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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 행복. 편함.

by JUNO

나는 호주 생활 10개월 만에 한인사장님과 함께 처음으로 일하게 되었다. 쇼핑센터에 위치한 작은 초밥집에서 하루에 평균 8시간 30분을 일한다. 생각보다 높은(?) 시급과 괜찮은 시프트로 월, 화 아침 고정으로 일하고 있다.

일하다 보니 한국인 동료들을 만나고 당연하겠지만 영어보다 편한 한국어로 말을 하다 보니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동네 친구들을 만난 기분이다. 특히 시골에서 아시아 사람들도 보기 힘든데 한국인들과 일하다 보니 더 정이 든다.

사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나는 무조건 여기서 돈만 벌고 나갈 거야"라는 생각으로 한국어를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그렇게 묵묵히 나의 일만 하고 일을 마치면 바로 다음 일터로 향하는 게 일상이었다.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도 일부로 피했었다. 호주 오기 전엔 한국인들과 교류는 전혀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왔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초밥집에서 3주 정도 일했을까? 한인 직장동료분께서 생일파티를 초대하셨다. 그날 난 다른 직장에서 이미 직원들끼리 뒤풀이를 가진 상태였고 한인들과의 교류를 피하기 위해 갈 수 있었던 파티지만 가지 않았다.

관대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정말 나의 선택을 지켰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쿨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또 몇 주가 지나고 다시 똑같은 분한테 연락이 왔다. 오늘 밤에 다 같이 저녁 먹고 술 한잔씩 하신다고 또 초대해 주셨다. "그래 집도 바로 앞인데 한 번 가보자" 하며 짧게 인사만 드리다 다시 와야지 했다. 하지만 만나고 일터에서만 보던 검정옷을 입으시던 분들이 아닌 사복차림으로 각자의 색을 지내신 분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내가 평소에 바라봤던 호주에서의 한인들이 무채색의 피해야 할 존재가 아닌 인생에서 잊고 살았던 옛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특히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내가 자라왔고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뱉은 한국어로 말을 하니 영어로는 표현 못했던 모든 의사소통이 봇물이 터지듯이 너무 편안하게 흘렀다. 각자의 고민과 왜 호주 워홀을 선택했나, 어디서 왔나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미 맥주는 빈캔이 돼버렸고 시간은 새벽으로 넘어갔다.

사실 이분들도 나처럼 어느 꿈을 향해 호주 워홀을 오신 분들이다. 각자 멋진 목표가 있고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인 호주워홀의 길을 걸어가시고 있는 분들이다. 나보다 멋진 분들도 있었고 나보다 어리지만 더 많은 곳을 다녀본 분도 있었다.

오늘 일을 마치고 오후에 다른 일이 없어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다니는 헬스장에 다녀오고 집도 같은 길이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 고향 친구는 알 거다. 매일 밤마다 만나서 하는 거라곤 같이 이야기하면서 산책하는 건데 난 이 고요함 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참 좋다. 그래서 한국이었으면 절대 못 만났을 직장동료랑 집 가는 길에 이야기를 나누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가더라.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신다고 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그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나 스스로 많이 외로웠었나 보다. 아무리 친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도, 같이 일하는 셰프들과 술 한잔을 마셔도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젠 알았다. 이렇게 고마운 존재가 있고 달콤하고 편안함이 있으면 난 이곳에 머물고 싶어 할 거고 결국엔 내가 원하는 목표와는 멀어질 거다. 아쉽지만 자주는 못 보겠더라. 저번글에서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인들과 친해지고 같이 여행을 떠나고 맥주를 마신다? 그건 사양하겠다"라고. 하지만 바꿔 말하고 싶다. 한국인이라서가 아닌 사람으로서 바라보자. 언젠간 그들과 떠나서 같이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맥주정도는 마실 수 있다. 대신 너무 의지는 하지 말자.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정말 순수하게 좋은 사람들 같다. 대신 확실한 건 나도 언젠간 남들이 말하는 배신자가 될 수도 있는 거고 그들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무엇의 이득을 취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렇기에 서로 이득을 얻으려 하지 말자.


난 내가 언제 많이 성장했나를 되돌아보면 혼자 묵묵히 싸우며 고통이 있었고 외로웠던 시절에 가장 많이 성장했었다. 달콤함과 편안함에서 벗어나긴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원하는 게 크면 클수록 고통은 쓴 약이 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진 여린 마음을 가진 나다. 사람 때문에 맘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나에게 좀 더 집중해 보자.


P.S 끝으로 같이 일하는 동료분들이 이 글을 우연히 보신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 글을 계기로 맥주 한 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이상 맥주에 미친 남자입니다. (돈 아끼려고 안 마신 지 꽤 되긴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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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맥주입니다. Swan Draught. 서호주 맥주입니다. Bottle o에서 보신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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