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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Jul 18. 2024

문턱이 높은 즐거움일수록

시작은 허세였다. 


독서의 시작도 허세였다. "아! 그 책 읽어봤어."가 목표였다. 내용을 이해하고 그로 인한 내 생각의 사유는 차후의 문제였다. 허세 독서의 시작은 총균쇠였다. 이 책을 한 달 동안 쪼개 읽었고 남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완독의 자부심 그게 다였다. 의미가 없는 독서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지속하는 이유는 딸 때문이었다. 딸에게 독서가 늘 함께하는 삶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꾸역꾸역 읽다 어느 날 둘러보니 내 삶 중앙에 책이 자리해 있었다. 이제는 소심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애서가예요."


내게 전시의 세계도 이와 같이 시작됐다. 이 또한 딸의 삶에 예술이 함께했으면 했다. 다양한 감각으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개인적인 고민으로는 고상한 취미를 갖고 싶기도 했다. 입시 같았던 공부만 서른 나이까지 했으니 취미는 물론 면허증이라도 갖고 있는 게 다행일 정도로 경험이 부족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할 수 있는지 처음부터 하나씩 찾아가야 했다. 거기에 허세까지 딱 맞아떨어진 게 미술이었고 그렇게 전시회관람이 시작되었다. 


미술작품을 보고 내 생각과 느낌을 가진다는 것은 생각만큼이나 어려웠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1학년때부터 학기 중에는 한 달에 한번, 방학중에는 매주 전시를 보러 갔다. 다녀왔지만 남는 게 없었다. 전시 보러 가는데 한 시간 걸리고 겨우 30분 관람에 밥 먹고 돌아왔던 적도 많았다. 어쩌다 2시간 체력이 고갈되고 만족스럽도록 서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동시간보다 관람시간이 훨씬 적었다. 이런 효율을 생각했다는 자체로 나는 1도 즐기지 못했다. 일상에 할 일이 적을 때는 그나마 힘들다는 생각은 덜 들었지만 일이 많은 때에는 마치 숙제처럼 해내야 했다. 그래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딸이 그 시간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내가 찾아서 가다가 1년 뒤에는 함께 검색해서 예매를 했고 6학년인 지금은 딸이 혼자 찾아 결제만 해주면 된다. 딸 덕분에 나의 허세도 마치 좋아서 하는 일인 양 취미 비슷한 것이 되어갔다. 


전시를 대하는 방법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처음의 우리는 마음의 자세를 어떻게 가져야 할지도 모르고 줄지어진 차례에 뒷사람을 따라 한 바퀴 돌듯 관람을 했다. 준비도 없었고 전시 이후생각이나 삶과의 접점도 전혀 없었다. 그냥 갔다가 보고 출구를 나오는 순간 하나의 과제를 해치우듯 지워버렸다. 반복과 경험은 서서히 아주 조금씩 알아가게 만들었고 알아간다는 것은 곧 서서히 사랑하게 됨을 뜻한다. 


집에서 대부분의 미술관은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지하철을 타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전시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는 기대에 대해 나누고 전시 가기 전에 혹시 찾아본 정보를 이야기해 본다. 엄마인 내가 미리 작가의 그림이나 정보를 찾아보면 다음전시에 어김없이 딸은 모방한다. 시간은 대략 오픈 시간에 맞춰가는 편이다. 주말 보다가는 평일에 가는 것을 선호한다. 평일 도슨트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전당의 경우 오전 도슨트는 보통 11시에 있고 우리는 10시에 들어가 그림을 한차례 보며 내가 찾을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을 꺼내본다. 한때 도슨트의 정답에 목멨던 적도 있었다. 도슨트를 먼저 듣고 그림을 다시 보면 내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걸 자연스레 느끼게 되었고 순서를 바꿨다.


도슨트를 절대 객관의 답이라고 생각할 때 그 답을 찾지 못하는 나는 영원히 누군가의 인도 없이는 예술의 세계에 방황조차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내 생각을 먼저 찾고 보는 도슨트 전시 설명은 질문을 가져왔다. 전시를 조금씩 알아갈수록 조금씩 가까이 갈수록 책에 다가갔던 나와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가끔은 권위자의 설명보다 내 생각이 예술가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또 틀리면 어떤가? 내가 상상하는 그 방식으로 이 그림이 좋다는데! 이만큼 둘러본 후에 딸과 셀프 원픽을 고른다. 그 그림 앞으로 가서 왜 이 그림이 좋았는지 서로를 설득한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설명해 보는 이 원픽의 과정은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고, 좋아하는 예술가를 만들어가고 결국 좋아하는 취미를 만들어간다.


관람이 끝나고 굿즈샵으로 향한다. 음~ 그곳에 가득한 예쁜 쓰레기가 날 유혹한다. 다른 곳에서라면 미니멀을 되뇌며 사지 않았을 테다.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 원픽으로 골랐던 그림 자석 중에서 하나정도만 고른다. 단지 허세뿐이던 시절 작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그곳에 갔다 왔다는 인증처럼 샀던 굿즈가 있었기에 진짜 그 세계로 가고 있는 내가 있다. 딸이 미술관과 서점을 좋아하게 만든 나만의 방식이 있다면 뇌물공세다. 딸은 미술관과 서점에 가면 자기가 갖고 싶은 건 뭐든 1개 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애교를 좀 보태면 2개도 살 수 있는데! 왜 엄마랑 오는 미술관, 서점이 싫을 수 있겠는가?


아직 남은 한 단계가 있다. 보통은 미술관, 전시회 안에 있는 카페로 향한다. 아니면 최대한 가까운 카페로 간다. 간단한 점심을 때우는 겸 반드시 거쳐야 하는 비평시간이다. 말이 비평이지 딸과 나만의 아무 말잔치를 내가 기록한다. 보통은 이 전시에 기대했던 부분과 보고 나서의 느낌, 가장 좋았던 그림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 작가의 삶에 공감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고 시대상을 생각해 보고 진짜 말하고 싶은 한마디가 무엇일지 귀여운 초등학생의 시선으로 나눠본다. 이런 아무 말 대잔치가 나중에 읽어보면 메시지가 있었던 적이 여러 번이다. 어쩌면 전시 관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내가 그림을 좋아하게 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이렇게 6년을 보냈다. 1년이 12 달이고 방학이 3 달이니 적어도 일 년에 15번의 전시를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초 첫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루브르에서 오르세에서 명작을 만났다. 도저히 원픽을 고를 수가 없었다. 내 숨이 닿을 곳에 유리도 없이 놓여있는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며 손끝이 짜릿해옴을 느꼈다. 고흐의 찬란한 노랑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드가의 14세 발레리나 소녀상을 보며 함께 만들어진 친구들을 보고 다시 보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유럽여행 돈도 많이 드는데 갈만한 가치가 있나요?" 

"누군가의 삶에 예술이 한자리 차지하게 할 수 있다면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요?"


이제는 그냥 좋아하고만 싶지는 않다. 알고 싶어 졌다. 허세에서 진심으로 애호가로 가는 중이다. 

곧 말해도 될 때가 올 듯싶다. "나는 애호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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