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슈퍼히어로의 시대다. 배트맨, 아이언맨, 헐크, 토르, 원더우먼 등이 영화판을 휩쓸더니 나라마다 초인 영웅들이 등장해 스트리밍, 굿즈, 밈을 쏟아내고 있다.
왜 슈퍼히어로가 각광받을까? 사회 체제가 거대 악이나 힘의 논리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평범한 사람들은 좌절하고 무력감을 느낀다. 슈퍼히어로는 그런 우울한 감정을 해소하고 짜릿한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이 시대의 대중문화 아이콘이다.
사람들이 슈퍼히어로에 환호하는 건 단순히 강해서가 아니다. 대중문화 속의 슈퍼히어로는 트라우마가 있거나 실수로 괴로워하는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갖고 있다.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고뇌하다가 선택의 기로에 서는 인간적인 모습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공감대 위에서 악당을 쳐부수는 슈퍼히어로의 활약이 빛을 발한다. 대중의 열망이 투영되는 것이다.
슈퍼히어로는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옛이야기 속에 초인적인 영웅이 등장한다. 민간에 흘러 다니며 극적으로 재창조된다는 점에서 지금의 대중문화 속 슈퍼히어로와 일맥상통한다.
고려 말 강릉에서 왜구를 무찌른 이옥의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롭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슈퍼히어로의 서사가 어른거린다.
[이옥은 고려 시중 이춘부의 아들이다. 이춘부가 주살되자 그는 강릉부 노비로 편입되었다.
이 무렵 왜구가 동해에 정박해 고을을 약탈하니 백성들이 모두 피난을 갔다. 강릉부 앞쪽 교외에 큰 나무가 많았는데, 이옥이 밤에 사람을 시켜 화살 수백 개를 나무에 꽂아놓았다. 이튿날 이옥은 상복을 벗고 말을 달려 포구로 가서 여러 발의 화살을 왜구에게 쏘고는 패배한 척하면서 숲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러자 왜구가 구름처럼 몰려왔다. 이옥 혼자서 왜구를 감당하는데, 나무에 꽂아두었던 화살을 뽑아 쏘며 종횡으로 말을 달렸다. 싸움은 아침부터 밤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이옥이 활을 당기기만 하면 반드시 명중하니 죽은 자가 삼 껍질에서 뽑아낸 실처럼 즐비했다.
그 후로는 왜구가 경내를 침범하지 않으니 온 고을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조정에서는 이를 가상히 여겨 이옥에게 벼슬을 내렸다.]
(성현, <용재총화> 권3)
조선 전기의 문신 성현이 엮은 야담집 <용재총화(慵齋叢話)>에 고려 말 왜구와의 싸움에서 눈부시게 활약한 한 인물의 무용담이 실려 있다.
이옥은 무척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아버지인 고려 시중 이춘부가 처형당하는 바람에 아들 이옥은 하루아침에 강릉부의 노비로 전락했다. 몰락에서 출발하는 슈퍼히어로의 서사다. 그리고 극적인 반전으로 운명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무용담은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삼고 있다. 이옥의 아버지 이춘부는 고려 공민왕 때 정권을 잡은 승려 신돈의 심복이었다. 신돈은 권문세족의 횡포에 맞서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민변정도감’이다.
당시 고려에서는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토지를 빼앗고 양민을 노비로 만들어 성난 민심이 들끓었다. 전민변정도감은 권세가들이 부당하게 차지한 토지와 노비를 바로잡는 기관이었다. 이 일을 앞장서 추진한 인물이 이춘부다.
덕분에 땅을 되찾고 신분을 회복한 백성들은 신돈을 가리켜 “성인(聖人)이 나왔다”고 칭송했다.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개혁을 추진한 이춘부의 공이 컸다. 반면 권문세족은 그들을 눈엣가시로 여겨 호시탐탐 제거할 기회를 노렸다.
1371년 결국 신돈은 공민왕을 해치려 했다는 역모죄로 죽임을 당했다. 이춘부는 역모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는 않았으나 신돈의 측근이라 하여 집요한 탄핵을 받았다. 공민왕은 그를 살리고자 했으나 조정의 공론이 드세 어쩔 수 없이 처형했다. 권문세족이야 쾌재를 불렀겠지만 개혁을 열망했던 백성들이 보기에는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안이 역모인 만큼 자식들도 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이춘부의 아들 이옥, 이윤, 이예, 이한, 이징 등은 모두 종(奴)이 되어 각 고을에 예속되었다.(<고려사> 열전 ‘이춘부’)
그리하여 이옥이 관노로 들어간 곳이 강릉부였다. 이곳에서 그는 운명을 바꿀 재난에 휩싸인다. 왜구가 동해의 여러 고을을 약탈하여 백성들이 피난을 가게 된 것이다.
