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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Jul 25. 2024

어쨌든 기쁨

모호함을 견디는 독서 

책은 고통이었다. 

책하면 이어져 떠오르는 키워드는 시험이었고 평가에는 늘 결과가 따랐다. 책은 나를 힘들고 괴롭게 만들었다. 결혼 전까지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이 아니고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중학교 때 2달쯤 이문열의 삼국지에 빠진 기억이 있었지만 이후 어떤 책도 50페이지 이상 넘기지 못했다. 그렇다고 독서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적은 없었다. 늘 다가가고 싶으나 일상은 바쁘고, 장벽이 높은 고상한 취미정도로 생각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내 삶에서 어쩌면 가장 큰 역할이 주어졌다. 엄마!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시작된 많은 것들 중 책이 있었다. 눈 맞춤도 힘들던 신생아 때부터 5살까지 출근 전 5권, 잠자기 전 5권 독서 시간을 그냥 넘긴 적이 없었다. 여행에는 책을 가져 다녔고 약간의 집착처럼 여행지에서 도서관에 가기도 했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한글을 떼고도 함께 독서는 지속됐다. 해리포터 전권을 잠자리독서로 읽어주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지금도 자기 전과 일어날 때 매일은 못하더라도 한두 편 시를 읽어준다. 아이에게 엄마의 것과는 다른 풍성한 삶과 지혜를 남겨주고 싶었다. 그 답은 당연히 책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 끈을 놓고 있지 않으나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그동안 아마 몇 권의 책을 써도 될 만큼 동화책, 그림책, 청소년도서를 읽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소망은 책 읽는 엄마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애는 책 보는데 엄마가 휴대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이 육아서였다. 마침 당시 일상의 과제와도 닿아있었다. 처음 육아서를 접했을 때의 눈이 번쩍 떠진 것 같은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는데, 이 세상에 아이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키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라웠다. 적어두기도 하고 따라도 해 보면서 육아지식을 늘려갔다. 그러다 허무감이 몰려왔다. 육아서의 아이와 내 아이는 달랐고 각자의 방법이 최고라고 말하고 있는 부분이 마치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독서는 자연스럽게 자기 계발서로 넘어왔다. 딸도 어느 정도 컸고 내 성장으로 관심이 이동했을 때였다. 자기 계발서도 개안을 한듯했다. 공부할 부분은 왜 이렇게 많으며 이 세상의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이도 한계를 만났다. 자기 계발서만 읽는 자기 계발이라고 해야 할지... 때로 어느 쪽에서는 너무 의지만을 강조하고 어떤 책은 너무 실행만 강조하는 것 같았다. 내 의식이 성장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된 시점이었다. 이쯤 되니 나는 이미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지적 허영심이 자리했다. 남들이 읽는 책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나도 그런 책을 읽었다는 허세가 또 독서를 이어갈 원동력이 되어줬다. 이때 베스트셀러 중 과학도서를 많이 읽었다. 사피엔스, 총균쇠, 종의 기원,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 등 사실 제대로 이해도 못했으면서 읽어냈다는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과학도서였던 이유는 그나마 다른 분야에 비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허세는 갈수록 커졌다. 이제는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책 읽는 사람으로 기억해 줬다. 그리고 독서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1000페이지짜리 책을 읽고 나니 더 이상 두꺼워서 못 읽을 책은 없었다. 돌려진 시선은 고전소설을 향해 있었다. 스테디셀러에 얇고 만만해서 읽어봤던 데미안에서 좌절을 맛봤다. 벽돌책은 보겠는데 고전소설은 힘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독서모임이었다. 한 달에 한번 정해진 모임이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읽어야 했고, 단 하나의 생각이라도 남겨야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독서에 대한 열망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한 달에 독서모임을 6~7개씩 했던 적이 이때였고 1년 전이었다. 그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집까지 모임을 통해 읽어냈다. 


육아로 시작된 독서는 성장에 대한 열정으로 그리고 지적 허영심으로 이어져 드디어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노력과 의지, 욕심은 줄었고 질문과 즐거움이 남았다. 책은 읽을수록 지식에 대한 궁금증 뿐만 아니라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궁금해진다. 지식 공부는 하면 되지만 나에게 한 번만 주어진 일생이라 다른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바로 소설이라는 것을 고전소설로 고전하는 동안 알게 되었다. 혼자서는 읽기 힘든 책이나 도저히 손이 안 가는 영역 혹은 어려운 책은 독서모임의 도움을 받아 생각을 확장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던 독서모임을 많이 줄여 모임에도 질문과 즐거움만 남겼다.  


책을 읽어 얻은걸 단 하나만 이야기해 보자면 내게는 단연코 '모호함을 견디는 힘'이다. 세상일이 원래 명확하지 않은데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편감이 많았던 내가 이제 난해하고 이해 못 하는 책을 만나도 편안하다. 사실 편하지는 않고 그러려니 한다. 이 책을 다 읽고도 설사 무슨 내용인지 모르더라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생성을 믿게 되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면서부터 철학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일상의 생소한 도전에 두려움이 없어졌다. 나도 했으니 누구에게나 독서라는 이 진입장벽 높은 취미가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책은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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