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저... 침묵, 반복되는 순간들

그저... 침묵, 반복되는 순간들

by 마음벗

가정마다 문화와 풍습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 생각하는 방식도 다른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내게는 쉽지 않았다.

내가 무엇보다도 의문스러웠던 점은 시어머니의 행동이나 말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시어머니는 축의금 봉투를 정리하고 계셨다.

어느 한 봉투에서 돈을 꺼냈고, 메모하려던 참이셨다.

그런데 갑자기 기억이 안 나셨나 보다 “얼마였지?”

그 축의금 봉투의 주인은 동네 지인분이셨던 것 같았다. 갸우뚱하시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집어 들고 전화를 하셨다.

“식사는 잘하고 갔어? 그런데 봉투에 돈을 얼마 넣었어?”라고 다짜고짜 물어보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했어?” 동네 지인분께서 말씀하셨다. 그분은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고 시어머니는 이상한 여자라며 도리어 화를 내셨다.


가족들의 반응은 가끔 있는 일인 것 마냥 시아버지는 혀를 끌끌 몇 번 차고 말았고

남편은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쓰고만 있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후에야 알았지만, 그들에게는 이 정도의 일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게 맞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와 얼마 되지 않아 첫째 아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당황스럽고 갑작스러웠지만,

행복했다.

시어머니는 다짜고짜 아기가 뱃속에서 비행기를 탔다며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혼전임신을 했다는 말을 하시는 듯하였다. 굳이 아닌데

맞다고 우기는 모습이 기괴하기까지 하였다.


이게 뭔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냥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많은 일들이 그러했듯이.


나는 1년간 주말부부로 지내야 했다.

점점 배가 불러왔고 혼자 지내며 힘든 점도 많았지만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남편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날들이 잦아졌다.

시어머니는 동네에서만 지내다 보니 답답해하셨고 바람 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셨던 것 같다.

임신한 몸으로 그저 앉아 숨을 고르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그들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이라는 듯했다.

그날따라 나는 주방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배는 점점 불러오고, 다리는 퉁퉁 부어오르고, 허리는 늘 아팠다.

그래도 나는 꾹 참았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며, 정성껏 밥을 차렸다.


만삭의 임산부가 되어 갈수록 시어머니의 '방문'이라는 이름을 한 추가 나에게 짐이 되어 쌓였다.

그것은 의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고, 며느리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도리라는 굳건한 벽 뒤에 숨어 있었다.


남편과 단둘이 보내는 편안한 시간? 그런 건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우리는 부부라기보다는, 시댁을 위한 두 명의 관리인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전화가 오면 우리의 대화는 끊겼고, 우리의 계획은 미뤄졌다.


유난히 수박이 먹고 싶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나 수박이 계속 먹고 싶어." 말했다.

남편은 "사 먹어. 돈 보내 줬잖아."

" 나 지금 바빠 엄마가 족발 먹고 싶다 해서 사러 가야 해."

" 전화 끊어...." 그렇게 남편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주말에 가면 수박 사줄게." 이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그냥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느 날은 시어머니께서 해물탕이 먹고 싶다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날은 도착하자마자 해물탕전문점에서 식사를 했고, 남편은 시어머니를 극진히 살피며 "엄마, 맛있지? 많이 먹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너도 어서 먹어." 남편의 한 마디였다.

남편은 어머니를 챙기는 착한 아들의 모습이었다. 아들로서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힘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함을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이해는 머리로 하는 일이지만, 받아들임은 마음의 상처를 필요로 했다. 나는 그 상처를 원하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 곳곳에는 깊은 금이 가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효도'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항상 후순위가 되었다.


출산휴가가 끝나갈 즈음, 나는 서둘러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남편과 떨어진 채 아이를 홀로 돌본다는 건, 그때의 나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남편의 고향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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