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24화 내 방에 나타난 11살의 아빠

by Wren

​하온은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이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하온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창문 밖에 서 있는 아이를 보고 있었다.
​조운이었다. 왜 아는지 몰랐다. 그냥 알았다. 공책이 등에서 뜨거웠다. 그 온기가 저 아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목이 메었다. 저 아이가 아빠였다.
​열한 살의 아빠가 지금 아래에 서서 하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37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서. 낡은 솜점퍼 하나를 입고. 눈을 맞으며. 눈이 그 아이의 어깨 위에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이 도시의 낯선 골목들을 혼자 걸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하온은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신발을 신을 시간이 없었다. 엄마가 잠든 안방 앞을 지났다.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오늘 밤은 잠들어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계단이 삐걱거렸다. 현관문을 열었다. 3월의 새벽 공기가 얼굴을 쳤다.
​조운은 거기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아무 말도 없었다. 눈만 내렸다. 세상에 두 사람만 남은 것 같았다. 조운의 눈이 하온의 얼굴을 훑었다. 하온의 눈이 조운의 얼굴을 훑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안에서 서로를 찾고 있었다.
​가로등이 흔들렸다. 바람이 불었다. 눈송이가 하온의 뺨 위에 내려앉았다. 차가웠다. 그것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눈은 차가운 것이었다.
​맨발로 아스팔트 위에 서 있었다. 눈이 발등 위에 쌓였다. 그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사람 앞에서.
​“야.”
​조운이 먼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야, 너 혹시. 너 혹시 하온이야?”
​하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운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천천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꺼냈다.
​레고 블록이었다.
​조그맣고 뾰족한 레고 블록이었다. 조운의 손바닥 위에서, 눈을 맞으며,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하온은 그것을 보았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계단이 다시 삐걱거렸다. 책상 위의 스텔스 로봇을 집어 들었다. 가슴 부분이 비어 있었다. 마지막 조각이 빠진 자리. 하온이 처음 스텔스를 받았을 때부터 비어 있던 자리. 그 자리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뾰족한 홈이었다. 한 번 더 더듬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크기였다. 이 블록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아니면 이 자리를 위해 이 블록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계단을 내려갔다. 조운 앞에 섰다. 스텔스를 내밀었다.
​조운은 손바닥 위의 블록을 보았다. 스텔스를 보았다. 하온을 보았다. 다시 블록을 보았다. 눈을 비볐다. 다시 보았다. 입이 벌어졌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어요?”
​하온이 물었다.
​“몰랐어. 그냥 가지고 왔어.”
​조운이 대답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블록을 들었다. 스텔스의 가슴 부분에 가져다 댔다. 손이 떨렸다. 그래도 정확하게 맞췄다. 오래 기다린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을 위해 1988년의 그 방에서 출발한 것처럼.
​딸깍.
​소리가 났다. 작고 단단한 소리였다. 조운도 알아들었다. 1988년의 자기 방에서 수백 번 들었던 그 소리였다. 이 소리는 어느 시대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스텔스의 눈에서 빛이 났다. 붉은색이 아니었다. 푸른색이었다. 아주 밝고 선명한 푸른색이었다. 그 빛이 눈송이를 물들였다. 두 사람의 얼굴을 물들였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눈이 내렸다. 오래도록.
​조운이 먼저 말했다.
​“야, 너. 많이 고생했다.”
​하온은 숨을 참았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 때문에. 공책 때문에. 많이 무서웠지?”
​하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기도 했고 무섭지 않기도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온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또 흔들었다. 그 동작이 자신도 모르게 반복되었다.
​조운이 그것을 보더니 작게 웃었다.
​“나도 그래. 무섭기도 하고 안 무섭기도 해.”
​처음으로 웃는 소리를 들었다. 조운의 웃음소리였다. 아빠의 웃음소리였다.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였는데, 낯설지 않았다. 어딘가 자신의 웃음소리를 닮은 것 같았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조운의 소리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하온의 소리를 닮아 있었다. 두 사람은 둘 다 아직 어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서로를 알아보았다.
​조운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할래?”
​하온은 그 손을 바라보았다. 열한 살의 손이었다. 조운의 손이었다. 아빠의 손이었다. 37년 뒤에 자신을 낳게 될 사람의 손이었다. 지금은 자신보다 더 어린 사람의 손이었다. 그 모든 사실이 한꺼번에 이 손에 담겨 있었다.
​하온은 그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눈 속을 걸어온 손이었다. 하지만 잡고 있으니 조금씩 따뜻해졌다. 실제로 따뜻해지고 있었다.
​두 손이 맞잡혀 있었다. 2025년의 하온과 1988년의 조운이. 서른일곱 해를 사이에 두고. 같은 눈송이를 맞으며. 가장 짧고 가장 긴 악수였다. 스텔스의 푸른 눈이 그 사이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하온아.”
​조운이 말했다.
​“나 어디서 자면 되냐.”
​하온은 그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웃었다. 눈물이 나면서 웃었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을, 오늘 밤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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