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역사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험악한 시대도 화평하게 달랜다. 조선 시대 웃음의 대가로는 백사 이항복(1556~1618)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 가다가 큰비를 만났다. 안 그래도 힘든데 비까지 쏟아지니 다들 죽을 맛이었다. 호종하던 신하들이 비를 피해 우왕좌왕 뛰어가는데, 유독 도승지 이항복만은 빗속을 태연히 걸어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
“뛰어가면 앞에 내리는 비까지 다 맞습니다.”(<고금소총>)
임금과 신하들은 비를 쫄딱 맞은 채로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공포에 쫓기고 치욕에 주눅든 마음들이 이항복의 해학으로 다소나마 풀린 것이다.
전란 중에도 조정은 공리공론에 얽매여 편을 가르고 싸웠다. 어느날 어전 회의가 열렸는데 이조판서 이항복이 지각했다. 그의 해명이 걸작이다.
“오는 도중에 싸움 구경을 하다가 그만 늦어졌습니다.”
대신들이 무슨 싸움이었느냐고 묻자 백사가 대답했다.
“내시가 중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중은 내시의 불알을 잡고 싸웠지요.”(<기문총화>)
삭막한 어전회의에 모처럼 큰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몇몇 대신은 표정이 굳었다.
중의 머리카락이나 내시의 불알은 실제로는 없는 것이다. 조정의 공리공론도 마찬가지다. 실생활과 무관한 헛된 논의에 사로잡혀 부질없이 싸운다. 이항복은 나라를 좀먹는 소모적인 정쟁을 질타한 것이다. 웃음 속에 칼날이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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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 복이 와요>는 1970~80년대 MBC에서 방영한 전설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송해, 이기동, 남보원, 백남봉, 남철, 남성남 등 기라성 같은 코미디언들이 출연해 안방극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지금은 방송 뿐 아니라 SNS와 플랫폼에 웃음이 넘쳐 흐른다. 한마디로 웃기는 세상이다. 하지만 ‘내적인 웃음’은 귀하다. 그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삶을 환기하는 웃음이다.
우러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삶의 괴로움 앞에서 힘겹게 웃음 짓는 것도, 나는 내적인 웃음이라고 생각한다. 화가 나거나 당황스러울 때면 나도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짓곤 한다. 기분이 달라지고 태도가 바뀐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다. 웃으니까 즐거워지는 것이다.
웃음은 마음을 다스리는 작은 수양이다. 삶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다잡는 끈이다.
내적인 웃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우리는 ‘미소 천사’라고 부른다. 미소 천사의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사람들을 따라 도움의 손길이 답지한다. 세상에서 복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의 얼굴로 다가온다. 웃으면 복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