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27화 무너진 시간의 파편을 줍는 법

by Wren


현관문이 열렸다.
하온은 숨을 참았다.
아빠였다. 48살의 아빠였다. 회사 재킷을 걸쳐 입은 채였다. 급하게 나온 것이었다. 넥타이가 살짝 풀려 있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섞여 있었다. 손에 스마트폰을 쥔 채 문을 열었다.
그리고 멈추었다.
거실 소파에, 열한 살의 자신이 앉아 있었다.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두 시간이 같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
성인 조운은 그 얼굴을 보았다. 낡은 솜점퍼를 입은 아이였다. 해진 운동화가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운동화를 보는 순간 성인 조운의 눈이 흔들렸다. 뒤꿈치가 닳아 있는, 자신이 신던 운동화였다.
열한 살 조운은 그 얼굴을 보았다. 낯선 어른이었다. 하지만 낯설지 않았다. 이마의 주름이. 눈가의 선이. 턱의 각도가. 그것들이 하나씩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37년 뒤의 거울 같았다.
하온이 먼저 말했다.
"아빠."
성인 조운이 하온을 보았다. 그리고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하온을 보았다.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이게."
성인 조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게 진짜야?"
열한 살 조운이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근데 여기 있어."
성인 조운은 그 목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목소리였다. 아직 변성기가 오기 전의. 열한 살 때의 자신의 목소리였다.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그 목소리가, 지금 자신의 거실에서 말하고 있었다. 성인 조운은 잠깐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참았다.
성인 조운은 천천히 현관에 들어섰다. 재킷을 벗었다. 소파 앞 바닥에 앉았다. 열한 살 조운과 같은 높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48살과 11살이. 같은 사람이. 같은 거실에서.
열한 살 조운이 그 얼굴을 오래 보았다. 지금 자신이 저렇게 될 것이었다. 저 주름이 생길 것이었다. 저 흰 머리카락이 생길 것이었다. 37년이 지나면. 그런데 그것이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저 얼굴이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살아있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하온도 말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침묵 안에 있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만이 들렸다. 엄마는 거실로 나오지 않았다.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인 조운이 먼저 말했다.
"아버지는. 이제 괜찮아."
열한 살 조운이 눈을 크게 떴다.
"눈 떴어?"
"응. 그 이후로 많이 좋아지셨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래 사셨어."
열한 살 조운은 그 말을 들었다. 오래 사셨어. 그 말이 가슴 안쪽 어딘가로 천천히 내려갔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참았다. 잠깐 창밖을 보았다. 개운산이 보였다. 저 산을 넘어서 여기까지 왔다. 1988년에서 2025년까지.
하온은 그 모습을 보았다. 아빠가 아빠의 열한 살을 보고 있었다. 열한 살 조운이 아빠의 48살을 보고 있었다. 이 장면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장면이었다.
성인 조운은 창밖을 보는 그 옆모습을 보았다. 너무 익숙했다. 자신이 그렇게 자주 창밖을 보았다. 아무도 모를 것 같은 표정으로. 37년이 지나도 그 버릇은 남아 있었다.
"밥은 먹었어?"
"응. 어젯밤에."
"많이 걸었지."
"응."
"발 안 차가워?"
열한 살 조운은 잠깐 발을 내려다보았다. 차가웠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깐 그 침묵 안에 있었다. 성인 조운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열한 살 조운도 기다렸다. 하온도 기다렸다.
성인 조운이 말했다. 잠깐 망설이다가.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야."
열한 살 조운이 돌아보았다.
"청자 라이터."
"어?"
"용 새겨진 놋쇠 라이터. 아직 갖고 있어?"
열한 살 조운의 표정이 굳었다. 어떻게 알고 있냐는 표정이었다. 그 라이터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박민철의 사무실에서 집어 들었을 때. 왜 집었는지도 몰랐다. 그냥 집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갖고 있어."
"꺼내봐."
열한 살 조운은 솜점퍼 안쪽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용이 새겨진 놋쇠 라이터였다. 박민철이 가지고 다니던 것이었다. 마장동 창고에서 몰래 들고 나온 그날 이후, 한 번도 버리지 못했다.
성인 조운은 그 라이터를 보았다. 손이 떨렸다. 표정이 굳었다.
"그 라이터 뒤집어봐."
열한 살 조운이 라이터를 뒤집었다. 거기에 작은 글자가 있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글자였다.
P.M.C.
세 개의 알파벳이었다.
"이게 뭐야?"
"아버지가 그 사람한테 사기당한 거. 땅문서 위조한 거. 다 알고 있어."
열한 살 조운은 말이 없었다.
"그런데 땅문서만이 아니었어. 그 사람 뒤에 다른 사람이 있었어. 더 큰 사람이."
"어떻게 알아?"
"37년 동안 찾았으니까. 그리고 이제 네가 여기 있으니까. 네가 갖고 있는 그 라이터가 여기 있으니까."
하온은 숨을 참았다. 엄마가 부엌에서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물 따르는 소리가 멎었다.
"박민철이 혼자가 아니었어. 그 뒤에 C가 있어."
성인 조운이 말했다.
"37년 동안, 그 사람만 쫓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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