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점묘(東京点描)8

제1편 리쿠기엔 7경 - 다정한 동행자 '후키아게 소나무(吹上松)

by 소요유

정원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방향 감각이 모호해지는 순간이 온다. 88개의 절경이 촘촘히 박힌 이 거대한 미로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시루베노오카(指南岡)'로 발길을 옮긴다. '지남(指南)'라는 한자어가 말해주듯, 이곳은 나그네에게 가야 할 길을 넌지시 일러준다는 안내자의 언덕이다. 언덕 저 편에 옆으로 길게 팔을 뻗은 독특한 형상의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비스듬히 누워버린 굵은 몸통, 그 위로 결결이 늘어진 소나무 가지들은 수직의 야심을 버리고 수평의 인내를 선택한 듯했다. 무엇이 이 소나무를 이토록 엎드리게 한 것일까.


바람이 불어 오르는 언덕의 소나무라 불리는 '후키아게 소나무(吹上松)'는 자연에 순응하며 바람결에 자신의 몸을 맡긴 것이리라. 누군가를 감싸안는 듯한 소나무의 형상이 마치 길을 잃은 나그네에게 보내는 다정한 안내자의 수신호 같다. 내 키 높이에서 수십 갈래의 손가락을 옆으로 펼쳐 보인다. "이쪽으로 오시게", 혹은 "저쪽 길도 괜찮네." 그 수평의 가지들은 정원의 동서남북을 조용히 가리키며, 이 거대한 인공의 산수 속에서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묵묵히 이정표가 되어주는 듯하다.

야나기사와 요시야스(柳沢 吉保)가 '신천재와카집(新千載和歌集)'의 시구를 빌려 시루베 언덕(指南岡)을 조성했을 때, 그가 바랐던 ‘지침’은 어쩌면 리쿠기엔 감상의 순로(順路)를 알려주는 지시가 아니었을 게다. 아마도 구름 걷힌 밤, 달빛 아래 언덕 저 편에 낮게 드리운 소나무 가지 하나가 "이 길도 괜찮다"며 넌지시 일러줄 것 같은 다정함이었을 것이다. 굳이 수직이 아닌 수평을 선택한 소나무의 몸짓 또한, 어쩌면 그 어느 날 조우하게 될 나를 부르는 고운 춤사위가 아니었을까.

인생이라는 거대한 정원에서 잠시 길을 잃었을 때, 나는 시루베노오카 언덕 저 너머 후키아게 소나무(吹上松)를 떠올릴 것 같다. 높이 솟아 우러러보게 만드는 권위 대신, 조용히 팔을 펼쳐 어깨동무를 해 줄 것 같은 소나무 한 그루. 자연스레 나의 리쿠기엔 순례의 동행자가 된다. 수십 갈래로 갈라진 가지들 사이로 정원의 풍경이 층층이 겹쳐 보일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가야 할 다음 목적지를 발견한다. 소나무는 내게 순로(順路)를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수십 갈래 길목을 펼쳐 보이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선택하길 묵묵히 기다려줄 뿐이었다.

리쿠기엔(六義園)의 후키아게 소나무(吹上松)


작가의 이전글도쿄 점묘(東京点描)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