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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Dec 20. 2023

긴병에 효자 없다

12월, 이제 2주도 남지 않은 23년이다. 올해 안에 검진을 마치려는 분으로 병원은 바쁘다. 오전에만 100명 이상의 사람을 만나야 하는 요즘의 병원에는 손이 모자란다는 말로 표현을 다할 수가 없다. 우리는 늘 보는 손님이지만 그분들은 2년에 한번 받는 서비스 정도로 생각하니 최대한 정성을 들여본다. 짧은 대화로도 알 수 있는...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오늘은 또 한 번 잊을 수 없는 경우를 만났다.


84세 할머니가 내 방에 들어오셨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검진센터, 이곳에 있으면 나이의 기준이 좀 달라진다. 보통 40세 이상은 되어야 검진에 관심이 생기므로 그 나이부터 시작해 104세 할머니도 만난다. 93세 혼자서 병원 오시는 분도 계시고 주로 육체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정정한 어르신들이 많이 오신다. 84세 할머니는 나이만으로는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방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인지 기능이 많이 떨어져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간단한 인지 질문을 드렸더니 역시나 여기가 몇 층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전혀 인지가 안되었다. 절대 혼자 이곳에 올 수 없는 분이었기에 보호자를 찾았다. 딸이라는 분은 전화를 하고 계셨고 방에 들어와서도 계속 통화를 하시기에 끊어달라고 요청했다. 어찌어찌 문진을 하고 다음 진행을 위해 탈의실 안내를 드렸다. 당연히 할머니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딸 얼굴만 쳐다봤다. 딸은 윗옷을 갈아입으라고 윽박지르며 따라들어가는 대신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잠시 뒤 할머니는 옷을 갈아입었고, 제대로 입지 못해서 탈의실에 왔다 갔다가 반복되고, 딸은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그분의 목소리는 할머니가 검사를 다 받고 병원을 나갈 때까지 모두의 눈살을 찌푸렸다. 


12월이 아니라면 직원분이 함께 탈의실에 들어가드릴 수 있겠다만 요즘은 정말 그럴 형편이 못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 짜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딸을 가진 엄마로서, 쇠약해지고 있는 엄마가 있는 딸로서... 그 딸은 왜 그렇게 엄마에게 가혹한 것일까? 할머니의 인지장애가 집에서 번거로운 집안일을 불러와서 그렇게 된 걸까? 아니면 과거 엄마의 태도에 대한 되갚음의 의미일까?


카프카의 변신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갑자기 갑충으로 변한 주인공 같았다. 과거 언제가 집안 전체를 먹여살리는 엄마였을 테지만 인지가 떨어지며 할머니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변해가는 할머니를 대하는 가족들은 지쳐갔고 할머니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건 비단 할머니만의 일도, 소설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이제 10년 뒤면 나도 83살의 엄마를 만난다. 그때 나는 변신 속 주인공의 가족처럼, 오늘 만난 딸처럼 한때 세상 전부였던 엄마에게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인지적 장애의 변화를 겪는 분들은 대개 초반에 자신의 이런 실수를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한다. 자존감은 하락할 테고, 망가지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은 또 얼마나 심할까? 엄마 손을 꼭 잡고 처음 유치원에 갔던 날처럼 친절하고 따뜻하게 '이제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주겠다'라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짜증 나는 얼굴 대신 따뜻한 시선으로 모를 수 있다고, 나랑 같이 가자고... 허물어져가는 삶이 아니라 완성으로 가는 삶에 두려움 없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를... 그런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 


한편 내가 늙어 혼자 서기 버거워질 때 따뜻한 시선을 던지는 딸을 만나고 싶다. 누군가 사춘기는 엄마 성적표라고 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엄마의 보호를 받고 보살핌을 받는 그때 엄마가 얼마나 아이를 존중해줬느냐로 엄마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아이의 성향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는 어릴 때 엄마가 세상의 전부이고 자신의 사랑 전부를 엄마에게 준다. 그런 엄마는 때로 귀찮기도 하고 이런 돌봄의 순간들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때 가진 권력으로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적당한 거리 두기가 가능해지고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아이는 엄마의 불합리함에 분노하게 된다. 그제야 반성하고 회복해 보려 하지만 대개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도 해보기 전에 포기해버리기 일쑤다. 그렇게 늙어 엄마에게 부정적인 기억을 가진 딸을 만나고 기대게 된다. 이렇게 아이와 엄마의 사랑은 엇갈린다. 


이제 사춘기 초입에 있는 딸을 보며, 조금씩 쇠약해지는 엄마를 보며 가족은 서로에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넘치는 충분한 사랑 속에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쇠약해져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안정적인 기본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게 "나다움 찾기"이다. 뜬금없이 나다움? 지속적인 거리 유지하며 안정감 있는 엄마로서의 역할, 보호자인 딸로서의 역할에 가장 방해되는 건 HOT TRUST, 집착이다. 치우치면 어느 순간 돌봄에 지치고 현타가온다. 사회적 안전망에 불만이 있지만 어쩌겠나?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나를 잘 지키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안정감 있고 따뜻하게 맞아줄 가족! 참.. 쉽지 않아보인다. 그래도 이것이야말로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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