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것이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기에
아이가 등교한 후 집안일이 끝나면 한 시간쯤 앉아 있는다. 책을 읽기도 하고 몇 자 끄적거리기도 하고 노트북을 하거나 영화를 본다. 이곳은 식탁이 있는 주방이다. 결혼 후, 나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 준, 거부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지긋지긋하게 싫었던 곳이 한 끼의 밥과 반찬이 만들어지는 바로 이곳이다.
꽤 오래전에 요리책을 전부 버렸다. 결혼 선물로 받은 두꺼운 책은 버렸지만 부엌에서 레시피를 읽으며 반찬을 만들던 기억은 남았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엔 요리도 책으로 배웠다. 아이 이유식을 배달 받아먹으면서도 책에 쓰인 대로 이유식을 만들고, 요리 사진을 오려 주방 싱크대 문에 붙였다.
어릴 때 한동안 내 방이 없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자기 책상과 침대가 있거나 피아노까지 있는 애들이 있었다. 부러운 감정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엄마는 이사를 갈 때마다 먼저 염두 했던 것이 내 방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드디어 내 방이 생겼고, 책상도 사주셨다. 결혼이란 것이 내 방을 없어지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구들이 가진 것이 꿈처럼 좋아 보였다. 남들과 달리 가진 것이 적다고 부끄러웠다. 결혼 후, 다시 내 방이 사라진 어느 날, 욕구를 자제할 수 없어 불평하는 날이 쌓여갔다. 더 많은 것을 바라며 만족을 몰랐다.
급작스레 노크를 하고 남편과 아이가 내 방으로 들어온다. 그렇다. 방이 다시 생겼다. 내가 가진 것이 언젠가 다시 사라질 수 있음을 안다. 그리고 가진 것에 집중하며 만족해야 함을 배운다.
"자기야, 화장실 휴지가 떨어졌어."
남편이 욕실에서 나를 찾는다.
"엄마, 저녁 메뉴가 뭔가요?"
아이가 문을 열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