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아빠의 상처가 기록된 미래의 도서관
성인 조운은 서재로 들어갔다.
잠깐만. 그 말 하나를 남기고.
하온과 열한 살 조운은 거실에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나오지 않았다. 물 따르는 소리도 멎어 있었다. 거실이 조용했다. 37년이 같은 방에 앉아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성인 조운이 서재에서 나왔다.
손에 파일 박스를 들고 있었다. 두꺼운 박스였다. 오래된 것이었다. 테이프가 여러 번 덧붙여진 흔적이 있었다. 하온은 이 박스를 알고 있었다. 서재 책장 맨 아래 칸. 항상 거기 있었다. 한 번도 열어본 적 없었다. 열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빠가 그 박스를 꺼낼 때는 항상 혼자였다. 문을 닫고.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다. 37년 동안, 이 박스는 항상 여기 있었다.
바닥에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었다.
파일들이 있었다. 수십 개의 파일이었다. 두꺼운 것도 있었고 얇은 것도 있었다. 각각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89년부터 시작해서 2025년까지. 37년어치였다.
열한 살 조운은 그 날짜들을 보았다. 1989년. 1990년. 1991년. 숫자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아직 살고 있는 시간들이었다. 자신이 아직 겪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이 파일들 안에 자신의 미래가 있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이게 다 뭐야?"
"박민철 관련 자료야. 37년 동안 모은 거야."
열한 살 조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온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스 안의 파일들이 그 침묵 안에 놓여 있었다.
성인 조운이 1989년 파일을 꺼냈다. 펼쳤다.
신문 기사 스크랩들이 있었다. 손으로 쓴 메모들이 있었다. 주소들이 있었다. 사람 이름들이 있었다. 어딘가에 전화한 기록들이 있었다. 글씨가 빽빽했다. 작고 단단한 글씨였다. 잉크가 군데군데 번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눌러쓴 것 같았다.
하온은 그 글씨를 보았다.
아빠의 글씨였다.
지금 아빠의 글씨가 아니었다. 더 어린 아빠의 글씨였다. 아직 이십 대였을 때의 글씨였다. 그 어린 손이 이 작은 글씨들을 빽빽하게 채워 넣었을 것이었다. 밤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아버지가 회복하는 동안. 자신은 이 파일을 채우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온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참았다. 그 글씨를 쓴 손이 지금 자신의 곁에 있었다. 48살이 된 그 손이. 그 손이 37년 전에 이 글씨를 썼다. 그 손이 지금도 이 파일을 붙들고 있었다. 한 번도 놓지 않았다.
그때 열한 살 조운이 손을 뻗었다.
파일 하나를 집었다. 1992년 파일이었다. 펼쳤다.
거기에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
조운. 조운 관련 진술 메모. 1992년 4월.
열한 살 조운은 그 글씨를 보았다. 자신의 이름이. 자신이 아직 겪지 않은 1992년 파일 안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이름 아래에 작은 글씨로 내용이 빽빽했다. 읽고 싶었다. 그런데 손이 떨렸다. 읽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이 파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파일을 내려놓았다.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열한 살 조운이 물었다.
"나는. 이거 다 알면서 살았어?"
성인 조운이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알면서 살았어. 그래도 살았어."
하온은 그 말을 들었다. 그 말이 가슴 안쪽으로 조용히 파고들었다.
"이것 봐."
성인 조운이 파일 안쪽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조운 아버지 관련 토지 거래 내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래에 날짜와 금액들이 있었다. 그 아래에 이름들이 있었다. 박민철. 그리고 그 옆에 다른 이름 하나.
창성 개발.
"이게 C야?"
"창성 개발의 C야. 박민철은 그 회사의 하청 중개인였. 아버지한테 접근한 것도 그 회사 지시였어. 그런데 그 회사 뒤에 오너가 있어.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이 회사가 지금도 있어?"
"없어. 1995년에 폐업했어. 그런데 오너는 지금도 있어. 다른 이름으로. 다른 회사 뒤에 숨어서."
성인 조운이 파일 안쪽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낡은 사진이었다. 컬러였지만 색이 바래 있었다. 1990년대 초반의 사진 같았다. 사진 안에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박민철이었다. 그 옆에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양복을 입은 남자였다. 얼굴이 카메라를 향하지 않았다. 옆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의 절반만 보였다. 배경에는 공사 중인 건물이 있었다. 간판이 흐릿하게 보였다. 제기동 어딘가였다. 그 남자의 오른손에 반지가 있었다. 특이한 모양의 반지였다.
"이 사람이 오너야?"
"몰라. 37년 동안 이 얼굴만 찾고 있었어."
하온은 그 사진을 보았다. 얼굴의 절반. 옆을 향한 눈. 높은 코의 옆선. 그것만 보였다.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희미하게. 기억인지 착각인지 알 수 없었다. 하온은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열한 살 조운이 사진을 집어 들었다. 오래 보았다.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사진을 더 가까이 당겼다. 그 남자의 손을 보았다. 반지를 보았다. 눈이 좁아졌다. 그러고는 말했다.
"나 이 사람 본 적 있어."
성인 조운이 멈추었다. 하온이 멈추었다.
공기가 멈췄다.
열한 살 조운이 천천히 사진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사진 위에 얹혀 있었다. 그 얼굴의 절반 위에.
"어디서 봤어?"
성인 조운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조운은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기억이 날 것 같아. 근데 아직 잘 모르겠어."
그러고는 다시 그 반지를 보았다. 오래도록. 거실 밖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개운산 방향에서 오는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