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리쿠기엔5경- 내 마음의 달이 건너는 다리 - 도게쓰쿄(渡月橋)
달빛 밀물을 기다리던 데시오노미나토(出潮の湊)를 지나 숲의 품으로 더 깊숙이 걸음을 옮기면, 연못의 지류 위를 가로지르는 묵직한 돌다리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리쿠기엔(六義園) 88경 중 하나로 이름마저 서정적인 도게쓰쿄(渡月橋)다.
도게쓰쿄는 우리가 흔히 일본의 전통적 정원에서 떠올리는 화려한 아치형 곡선의 다리가 아니다. 대신 거대한 자연석 두 장을 툭툭 이어 붙인 듯한, 무심하고도 투박한 돌다리가 물 위를 가로지른다. 이 다리는 인공의 꾸밈을 거부한 채 제 무게를 견디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리 난간조차 없는 그 평평한 돌판은 다듬어지지 않은 돌의 거친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다리 주변으로는 낮게 엎드린 단풍나무와 이름 모를 수풀들이 제멋대로 뻗어 나와 돌의 직선을 부드럽게 감싼다. 화려한 장식 대신 시간이 깎아낸 무던함으로 무장한 이 다리는, 풍경 속으로 녹아들기보다는 풍경 그 자체가 되어 그곳에 머문다.
왜 이곳에 ‘달이 건너가는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사진 속 도게쓰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비밀의 실마리가 잡힌다. 수면과 아주 낮게 맞닿은 채 평평하게 뻗은 저 돌판은, 달빛을 받아내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하나의 ‘무대’다.
밤이 깊어 연못 위로 달이 높이 뜨면, 다리의 낮은 몸체는 수면 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때 수면 위로 맺힌 둥근 달의 반영(反映)이 다리의 평평한 돌판과 겹쳐지며, 마치 달이 다리 위에 사뿐히 올라탄 듯한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여기서 묘미는 관찰자의 움직임에 있다. 다리를 바라보며 걷는 사람의 위치가 바뀜에 따라, 수면에 비친 달그림자 역시 다리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달이 스스로 걷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따라 달이 다리 위를 천천히 건너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정지된 조형물이 아니라 빛과 수면, 그리고 인간의 걸음이 삼박자로 어우러져 완성되는 이 동적인 풍경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카메야마 천황(亀山天皇)이 노래한 와카(和歌) 속 정서를 물리적 공간으로 완벽히 번역해 낸 고도의 미학적 장치다.
다리 어귀에는 이곳이 리쿠기엔의 명소임을 알리는 낡은 석주가 고요히 서 있다. 세월에 깎여 희미해진 글씨 속에는 ‘도월교(渡月橋)’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석주 곁에 서서 다리를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돌무더기를 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이승의 땅’에서 ‘달의 세계’로 건너가기 위한 입구에 섰음을 의미한다.
리쿠기엔의 석주들은 길잡이인 동시에, 그 자리에 서서 어떤 시적 상상을 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이정표가 된다. 도게쓰쿄의 석주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하다. “당신은 오늘 밤, 당신의 마음을 비추는 저 달과 함께 이 다리를 건널 준비가 되었는가”라고. 무심한 듯 툭 걸쳐진 도게쓰교를 건너며, 나는 내 안의 소란스러운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는다. 달이 그러하듯, 나 역시 고요히 이 다리를 건너 저편의 나에게 닿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