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감상문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미 벌어진 역사적 사실, 결론을 이미 알고 있지만 영화에서만이라도 주인공의 다른 결말을 보고 싶을 것이라는 게 예상되어 있었다. 스포를 할 것도 없이 이미 다 알려진 이런 영화를 볼 때, 어쩌면 메시지보다 효과나 감동에 더 기대를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기대했던 메시지는 분명 이순신의 리더십과 관련된 감동이었을 테다. 냉철한 판단을 하면서도 더 큰 시각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보호하며 사랑하는 마음,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자식을 죽인 적이 눈앞에 있음에도 공과사를 구별하기 위해 모른척한 순간,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어떠한 압박이 와도 포기하지 않는 굳건함 등이 예상된 감동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왜란을 온전히 끝내 앞으로의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모두가 승리라며 마무리를 준비할 때 죽을 각오로 노량해전에 임했다. 그리고 죽음까지도 그의 수군을 무너지게 하지 못했다.
왕권 국가에서 이순신은 결코 마음에 드는 신하는 아니었을 테다. 백성의 어버이라고 칭하면서 모양 빠지게 피란 갔던 왕과는 달리 이순신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백성을 위한 전쟁준비를 했다. 누구의 마음에 들기 위해 행동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정의를 따랐다. 누구에게나 공평했으며 솔선수범의 표준을 보여줬다. 백성은 그를 사랑했고 부하들은 그의 말에 목숨을 걸었다. 이런 경우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명나라 진린과 같은 다른 리더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조선의 윗선에 계신 분들도 자신의 '공적'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이런 점을 좀 본받았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우선 왕부터..
내 눈에 들어온 영화는 역사보다, 인물보다, 전쟁이었다. 장군들이야 전체를 조망하며 전투 계획을 세우고 장기판에 말을 다루듯 작전을 하겠지만 그 밑에서 싸우던 수많은 병사들은 정말 무슨 죄로... 나라가 위기라는 이유 하나로 그곳에 끌려와 다른 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왜군을 죽여야 했다. 조선군이 왜군에 분노해야 할 이유는 그 당시 힘센나라가 적국에서 벌였던 흔한 만행이었다. 물론 만행이 흔하다고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다를 바 없음을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도 베트남 전쟁에 참여해 몹쓸 짓 많이 했다고 들었다. 왜군들이 행했던 만행이 당연하다는 것은 아니나 입장이 바뀌었어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 듯한데 도대체 누가 악인이라 당연히 죽어도 되고 누가 살아야 한단 말인가? 살인병기로 태어난 사람은 없고 태어나 힘없는 백성으로 전란을 겪게 되었다. 눈앞에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말을 하는 자를 원수로 여기고 죽여야 했다. 눈앞에 있는 자가 죽고 나면 그 뒤에, 그 옆에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끝이 없을 살인으로 느껴졌을 테다. 어쩌면 내가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영화관을 나오며 가족과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은 물에 뛰어내려 나무를 잡고 육지로 헤엄쳐 올 거라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밝혔고 나는 어차피 내가 죽어야 끝나는 상황이라 고통스럽지 않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바랬을 것 같다고 했다. 육지도 아닌 바다 도망갈 곳도 없는 거기서 쏟아져내리는 적군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 무엇이었든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왜 소수의 절대권력에 수많은 사람이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야 했을까? 적과 아군 중에 죽어 마땅한 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끔찍한 지옥이 과연 과거일 뿐일까? 왕이 없는 현재, 문명이 발달한 현대라는 지금에도 그럼 왜 전쟁을 일으키고 훨씬 더 고도의 과학기술을 이용해 많은 사람을 죽이는 걸까? 두려움에 떨다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은 그럼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단지 지금이라는 시점에 그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 일을 지켜보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그게 우리와 상관없는 듯 가끔 들려오는 뉴스에 무표정한 연민만 스칠 수 있는 걸까? 고통의 시간이 지속된다고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각의 날의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