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라진 내 자리, 몸이 반응했다.

사라진 내 자리, 몸이 반응했다.

by 마음벗

“얘야, 뭘 챙겨가면 좋겠니?”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야 이번 여름휴가 계획이 벌써 세워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항상 그랬지만

그 해는 힌트조차 없었다.


나는 휴가 일정에 대해 들은 적도 없었고 내 의견에 대해 묻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가족이면서도 계획에는 없고, 실행에는 포함되어야 하는 사람처럼 취급되었다. 함께 떠나는 사람이지만, 함께 정하지는 못했다.


남편 나름의 이유는 이러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을 하지만 나는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기 때문이었다. 말하는 걸 깜빡했다고 말했다.

여름휴가 3일 전에서야 계획을 알고 짐을 싸고, 아이의 물건을 챙기고 정작 나는 그 여행 안에서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익숙해졌다.

묻지 않는 일에도,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도, 아무도 나를 중심에 놓지 않는 이 풍경이 익숙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댁과 함께하는 여름휴가는, 이름만 '휴가'였을 뿐 내게는 집에서의 일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버거웠다. 낯선 환경에서 쉬지 못하고 손이 더 많이 가는 상황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를 도와 식사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바다 냄새 대신 음식 냄새가 나를 감쌌다. 함께 왔으면 함께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런 당연한 상식을 마음속으로 되뇌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매번 식사를 손수 차려서 해결했다. 그 중심에는 어머니와 내가 있었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에서 손질해 음식을 마련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늘과 바다를 온전히 내 눈에 담고 싶었다. 아이와 함께 모래를 밟고 싶었다.

그러나 시부모님은 숙소에 머물기를 원했다. 여행지에 왔지만, 바깥을 즐기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저 앉아서 쉬고, 차려진 밥상을 기다리는 여행....


우리 가족은 아기와 함께 잠깐 밖에 나갔었지만 이내 금방 돌아와야 했다.

곧 또 식사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준비하고,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하는 그 끝없는 반복.

그것이 나의 여행 코스였다.

'이게 정말 여행인가? 아니면 장소만 바뀐, 조금 더 불편한 집안일인가?'

휴가라는 단어가 내게는 조롱처럼 느껴졌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시댁과 함께 떠나는 여름휴가는 괜찮은지 단 한 번도 내게 남편은 묻지 않았다.


그렇게 그곳에서의 생활이 3년이 가까워질 무렵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평소처럼 남편의 퇴근 후 시댁으로 향하는 차 안이었다.

늘 가던 길, 늘 하던 루틴,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갑자기 숨이 막히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식은땀이 났고, 가슴이 조여 왔다.

‘이대로 죽는 걸까?’

숨을 들이쉬려 할수록 더 답답했다.

남편에게 ”나 숨을 못 쉬겠어 “ 말했다.

남편의 차는 다급히 응급실로 향했다.

각종 검사를 했지만 ” 특별한 이상은 없다 “는 말만 돌아왔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숨이 찼고 결국 링거를 맞고 1시간 정도 잠에 들었다.

깨어 들어보니 신경안정제를 맞았다고 하였다.

그날을 시작으로 그런 증상들은 짧게는 한 달 한 번 또는 몇 개월에 한 번씩 나를 괴롭혔다.

언제든 또 숨이 안 쉬어져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는 걸 내 안에 품고 살아가야 했다.

그 당시에는 이게 뭔지 몰라 한의원도 내과도 다녀봤고

아주 나중에는 심장내과와 신경외과에서 심장과 뇌를 검사받기도 하였다.

10년이 지나서야 정신과진료를 받게 되었고 공황장애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 당시에 한의원에서 진료를 봤고 ‘화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렇다는 말, 그 말이 어쩐지, 나를 더 아프게 했다.

한의사의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말을 시댁식구들이 듣고 시어머니는 가족들 앞에서

남편에게 ”네가 OO에게 잘 좀 해라 “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 뒤에 시어머니와 단둘이 남았을 때

"네가 뭐를 했다고 스트레스야?"

"그리고 누가 그 정도 스트레스도 안 받고 사냐?"며 타박하듯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 앞에서 숨도, 말도 모두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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