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시에 일어난다. 이렇게 일어난 지 만 5년이 되었다. 아침형 인간임에 틀림없지만, 4시라는 시간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원래부터 있던 편두통이 심해져 거의 1년간 두통 발작약을 먹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진통제를 너무 오래 복용해 간 수치가 올라 병원에 다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시에 일어나는 아침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가장 확실한 이유는, 나란 인간이 오후에는 거의 머리가 멈춘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생산적인 일,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아이디어가 필요한 일은 오후에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이런 일들은 보통 정오 이전에 끝내야 한다. 오후 2시 이후의 삶은, 루틴으로 늘 하던 일을 하고, 공과금을 내고, 운동을 다니는 등의 일만 가능했다. 머리보다는 몸이 기억하는 루틴으로 해결해 나가는 삶이었다. 그러다 보니 직장을 다니는 현실에서는 퇴근 후에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느라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출근 전에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작은 알람 소리에도 보통 1분 전에 깨어나, 침대 모서리에 앉아 반쯤 들어온 정신을 차려본다. 1분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알람을 칼같이 끄고 내방으로 간다. 그렇게 모닝 루틴을 시작하면서 내방이 생겼다. 원래는 가족 서재였으나, 나 혼자 내방이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다. 그곳에는 두 달 전에 들인 독서 의자 겸 안락의자가 있다. 포근한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린다. 생각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어떤 때는 10초 만에, 어떤 때는 5분 만에 의식이 환해지는 중간 지점에 떠오르는 생각을 기다린다. 주로 어제 마지막으로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 하루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생각이 갑작스러운 사진 한 장처럼 찰나에 지나가기도 한다. 오늘을 다짐하는 내용이나 어제를 후회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다. 오늘도 그곳에서 생각을 기다렸다. 어제 독서 모임을 했는데, 나와 다른 생각을 말한 선생님의 의견에 대한 내 생각이 확 떠올랐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의 끝을 잡고 눈을 뜬다. 이제 제대로 하루의 시작이다. 방금 떠오른 생각을 노트에 꾹꾹 떠오르는 대로 기록한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삶과 생각에 적용할 수 있는지 잠시 더 끄적이는 기록. 이 기록이라는 행위가 끝나야 몸도, 마음도, 정신도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마친다. 생각을 잡아 시작된 나만의 시간은 하루를 계획하고, 매일 루틴으로 하고 있는 영어와 철학 공부를 하며 보낸다. 혼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모닝 루틴의 2시간은 마치 20분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루틴이 끝나면 일상이 나를 기다린다. 아침을 차리고, 출근 준비를 하며 아이를 챙긴다. 루틴이 끝나고 30분 이내로 출근길에 오른다. 운전을 즐기는 나는 아침의 30분 드라이브 시간을 특히 좋아한다. 직장 가는 길의 운전을 좋아하다니 좀 웃기기도 하지만, 이 시간이 좋아 밀리기 전에 일찍 출근한다. 10년 넘게 운전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차를 타면 놀러 가는 기분이다.
지금 11월 말의 아침 출근길이 특히 좋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여름이 남기고 간 눈부신 환한 느낌이 들면서도 하늘은 가을의 후련한 파랑을 간직하고 있다. 톨게이트를 나올 때면 황금색 태양이 건물 사이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노을의 태양, 하루를 다 소진하고 벌겋게 남은 열을 내고 있는 태양도 아름답지만, 나는 아침에 황금빛으로 땅에 후광을 드리우는 태양이 더 좋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아침이다. 직장만 다니며 나를 위해 시간을 쓰지 못하던, 월급을 받아 일상을 유지하면서 찰나의 쾌락을 위해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가 쫓았던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휘몰려 따라가 보니 무의미와 허상일 때가 많았다. 내가 아니라 세상이 좋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하루를 살아가는 기준이 생김을 뜻한다. 나를 알고 나를 위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가득 찬다는 기쁨을 느끼며 큰 숨을 한번 내쉬고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직장 생활의 반복되는 루틴도 따분함이나 죽어라 올라야 할 목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실천으로 떠오르는 태양처럼 찬란해질 수 있다.
하루를 내가 이끌기 위해서 세상보다 먼저 아침을 계획하고, 오늘도 그 시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