<고려사절요>를 보면 이때가 공민왕 21년(1372) 6월이었다. 왜구가 동계(東界)를 습격하여 함흥, 원산, 안변, 영덕 등지를 휩쓸고 다녔다. 강릉에도 적이 들이닥쳤다. 그런데 고려 군사들은 멀리서 바라보다가 겁을 먹고 도망갔다고 한다. 붙어보기도 전에 전열이 무너진 것이다.
고려 말의 왜구는 단순한 해적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지고 북조와 남조의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앙의 통제가 약해지자 지방 영주들이 해적과 결탁하여 고려를 약탈했다. 내전으로 단련된 무사들의 군대가 왜구라는 이름으로 고려에 침입해 세곡과 재물을 빼앗고 무고한 인명을 살상했다.
왜구는 특히 단병접전에 강했는데 긴 칼을 휘두르고 덤비면 훈련받지 않은 고려의 지방군은 오금이 저리고 말았다. 1372년 강릉에서도 고을 병력은 도망가기 바빴다.
아군이 적에게 잔뜩 주눅이 들었을 때는 누군가 앞장서서 사기를 끌어 올려야 한다. 이 대목에서 고려판 슈퍼히어로의 무용담이 펼쳐진다.
관노 이옥이 상복을 벗고 분연히 나섰다. 그는 한밤중에 강릉 교외의 숲에다 화살 수백 개를 숨겨 놓고는 이튿날 말을 달려 왜선이 정박한 포구로 갔다.
웬 장사가 나타나 다짜고짜 활을 쏘아대자 포구의 왜구가 격분하여 모여들었다. 그러자 이옥은 화살이 떨어져 도망치는 척하며 숲으로 들어갔다. 독이 바짝 오른 적들이 떼를 지어 뒤쫓았다.
숲에서 이옥은 혼자 왜구와 싸웠다. 나무 사이를 종횡으로 누비며 숨겨두었던 화살을 적들에게 쏘았다. 활을 당기기만 하면 반드시 명중했다. 싸움은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되었다. 숲에는 왜구의 시체가 즐비했다.
이 무용담 속 이옥의 활약은 초인적이다. 뒤따라온 적이 몇 명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야기의 맥락상 적지 않은 병력으로 추정된다. 그는 숲이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대담하고 영리하게 싸워 왜구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슈퍼히어로는 체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등장한다. 왜구의 습격과 약탈이 빈번하지만 속수무책인 나라 사정이, 보호받지 못하는 백성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무용담에 초인적인 살을 붙였다. 관아가 비고, 군사들이 도망간 빈 자리를 가리키며 왜구를 쳐부숴달라는 열망을 억울하게 죽은 개혁가의 아들에게 투영한 것이다.
역사 기록을 보면 이옥 혼자서 왜구를 격퇴하지는 않았다.
“강릉부사와 안렴사가 이옥이 용맹하고 날래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주어서 왜구를 공격하게 하니, 이옥이 힘써 싸워서 적을 물리쳤다.”(<고려사절요> 공민왕 21년 6월)
그렇다고 해도 이옥의 분투가 반전의 계기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겁을 먹고 도망간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데 장수의 무용만큼 좋은 약은 없다.
‘관노’ 이옥이 숲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군사들은 머리털이 곤두서고 등골이 찌릿찌릿했을 것이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에 불꽃이 튀었을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과 칼을 꼬나 잡고 용기백배해 적에게 돌격했을 것이다.
장수가 전장에서 목숨을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옥에게는 당연함을 넘어 목숨을 걸어야 할 절실한 동기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상중에 관노 신분으로 출전했다.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죽은 아버지를 위해, 노비가 되어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을 위해 죽고자 하는 마음으로 싸웠을 것이다. 죽고자 했기에 끝내 살아날 수 있었다.
“이옥이 힘껏 싸워 물리친 덕분에 강릉 일대는 참화를 면하였다. 왕이 보고를 받자 말과 안장을 하사하고 관노의 역을 면하게 해줬다. 뒤에 우왕은 이춘부의 직첩을 돌려줬다.”(<고려사> 열전 ‘이춘부’)
이옥은 그 후 강릉도절제사에 올라 동해안 방어를 책임지며 끝까지 고려 왕조에 충성했다. 이 때문에 역성혁명파의 모함을 받아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그를 아꼈던 이성계의 두둔으로 풀려났다.
슈퍼히어로는 할 일을 마치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 조선이 건국되자 이옥은 원종공신에 봉해졌으나 절의를 지키고자 벼슬을 마다하고 자취를 감췄다. 1409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3일간 조회를 정지하고 ‘정절(靖節)’이라는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