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점묘(東京点描)5

제1장 4경 - 달빛 밀물이 머무는 항구 - 데시오노미나토(出潮の湊)

by 소요유

쓰쓰지차야(つつじ茶屋)의 마른 나무 기둥이 건네는 무던한 위로를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오면, 리쿠기엔(六義園)의 심장부인 거대한 연못 다이센스이(大泉水)가 바다처럼 눈앞을 가로막는다. 그 동쪽 끝, 연못의 물결이 육지의 품으로 가장 깊숙이 파고드는 지점에 ‘데시오노미나토(出潮の湊)’가 있다.


3월 말의 정원은 아직 초록의 생기를 입기 전이지만 이 시기의 리쿠기엔에는 겨울을 견뎌낸 잔디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 있다. 누르스름하게 마른 잔디 둔덕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연못 가장자리를 감싸 안고 있는데, 그 빛깔이 영락없이 고운 모래를 깔아놓은 금빛 해변을 닮았다.


거친 기암괴석 대신 완만한 경사를 그리며 물가로 잦아드는 이 정갈한 둔덕은, 마치 먼 바다를 향해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 자락처럼 평온하다. 잔잔한 수면 위로 부서지는 햇살은 윤슬이 되어 금빛 잔디 해변을 소리 없이 핥고, 그 물길 끝에 떠 있는 나카노시마(中の島)섬은 망망대해의 고도(孤島)처럼 아득하다. 이곳은 정원이 아니라 잠시 시간이 멈춘 해변의 한 조각을 몰래 베어다 놓은 듯한 고요함이 흐른다.


이곳에 ‘항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설계자 야나기사와 요시야스(柳沢吉保)의 문학적 야심 때문이리라. 그는 만엽집의 가인(歌人)들이 사랑한 와카(和歌)의 성지 ‘와카노우라(和歌の浦)’를 이곳에 품으려 했다. 그래서 ‘데시오(出潮)’라는 이름에는 그의 각별한 서정이 서려 있다. 그것은 단순한 밀물이 아니라, 어둠이 내리고 달이 솟아오를 때 그 인력에 이끌려 조심스레 차오르는 ‘달빛 밀물’이다.


낮에 마주한 '데시오 항구'는 정물처럼 고요하지만, 이곳의 묘미는 보이지 않는 달을 기다리는 그 ‘기다림’에 있다. 요시야스는 해가 지고 난 뒤, 차가운 달빛이 연못 수면을 은색으로 물들이며 바위틈까지 가득 차오르는 그 찰나의 풍경을 낙원의 완성으로 보았다. 봄이 시작되는 어느 낮, 비어 있는 항구는 그 비어있음으로 인해 밤의 약속을 더 간절하게 상기시킨다.


물가에는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희미해진 석주(石柱) 하나가 서 있다. 그 앞면에는 데시오노미나토(出潮の湊)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짧은 이름 뒤에는 《만엽집(万葉集)》에 수록된 가인 야마베노 아카히토(山部赤人)의 노래가 숨 쉬고 있다.


若の浦に 潮満ち来れば 潟をなみ 葦辺をさして 鶴鳴き渡る

(와카노우라에 달빛 밀물 밀려드니, 갯벌은 물에 잠겨 사라지고, 갈대 우거진 곳을 향해 두루미 울며 날아가네.)


1,300년 전 옛 시인이 노래한 그 찰나의 역동성이 리쿠기엔의 작은 돌기둥 안에 깃들어 있다. 석주 곁에 서서 지긋이 연못을 바라보면, 비록 지금은 두루미의 울음소리도 갈대밭도 보이지 않지만, 시인의 시심은 메마른 수면 위로 거대한 달빛 바다를 불러온다.


진정한 풍경은 눈이 아니라 상상력과 기억으로 완성되는 것인가. 아직은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항구에 홀로 서서,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밤의 밀물을 기다린다. 옛 시인의 노래를 빌려, 내 마음의 빈터에도 푸른 달빛 한 점이 가득 차오르기를 바라며.

데시오노미나토(出潮の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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