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에 숯과 숫돌을 묻다

by 권경률

그것은 사로국이 철기로 떨쳐 일어서는 이야기였다.


탈해는 젊고 용맹한 부하들을 데리고 용성국을 떠났다. 용선(龍船)을 타고 왜를 거쳐 삼한으로 향하였다. 용성국의 철기와 항해술을 앞세워 포부를 펼칠 곳을 찾아나섰다.


삼한에 당도한 탈해는 동해안을 따라 천천히 북상하였다.


근오지의 남쪽에 있는 아진포를 지날 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 아진포에 배를 댔는데 어디선가 까치 떼가 나타나 갑판에 가득 내려앉은 것이다.


탈해는 까치 떼의 출현을 상서롭게 보았다. 이는 하늘의 뜻이리라 여기고 배에서 내렸다. 아진포의 늙은 무녀 아진의선과 주민들이 그들을 맞이하고 융숭하게 대접했다.


용성국의 왕자는 당분간 이곳에 머물기로 하고 궤짝에 싣고 온 금은보화를 무녀이자 족장인 아진의선에게 예물로 내놓았다.


주민들은 탈해와 부하들을 받아들이고 ‘석(昔)’씨라고 불렀다. 까치 작(鵲)자를 줄인 것이다.


석탈해는 이곳에 대장간을 열고 포구를 확장하려고 했다. 철기 생산과 해상 활동을 준비한 것이다.


그러나 아진포는 사로국에 공물을 바치는 부속 영지라서 일을 도모하기 힘들었다. 서라벌에서는 사신을 보내 탈해를 위협하고 압박했다. 여차하면 무력을 동원해 쫓아낼 기세였다.


입장이 곤란해진 아진의선이 중재에 나섰다. 사로국을 다스리던 남해차차웅에게 탈해를 천거하여 만나보도록 한 것이다.


석탈해는 중재를 받아들이고 먼저 사로국을 둘러보기로 했다.


동악(東岳)에 오르니 서라벌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맥을 따라 도도한 정기가 흐르고 있었다. 가히 천년을 이어갈 왕국의 터전이었다.


탈해는 서라벌에서 자신의 포부를 펼치기로 마음먹고 궁궐로 찾아갔다. 그는 남해차차웅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용성국에서 만든 철인동월(鐵刃銅鉞)을 바쳤다.


철인동월은 날이 철로 된 의식용 청동도끼다. 그런데 날에 쓴 철이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을 벼린 것이었다. 하늘의 뜻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할 차차웅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었다.


남해차차웅은 이방인 왕자가 마음에 쏙 들었다. 용성국의 철기 제작술을 사로국에서 펼치게 해 달라는 탈해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서라벌 북쪽을 흐르는 알천(閼川)의 하구가 석탈해에게 주어졌다. 외적의 침입을 막는 해자가 있어 ‘황성(隍城)’이라고 부르는 토성이었다. 석탈해는 이곳에 황성대장간을 열고 숯과 숫돌을 묻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탈해가 용성국에서 데리고 온 대장장이 집단은 성형의 달인들이었다. 철정을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들겨 칼, 창, 화살촉, 낫, 따비, 보습 등 무기와 농기구를 척척 만들어냈다.


그들은 집게와 망치, 모루와 끌을 써서 꼬기, 말기, 꺾기, 접기, 자르기, 붙이기 같은 성형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특히 날 부분을 담금질하고 연마하여 날카롭게 벼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사로국의 철기는 종전까지만 해도 가야와 낙랑에서 수입한 무기와 연장을 보수하던 수준이었다.


석탈해는 철기 제작술을 독창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 황성대장간의 철제 무기는 사로국의 군사력을 막강하게 만들었다. 철제 농기구는 나라의 농업 생산력을 크게 증대시켰다. 덕분에 사로국의 국력은 진한의 여러 소국들을 압도할 만큼 커졌다.


남해차차웅은 탈해의 활약에 감복하여 그를 일족으로 받아들였다. 딸을 시집보내 사위로 삼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들·사위 따지지 말고 어진 자로 왕위를 잇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석탈해에게 보위에 오를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뒤이어 즉위한 인물은 아들 유리이사금이었다. 그는 33년간 재위한 뒤에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탈해에게 임금 자리를 넘겼다. 석탈해의 공과 명성이 두드러진 반면, 자신의 두 아들은 재주가 한참 미치지 못한다며 결단을 내렸다.


고국에서 쫓겨나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 왕자가 서라벌에 숯과 숫돌을 묻고 신흥 강국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의 20년 치세에 사로국은 안으로 백성을 편안히 다스리고 밖으로 주변국들을 크게 아우를 힘을 비축하였지요. 그리고 유리이사금의 둘째 아들 파사에게 보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선대의 의리를 지키려고 박씨 일족에게 임금 자리를 돌려준 것이지요. 하지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석벌휴가 보위를 박씨 일족에게 넘기는 대목에서 말끝을 흐렸다.


준오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유리의 아들 파사이사금이 즉위하자마자 석씨 일족을 서라벌에서 몰아내고 멀리했기 때문이다. 벌휴의 아버지 구추 각간만 해도 평생 변방을 돌면서 정복전쟁에 헌신해야 했다.


파사이사금은 재위 중에 소국들을 잇달아 병합하고 사로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어찌 보면 탈해이사금이 일군 부국강병의 과실을 맛본 것이다.


하지만 파사는 은혜를 저버리고 석탈해의 후예들을 박해했다. 탈해에 비해 재주가 한참 못 미친다던 아버지 유리의 말이 가시처럼 가슴에 박혔을까?


석씨 일족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정복전쟁에 동원되어 적지 않은 인명 손실을 보면서도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패망한 나라에서 붙잡은 소년 포로들을 훈련시켜 ‘두두리(豆豆里)’라는 특수군단을 창설한 것이다. 소년들은 장성하여 무시무시한 전사가 되었다.


두두리는 귀신 탈을 쓰고 광적으로 싸웠다. 출전하기만 해도 적들이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석씨에 충성하는 사로국 최강 군단이었다.


석벌휴는 준오를 불러들여 사로국과 석씨 일족의 비사를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었다.


구추 각간에 이어 석씨의 당주가 된 벌휴다. 그가 근오지 천군에게 흉금을 털어놓는 까닭은 뭘까? 처세에 능한 준오가 모를 리 없었다.


벌휴는 정예 군단 두두리와 철기 공장 황성대장간을 원동력 삼아 석씨의 시대를 다시 열겠다는 야망을 키우고 있었다.


그 야망을 실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까마귀철막이다. 황성대장간에 삼한 최고의 철정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두두리를 더욱 강력한 철제 병기로 무장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근오지 마루치 금오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석벌휴가 까마귀철막을 빼앗으려 한다며 협상 제의를 딱 잘라 거절하고 말았다.


반면 준오는 기꺼이 벌휴의 손을 잡았다. 2인자에겐 기회였다. 1인자가 되어 부와 명성을 누릴 날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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