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26화 소년 조운과 걷는 2025년의 골목길

by Wren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먼저 거실로 나왔다.
재택근무 시작 전 커피를 끓이는 시간이었다. 매일 아침 그랬다. 부엌에서 커피 향이 퍼지고, 노트북이 켜지고, 하루가 시작되는 순서였다. 오늘도 그럴 것이었다. 그런데 거실 바닥에 아이가 누워 있었다.
엄마는 멈추었다.
낯선 아이였다. 하온의 이불을 덮고 하온의 베개를 베고, 하온의 방 앞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열한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낡은 솜점퍼를 입고 있었다. 해진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가지런히. 이 아이가 어젯밤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았다는 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엄마는 그 얼굴을 보았다.
코의 모양이 낯설지 않았다. 눈썹의 각도가 낯설지 않았다. 자고 있는데도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래전에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홍파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짝꿍의 얼굴에서. 그때 그 아이가 왼손으로 연필을 쥐었다. 선생님에게 혼났다. 그 기억이 왜 지금 떠오르는지 몰랐다.
엄마는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커피를 끓여야 했다. 노트북을 켜야 했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는 하온의 방문을 두드렸다. 조용히. 두 번.
"하온아."
하온은 이미 깨어 있었다. 문을 열었다.
"엄마, 저 설명할게요."
"저 아이 누구야?"
"친구요."
"친구."
엄마는 그 말을 반복했다. 그러고는 다시 바닥의 아이를 보았다. 코의 모양을. 눈썹의 각도를. 자고 있는 볼의 선을. 잠든 얼굴에서도 또렷하게 읽히는 그것들을.
엄마는 하온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 닮았다."
하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커피를 끓였다. 손이 조금 떨렸다. 커피가 다 내려지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파트 단지 너머로 개운산이 보였다. 그 산이 늘 거기 있었다. 어릴 때도 거기 있었다. 홍파초 6학년 때도. 그때 짝꿍이 저 산 방향을 자주 바라봤다. 창문 너머로. 수업 시간에. 그 이유를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물어볼 수 없었다.
엄마는 핸드폰을 들었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여보."
"응, 무슨 일이야?"
"집에 애가 하나 있어."
"하온 친구?"
"당신 어릴 때 사진 있잖아. 홍파초 6학년 때 찍은 거."
"왜?"
"그 사진이랑 똑같이 생긴 애가 우리 집 바닥에서 자고 있어."
전화기 너머에서 잠깐 침묵이 흘렀다. 길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빨리 와. 조퇴해도 되니까. 지금 바로."
조운은 그 통화 소리를 다 들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자고 있지 않았다. 새벽부터 깨어 있었다. 이 도시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기동의 천장과 달랐다. 얼룩이 없었다. 갈라진 곳이 없었다. 조운은 그 하얀 천장을 보면서, 1988년의 자기 방 천장을 생각했다. 거기에는 물이 샌 얼룩이 있었다. 겨울마다 번졌다.
조운은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켰다.
하온이 옆에 앉아 있었다.
"들었죠?"
"응."
"아빠가 오고 있어요. 37년 후의 아빠가."
조운은 그 말을 들었다. 37년 후의 자신이.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이 도시의 도로를 달려서. 자신의 열한 살을 보러.
조운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목을 보았다. 왼손 손목. 화상 자국이 있는 그곳을. 홍파초 6학년. 선생님에게 매를 맞은 해. 엄마가 그 교실에 있었다는 것을. 조운은 아직 몰랐다. 그리고 하온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밖에 나가자."
조운이 말했다.
"네."
두 사람은 골목으로 나왔다.
3월의 아침이었다. 눈이 그쳐 있었다. 햇살이 골목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를 걷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고양이는 담장 위를 걷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조운이 골목의 간판들을 보았다. 낯선 글자들. 낯선 그림들. 1988년에 없던 것들.
"제기동이랑 많이 달라?"
하온이 물었다.
"냄새가 없어."
"냄새요?"
"연탄 냄새. 김치 냄새. 밥 냄새. 여기는 아무 냄새도 없어."
하온은 코를 킁킁거렸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냥 3월의 차가운 공기였다.
"아빠한테는 그게 이상한 거야?"
"응. 너무 깨끗해. 이상하게 깨끗해."
두 사람은 계속 걸었다. 햇살이 조운의 솜점퍼 위에 내려앉았다. 조운이 걸으면서 하온의 옆모습을 보았다. 자신을 닮은 코. 자신을 닮은 눈썹. 자신을 닮은 걸음걸이까지.
"야."
"네."
"너 걸음걸이, 나 닮았어."
하온은 잠깐 멈추었다.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조운의 발을 보았다. 그러고는 웃었다. 눈물 없이 웃었다.
조운이 다시 말했다.
"나 여기 얼마나 있을 수 있어?"
하온은 그 질문에 걸음을 멈추었다.
몰랐다. 정말 몰랐다. 빛의 문이 언제 다시 열리는지. 조운이 돌아갈 수 있는지. 돌아가야 하는지. 공책 어디에도 없었다.
조운은 하온의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몰라도 돼. 그냥 물어본 거야."
하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참았다.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다. 하온은 폰을 손에 쥔 채 조운을 보았다. 조운은 골목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37년 후의 자신이 저쪽에서 오고 있었다. 이 골목의 어딘가에서, 이미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하온의 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하온아. 지금 집에 돌아와."
엄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빠가 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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