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아들보다 항상 모든 면에서 조금 덜 나았으면 하는 마음을 시어머니들은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지 못할 경우, 그렇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 누가 더 낫고 덜 낫다는 판단은 주관적이다.
물질적·외형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사람됨과 성품을 중하게 여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을 비교하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럼에도, 우리의 시어머니들은 그 기준을 명확히 세우신다.
그 기준은 현실과 동떨어진, 오로지 본인만의 잣대다.
그 잣대 안에서, 며느리를 끊임없이 평가한다.
우리 며느리는 그저 그렇다고,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시던 시어머니가 어느 날 “우리 며느리예요.”라며 활짝 웃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우리는 부부는 시댁과 가까이 살며, 여전히 끊임없이 다투며 끝없는 암흑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었다.
첫 번째 응급실 방문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합의 끝에 부부상담센터를 찾기로 했고 각자 상담을 여러 번 받았다. 그리고 한두 번은 함께 상담받는 날을 정해 방문하기도 했었다.
부부가 함께 상담받는 날은 어느새 데이트하는 날이 되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만 식사하는 시간이 마치 새로운 세상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결혼 후, 남편과 단둘이 밖에서 식사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날 우리는 샤부샤부집에 들어갔고, 나는 마음이 들떴다.
부부 상담까지 받는 상태라면, 분명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그 식당 안에서 나는 세상 다 가진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서빙을 해주시던 아주머니를 봐도 마음이 즐거웠고,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마치 작은 여행 같았다.
6개월 뒤, 다시 그 식당을 시댁 식구들과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주문을 받으시던 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
“저번에 우리 식당에 오셨죠?”
나는 순간 당황했다.
‘어떻게 기억하시지?’ 속으로 생각하며
“네, 맞아요.”라고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때 인상이 너무 좋아서 기억에 남았어요. 이렇게 또 보니 알겠네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솔직히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남편 말로는, 사람 많은 곳에 세워놓으면 금방 묻혀버릴 평범한 얼굴이라고 했다.
그런 내가 이렇게 기억되었다는 사실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때의 식사는 결혼 후 몇 번 안 되는 남편과 나와의 단둘만의 식사였기에, 나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나는 유독 식사 내내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그 미소가 아주머니에게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시어머니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기분 좋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우리 며느리예요!”
나는 순간 시어머니의 그러한 모습이 의아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시어머니는 평소 나를 좋게 보지 않으셨는데. 왜 그러시는 걸까?
남 앞에서 며느리와 사이가 좋은척하며 자신의 체면을 세우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시어머니는 관계의 진심보다 외부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인에게 며느리와 좋은 관계로 포장하는 모습이 내게는 당혹스러웠고 약간의 모멸감까지도 들게 하였다.
그때의 일은 내게 시어머니가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인지를 분명히 각인시켰다.
진심은 체면을 넘어서는 법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관계를 지킬 때, 비로소 관계는 온전하게 살아난다.
결국 체면은 관계를 꾸미지만, 진심은 관계를 지킬 것이다.
진심이 없는 진심이라도 진심이라 믿어야 하는 것, 그것이 며느리의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