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29화 37년 만의 형제, 어른이 된 성훈

by Wren

초인종이 울렸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아무도 오기로 한 사람이 없었다. 하온이 인터폰 화면을 보았다.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짧게 자른 머리에 낡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서 있었다. 카메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안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성인 조운이 화면을 보았다. 멈추었다.
"형."
그 한 마디였다. 목소리가 아니었다. 입술만 움직였다.
문이 열렸다.
남자가 들어왔다. 오십 대였다. 머리카락이 많이 셌다. 얼굴에 주름이 깊었다. 하지만 코의 모양이 낯설지 않았다. 눈썹의 각도도. 같은 핏줄이었다.
성인 조운이 말했다.
"형, 어떻게."
성훈이 말했다.
"소문 들었어.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성훈은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눈이 흔들렸다. 그러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릎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조운아."
열한 살 조운은 그 목소리를 들었다. 낯선 목소리였다. 하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였다. 아직 오지 않은 어딘가에서. 이 목소리가 자신을 불렀던 적이 있었다. 더 작은 자신을. 아직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먼저 알았다.
"형이야. 성훈이 형이야."
열한 살 조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얼굴을 보았다. 형이었다. 37년이 지난 형이었다. 주름이 생겨 있었다. 흰 머리카락이 늘어 있었다. 이 낡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점퍼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제기동의 냄새가 날 것 같았다. 연탄 냄새가 날 것 같았다.
열한 살 조운의 눈물이 나려고 했다. 참았다.
성훈은 열한 살 조운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성인도 아이도 아닌 자세였다. 동생 앞에 무릎을 꿇은 형의 자세였다. 그 자세가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 같았다.
성훈은 일어섰다.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갔다. 닦지 않았다. 성인 조운도 일어서려다 그대로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보았다. 37년이 그 사이에 있었다. 말로는 건널 수 없는 37년이. 하지만 눈빛은 건넜다.
세 사람이 거실에 앉았다. 엄마가 부엌에서 차를 끓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온은 말하지 않았다. 열한 살 조운도 말하지 않았다. 성인 조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개운산 방향에서 오는 바람이었다.
성훈이 먼저 말했다.
"조운이 여기 온 거,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 마. 중요한 게 있어서 왔어."
성인 조운이 말했다.
"형,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
"멀리 있었어. 일부러 멀리 있었어."
"왜."
"알면 다쳐. 그래서 멀리 있었어."
거실이 조용했다. 엄마가 차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성훈을 보았다. 성훈이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차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말이 없었다.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들의 재회였다. 말이 없어도 되는 재회였다.
성훈이 다시 말했다.
"형 때문에 멀리 있었던 게 아니야. 너 때문에 멀리 있었어. 그 사람이 너한테 닿을까 봐. 내가 연락을 끊어버리면 나를 통해 너한테 닿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
성인 조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훈이 말을 이었다.
"그 사진 봤다며. 박민철 옆에 서 있는 사람."
성훈이 오른손을 들었다. 검지에 반지가 있었다. 특이한 모양의 반지였다. 사진 속 그 남자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하온은 그것을 보았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형."
성인 조운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그 사람 알아?"
성훈은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아는 정도가 아니야. 그 사람이 나한테 이걸 줬어. 오래전에.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이걸 끼고 있으면 건드리지 않겠다고."
"그 사람이 누구야."
열한 살 조운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성훈은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이름은 이종창이야. 창성 개발의 창성. 그 사람이 C야."
세 사람은 그 이름 안에서 잠깐 멈추었다. 이종창. 이종창. 37년 동안 찾던 이름이었다. 성인 조운은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파일 박스 어딘가에 적혀 있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확인할 수 없었다. 사람인지 유령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 형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열한 살 조운은 그 이름을 입속에서 한 번 되뇌었다. 이종창. 아직 1988년의 제기동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 그 손이. 그 반지가. 분명히 어딘가에 있었다. 자신의 기억 어딘가에.
성훈이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었다.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조용한 소리였다. 하지만 거실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 사람, 아직 살아있어."
성훈이 말했다. 성인 조운의 손이 떨렸다. 하온은 숨을 참았다.
"그리고 지금도 제기동에 있어. 마장동 창고 자리에. 지금도 거기서 사업을 하고 있어."
성인 조운이 물었다.
"형, 그 사람 지금 어떻게 생겼어."
성훈이 대답했다.
"늙었어. 하지만 아직 정정해. 그리고 아직 조심해야 해.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거야."
열한 살 조운이 반지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차가웠다. 이 반지가 37년 동안 형의 손에 있었다. 이 차가움이 37년의 무게였다. 그 기억이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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