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선 긋기

선 긋기

by 마음벗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 년 후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 방문하였다.


거실에 시어머니, 나와 동서와 함께 앉아 있었고 대뜸 창밖으로 보이는 슈퍼마켓을 손으로 가리키며 시어머니는

“야! 저기 가서 우리 OO(시동생 딸) 먹을 딸기랑 바나나 사와!”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황당했고 동서도 황당해했다.


시어머니 생신 겸 오신 터라 음식을 준비해 차려드렸다. 시동생의 아이 먹일 음식을 따로 준비했지만 알레르기가 있다 하여 부랴부랴 다른 음식을 다시 준비해 먹이고 상을 다 치우고 막 자리에 앉은 시점이었다.


당황한 내 표정을 보시고는

시어머니께서는 2만 원을 흔들며 “ 이 돈으로 딸기랑 바나나 사 오라고!” 이렇게 재차 내게 말했다.

기분이 많이 상한 나는 남편에게 “ OO(시동생 아이)이 먹을 딸기랑 바나나 사 오라고 어머님이 말씀하시네.”

말을 전했다.

그리고 거실에 다시 앉으니

시어머니께서는 동서에게 “ 둘째 낳으면 내가 키워 줄 테니 낳아!” 말씀하셨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인가? 밥 차리고 과일 대접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사실을 말했다.

남편은 버럭 화를 내며 "엄마가 진짜 그랬어? 뭘 잘못한 건지 엄마에게 내가 알려줄게"

어머니가 계신 작은방으로 가려했다.

" 소란 피우지 마! 그래봤자 무슨 소용 있어?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다만 내가 원하는 건 당신 가족들에게 내가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당신이 인지해줬으면 해"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 싫고, 밥을 차려드리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그날 남편에게 내 마음을 말할 용기를 얻었고 그 용기에 남편은 호응해 주었다.

이제 '시어머니가 싫다. 그녀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도 싫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후 설날이었다.

시어머니께서 애들 방학은 언제 하냐며 물어보셨다. 방학 일정을 알려 드렸더니 말씀하시길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동생의 아이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방학 때마다 OO(시동생의 아이)을 너희 집에 데려다 놓으면 네가 봐주면 되겠다.” 말씀하셨다.

시댁과 2시간이 넘는 지역에 살고 있었고, 더군다나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어 남편이 주말에만 오는 상황을 알고 계셨다. 남편은 살림이나 육아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셨다.

시동생의 아이를, 아들 세 명을 키우는 나에게 맡기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무슨 생각을 하시며 사시는 분인가 싶었다.


곧장 남편은 정색을 하며, “엄마! 그럼 방학 때 첫째랑 둘째 여기에 데려다 놓을 테니까 엄마가 돌봐 줄래?” 말하였다.

한두 번 겪는 일은 아닌지라 이제는 화가 나기보다는 도대체 저러고 싶을까 라는 연민의 생각마저 들 지경에 이르렀다.


그 생각에 끝에 머물러 다시 생각해 보니


시어머니께서는 시동생 집 근처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방학 때는 꼼작 없이 시동생 아이를 돌봐야 할 것 같으니 그걸 나에게 떠넘기고 싶어서 무리수를 두신 듯하였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시어머니는 내 탓을 하는 건 기본이었고, 이제는 본인의 짐까지 나에게 내려놓으시고 싶은 것 같았다.

그렇게 점점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명분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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