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두려움과 죄의식이었다.
음악과의 첫 만남이 좋지 못하다. 1980년대 경상북도 영주, 이런 작은.. 도시라도 말하기에도 애매한 곳에 살았던 나는 조기교육의 일환으로 5살에 엄마 손을 잡고 피아노학원으로 향했다. 영주에 처음으로 피아노전공자 레슨 학원이 생겼다. 비록 가정집을 개조했고, 피아노도 한대뿐이었지만 딸에게 더 넓고 풍성한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던 엄마는 부푼 꿈을 꾸며 거금을 들여 어린 딸을 학원에 밀어 넣었다.
피아노선생님은 무서운 분이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 그때의 마흔 정도로 추정되는 선생님을 그려본다. 선생님은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게 틀림없다. 나의 다섯 살은 조용하고 말 잘 듣는, 집에서는 언니이며, 사회에서는 모범적인 유치원생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피아노선생님이 다섯 살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피아노위의 메트로놈과 제대로 치지 못했을 때 교재를 두드리던 선생님의 막대기, 한번 칠 때마다 동그라미 속에 'X'로 채워야 하는 숙제. 이게 내게 들어온 첫 음악이었다. 5살 때 시작된 피아노레슨은 5학년까지 이어졌다. 한 번도 피아노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피아노학원을 그만두던 날의 후련함과 그날의 찬란함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다음으로 찾아온 음악은 대중가요였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의 노래가 사춘기소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하지만 대놓고 가까이할 수 없었다. 공부해야 할 시기에 노래를 들으며 책상앞에 앉아있었던 딸은 이해받지 못했다. 공부할 자세가 안 됐다고 혼났고, 음악은 숨어서 몰래 들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못하게 하니 또 얼마나 듣고 싶던지... 영어교재 카세트테이프에 셀로판테이프를 붙이고 라디오 청취자 신청곡을 녹음해서 들었다. 못하게 할수록 수법을 더 교묘하게 진화시켜 갔다. 성인이 되고 마음대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흥미를 잃었다. 어쩌면 그 시절 빠져서 듣던 노래는 어느 정도 사춘기 반항심이 섞였고, 또래친구와의 공감대 형성 때문에 필요했으리라.
마음대로 내 취향을 선택할 수 있을 시기가 되었지만 취향보다는 일상에 따라 흘렀다. 결혼을 하고 출산이라는 생의 주기가 내앞에 놓여있었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동요 말고는 아는 노래가 없었다. 조금 자란 이후에는 만화주제가가 설거지하다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한때 시크릿주주 전곡을 외우기도 했다.
내 독서와 음악은 다분히 육아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5살 때 엄마도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기 바라며 나를 피아노학원에 데려갔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에게도 똑같은 마음이 불쑥 찾아왔다. 나보다는 좋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아이의 삶에 책을 심어주기 위해서 함께 책을 읽었고, 같은 바람으로 딸과 함께 피아노레슨을 받았다. 음악을 즐겨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과거의 나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기 위해 우선 딸이 피아노를 치고 싶어 질 때까지 기다렸다. 레슨에서도 이론이나 공부적 요소는 최소화하고 커리큘럼도 아이가 치고 싶은 곡으로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딸의 첫 도전곡은 beauty and the beast 미녀와 야수 주제가 중 가장 쉽게 편곡된 곡이었다. 레슨의 좋은 감정을 갖게 해 주기 위해 레슨 전 한동안 딸이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피아노선생님과 한판하고 시작했다. 40분인 레슨시간에 20분정도 피아노앞에서 보내는게 고작이었다.
피아노의 시작을 보다 쉽게 해 주기 위해서 딸과 함께 나도 레슨을 받았다. 다시 만난 음악이었다. 그리고 5년째 진행 중이다. 중급 뉴에이지로 시작한 레슨은 쇼팽까지 넘어왔다. 성인이 되어 만난 목적성 없는 음악에서 내 취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클래식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선율 보다가는 빠르고 웅장한 곡을 좋아한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9할이 허세에서 시작되었고, 즐기는 방법은 보다 학구적이다. 음악이 학구적? 클래식 악보를 펴놓고 눈으로 따라가며 음악을 읽는다. 아니, 듣는다. 한곡만 반복해서 듣는다. 예술가의 그림이 아는 만큼 보이듯, 음악도 아는 만큼 들린다. 악보를 읽으며 듣는 건 나에게 실제로 치기 위한 준비인 동시에 그 곡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이다.
연주를 듣는 것보다 내가 만들어내는 서툰 선율이 화려한 음을 흉내 낼 때 가슴 벅참을 느낀다. 대략 10개월 만에 쇼팽의 혁명을 끝까지 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연주할때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단지 악보를 읽어내는 게 전부다. 일상이 바쁘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레슨시간 말고 연습을 전혀 하지 못했다. 바빠서 못하기도 했고 선율이 느껴지지 않아서 재미도 없었다. 이번이 최고의 도전, 최악의 고비였다. 혁명은 내 꿈의 곡이다. 멜로디가 느껴지기까지 그 모호함을 견뎌내기란 쉽지만은 않았다. 3번 정도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만둘뻔했다.
견디길 잘했다.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레슨시간이 아닌 때 즐거움의 음악, 그 자체를 느끼기위해 혁명을 쳤다. 아직은 미스터치도 많고 엉망이지만 뿌듯함만은 가슴이 벅차다. 꿈의 곡, 귀와 눈으로 읽은 횟수만 족히 500번은 된다. 수도 없이 그려봤던 혁명을 치는 나!
나는 쇼팽의 혁명 치는 할머니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