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30화 가난한 어른들의 뒤늦은 속죄

by Wren

반지가 탁자 위에 있었다. 아무도 집지 않았다.
다섯 사람이 거실에 있었다. 성인 조운. 성훈. 하온. 열한 살 조운. 그리고 엄마. 차가 식고 있었다. 누구도 마시지 않았고,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성훈이 앉아 있었다. 재킷을 벗지 않았다. 오래 있을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하지만 갈 수 없어서 앉아 있는 것처럼. 성인 조운이 성훈을 보았다. 성훈은 반지만 보고 있었다. 두 형제가 같은 탁자에 앉아 있었다. 말이 없었다. 오래 침묵이 이어졌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먼저 말했다.
"저 반지. 예전에 봤어요."
성훈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요?"
"학교에서요. 홍파초."
거실이 조용해졌다. 엄마는 홍파초 6학년 때 조운의 짝꿍이었다. 성훈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오늘 처음으로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6학년 때. 교장 선생님이 끼고 있었어요. 저 반지를."
성인 조운의 손이 테이블을 짚었다.
"이름이 뭐예요."
"이종창."
잠깐 아무 말도 없었다.
"교장 선생님 이름이 이종창이었어요."
성인 조운이 테이블에서 손을 떼었다. 손이 주먹이 되었다. 그러고는 펴졌다. 그러고는 다시 주먹이 되었다.
열한 살 조운이 그 이름을 들었다. 이종창. 홍파초 교장. 1988년.
그 학교 복도를 걸어 다니던 남자가 떠올랐다. 그 손에 이 반지를 끼고 있었다.
"기억나."
열한 살 조운이 말했다.
"복도에서 봤어. 박민철이랑 같이 서 있었어. 방과 후에. 교장실 앞에서. 소리는 안 들렸어. 근데 그 반지가 보였어. 볕이 들어서 반짝였어."
성훈이 눈을 감았다. 열었다.
"그게 언제야."
"아버지 쓰러지기 전이야. 한 달쯤."
성훈이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반지 옆에. 이번엔 닿았다.
"내가 그때 알고 있었어. 박민철이 학교랑 연결되어 있다는 거. 이종창이 뒤에 있다는 거. 알면서 말 못 했어."
"왜."
"협박받았어. 무서웠어."
성훈이 잠깐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이종창이 나한테 왔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어. 이 반지를 주면서. 그러면 조운이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그러면 아버지도 더 이상 건드리지 않겠다고."
열한 살 조운이 그 손을 보았다. 형의 손이었다. 이 주름이 37년의 침묵이었다.
"37년이 됐어."
성인 조운이 성훈을 보았다.
성훈도 시선을 들었다.
두 사람은 오래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이 없었다. 말없이도 건너는 것들이 있었다.
성인 조운이 말했다.
"증거가 있어."
물음이 아니었다.
성훈이 재킷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낡은 봉투였다. 노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테이프가 봉투 입구를 막고 있었다. 여러 번 붙인 흔적이었다. 이 봉투가 37년 동안 그 안주머니에 있었다.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37년 동안 갖고 있던 거야."
성인 조운이 봉투를 열었다. 종이 두 장이 나왔다. 손으로 쓴 글씨였다. 조운 아버지의 이름이 두 번 나왔다. 1988년 2월이었다. 아버지가 쓰러지기 세 달 전이었다. 이것이 37년 동안 형의 안주머니 안에 있었다.
성인 조운은 그 종이를 오래 보았다. 손이 떨렸다. 참았다.
하온이 그 종이를 보았다. 1988년의 글씨였다. 이 낡음이 37년의 무게였다.
성훈이 말했다.
"처음에는 너를 지키려고 갖고 있었어. 나중에는 버릴 수가 없었어. 이게 없으면 그냥 겁쟁이만 남으니까."
성인 조운이 그 말을 들었다. 오래도록.
엄마가 말했다.
"이제 알 것 같아요. 왜 그 교장이 유독 조운이한테 관심이 많았는지."
성인 조운이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 사람. 지금도 있어?"
"구청. 마장동 재개발 사업 쪽. 자리를 바꿔가면서 37년 동안 거기 있어."
열한 살 조운이 말했다.
"그럼 아직 할 수 있어."
성훈이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그러고는 성인 조운을 보았다.
"이 애가 여기 있는 동안은."
성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을 꺼냈다.
"수현이한테 전화할게. 부모님도 모시고 오라고."
성인 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훈이 복도로 나갔다. 문이 반쯤 열린 채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수현아. 나야. 지금 바로 올 수 있어? 응. 귀한 손님이 있어. 부모님한테 연락해. 내가 모시고 갈게. 직접 봐야 해. 아무 말도 하지 마."
성훈이 전화를 마치고 돌아왔다. 거실에 서서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조운아. 미안해."
그 말이었다. 열한 살 조운이 그 말을 들었다. 미안해. 37년이 담긴 두 글자였다.
열한 살 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형, 나 바다 본 적 없어."
성훈이 멈추었다. 성인 조운이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바다. 그 한 마디가 거실 안을 조용히 채웠다.
성훈이 말했다.
"거기. 제주도는 바다가 진짜야. 서울이랑 달라."
열한 살 조운이 그 말을 들었다. 제주도. 1988년의 제기동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성인 조운이 말했다.
"그럼 보러 가자."
열한 살 조운이 돌아보았다.
하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우리 같이."
두열한 살이 나란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개운산이 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바다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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