싶은 것이리라. 나는 고전적이고 문학적인 내 영화 스타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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