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3월 3일 / 우리 임금 국장날에 / 삼십삼 관음보살 / 삼천리에 나타나시니 / 독립만세 불러서 / 모범 된 영웅 되어라”
애국 창가 ‘영웅의 모범’ 마지막 소절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집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렀다는 노래 중 하나다.
일본 군경은 한국인의 평화 시위를 살상과 폭력으로 짓밟으며 마구잡이로 ‘불온문서’를 압수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를 보면 주최 측에서 배포한 독립선언문과 더불어 노래를 인쇄한 유인물들이 눈에 띈다.
장터와 거리로 번져나간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의 양상이 눈에 선하다. 한민족은 노래와 춤의 민족이다. 국권 회복 의지를 떨치는 자리에도 가무가 빠질 수 없다. 들썩이는 가락과 장단에 망국의 한이 끓어 넘치고 독립 만세 열기가 증폭되었을 것이다.
창가(唱歌)는 서양 악곡의 형식을 빌린 간단한 곡으로 구한말부터 우리나라에 보급되었다. ‘영웅의 모범’은 박제상, 이순신, 곽재우, 안중근 등 역사 속 항일 영웅들을 본보기 삼아 독립 열망을 지피고 만세운동 동참을 촉구한 노래다.
이 노래의 마지막 소절은 3·1운동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일어나라 3월 3일’은 독립선언이 애초 3월 3일로 예정되어 있었음을 알려준다. 뒤따르는 가사대로 ‘우리 임금 국장날’이기 때문이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조선 백성들은 국권 상실의 설움과 울분을 터뜨렸다. 더구나 황제가 독살당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났다.
“지금 조선인들은 복받치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옷소매를 적셔가면서 고종황제를 위해 거사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윤치호 일기> 1919년 1월 26일)
고종의 죽음이 촉발한 민족적 공분은 그 무렵 민족자결주의와 파리강화회의에 호응해 애국지사들이 준비하던 독립 선언에 큰 동력을 제공했다. 민족대표와 청년학생들은 그 에너지를 응집해 3월 3일 고종의 국장일에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떨치기로 했다.
그러나 거사는 막판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무산될 위기를 맞았다. 2월 하순에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가 천도교 인쇄소 보성사에 들이닥친 것이다. 조선인 형사는 윤전기를 멈추고 인쇄 중이던 독립선언서를 빼내어 보고 돌아갔다.
보성사 사장은 천도교 대표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을 앞장서서 준비해 온 최린에게 알렸다. 그 형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최린은 돈을 건네며 만주로 떠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3월 3일의 거사는 이 때문에 3월 1일로 앞당겼다. 준비가 되는 대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게 바람직한 상황이었다.
다음 노랫말인 ‘삼십삼 관음보살’은 민족대표 33인과 관련되어 있다. 불교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은 33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 중생의 기운에 따라 부처, 승려, 동남동녀, 용, 아수라 등으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그 33가지 형상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
‘삼십삼 관음보살’의 33이라는 숫자는 그래서 모든 사람에 대응한다는 의미로 확장해서 쓰였다. 조선 시대 성균관 유생들이 임금에게 상소할 때는 33인을 뽑아 대궐로 보냈다. 33인이 유생 전체의 의사를 대변한 것이다. 조선 후기에 민란을 도모할 때도 33인의 이름을 사발에 둥글게 적어 통문을 돌렸다. 33인이 봉기자 모두를 등에 업고 나선 것이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을 둔 것도 같은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삼십삼 관음보살’이 모든 한국인에게 화신(化身)해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른다는 것이다.
‘삼천리에 나타나시니’라는 가사가 뒤를 받친다. 만세운동은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 번져나갔다. 세계 곳곳에서 독립선언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그 위대한 역사가 이 땅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탄생시켰다. 대한민국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