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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Aug 23. 2024

빨래 안개는 엄마

맞벌이 직장인으로 일주일에 7번 청소하는 분이 우리 엄마다. 경북 선비의 고장 안동이 고향인 아버지는 가부장적 가정의 전형을 보여주는 케이스다. 식은 밥을 드시지 않는 아버지로 인해 엄마는 매일 새벽 5시부터 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부부교사 같은 일을 하면서도 아버지의 아침은 느긋했고, 엄마는 거의 뛰어다니셨다. 그런 바쁜 출근준비에도 설거지까지 해야 직장으로 출발하는 기억이 내게 선명하다. 그런 엄마의 첫째 딸인 나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책상에 책이 얼굴높이까지 쌓이고 책상 위에 사용한 다양한 종류의 펜이 다 올라와있어도 살짝 밀어 두고 아무렇지 않게 공부할 수 있는 게 나였고 지금도 그렇다. 참 어릴 적에 그런 것 때문에 엄마의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엄마는 물건의 쓰임을 다하시는 분이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을 모르시지만 내가 아는 극강의 미니멀리스트다. 35년 전에 이사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그때 산 냉장고가 드디어 이제 고장 나 내보내기로 했다. 주방에는 어딘가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가로, 세로 5센티미터 정도의 장난감 같은 탁상시계가 40년째 아직도 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온 나는 맥시멀리스트였다. 어릴 적부터 문구류를 많이 좋아했다. 초등학교 교사이신 부모님 덕분에 잘 사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문구류만큼은 신상품으로 원하는 만큼 구비해 두고 살 수 있었다. 


정리도 안 하면서 욕심은 많았다. 거기다 지저분한데 민감도가 떨어지는 나! 이런 내가 결혼하고 아내, 엄마가 되었다. 불행하게도 내가 꾸린 가정에는 가사분담이 없다. 모두 내 몫이었고 남편이 은퇴할 때까지 아마 앞으로도 그럴듯하다. 남편은 워낙 바쁘고 주말도 없이 일한다. 처음에는 가사분담의 문제로 다툼이 있었지만 지금은 남편이 집에 있을 때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같이해야 할 일인데 '도와달라'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것도 처음에는 분노였으나 해달라고 하면 잘해주고 주어진 상황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가정의 평화를 지켜야 했다. 


싫어하는 집안일이 있고 특별히 굉장히 싫어한다. 바닥 닦기와 빨래 개기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로봇청소기를 들였다. 처음에 비하면 지금의 청소기는 신세계다. 일주일에 2번 물만 갈아주면 내가 퇴근하기 전에 바닥 먼지를 없애고 닦아두기까지 한다. 걸레를 빨 필요도 없다. 빨아서 건조까지 자동으로! 현재 더 좋은 기능의 다음 버전이 나왔다. 아직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물을 갈아줄 필요도 없다. 자동으로 물을 넣고 배수까지 해결이 가능해 3개월에 한 번씩 걸레와 먼지봉투만 갈아주면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좋은 청소기는 나오면 업데이트한다. 남편을 괴롭히지 않고 스스로 자유를 찾는 방법이다. 


아직 문제가 있다. 빨래.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겉옷은 건조대에 널고 나머지를 건조기에 돌리는 일까지는 괜찮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집안일이 다름 아닌 빨래 개기다. 10년 넘게 혼자 해오던 빨래 개기를 그만뒀다. 딸과 남편에게 제일 싫어하는 거라 못하겠다고 말했다. 변명이지만... 하나의 가정이 돌아가는 데는 바닥 청소와 빨래 개기를 빼고도 무수한 일이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빨래 개기는 딸과 남편이 맡았다. 처음에 2번 하고 투덜거리는 딸에게 남편이 말했다. "그러게 엄마는 이렇게 힘든걸 10년 넘게 했네." 참.. 이것 조차도 대부분 딸내미 차지가 되었지만 남편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다행히 다른 집안 살림살이에는 욕심이 없어 문구류를 제외하면 비교적 미니멀한 편이다. 뭐든 사면 그걸 정리하고 버리는 것까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더욱이 2~4년마다 이사를 다니고 있으니 청소를 싫어하는 나는 의자 하나를 살 때도 없으면 안 될 이유가 없다면 안 산다. 오죽하면 우리 집 거실에는 소파는 없고 안락의자 하나만 있다. 소파가 필요한 사람이 남편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청소를 향한 내 모든 마음은 하나의 단어로 모아진다. 자유! 어릴 적 청소에서 즐거움까지 얻는 엄마를 보며 집안일에 얽매일 미래를 두려워하던 나는 좋아하지는 않지만 거부할 수는 없는 청소와 자유를 위한 협상 중이다. 엄마가, 여자가, 아내가 청소를 싫어하고 잘 안 한다는 세상의 시선이 의식되던 적도 있었다. 이제 나는 빨래 개기가 제일 싫다고 말한다. 물론 친정엄마께 말하고 여자가 할 짓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처해있는 여건에서 조금씩 내 자유의 영역을 넓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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