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족, 남편의 위치

가족, 남편의 위치

by 마음벗

시댁과 친정 어느 한쪽이라도

부부에게 본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부부에게 3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자식 부부는 이혼을 한다.

두 번째 부모와 연을 끊고 그 부부만의 세상에서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부모와의 인연을 끊기 위해 내적 소란을 감수해야 하며,

결국 부모와 자식 모두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세 번째 부부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만 둘 사이의 혼란이 끊임없다.

결국 남편이든 아내든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만 한다.

정상적 가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올바른 가정의 기능을 상실한 불안전한 가정이 된다.


어떤 선택을 해도 모두 파국이다.

어리석게도 본인만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우리는 세 번째의 선택을 했다.

그들이 가정에 깊숙이 파고들수록 우리 가정은 너덜너덜해져 갔다.


남편은 나의 이야기들을 듣기 싫어했고

나의 감정을 불편해했으며, 일상적인 대화조차 피했다.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라는 존재를 애써 멀리해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까?

남편은 내 의견은 듣지도 묻지도 않았으며,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게 벽이 되었다.

시댁과 본인의 의견을 내게 전하기만 하였다.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 되어갔다.


‘너만 조용하면, 너만 가만히 있으면, 너만 속상하고 말면 우리 집은 괜찮아 ,

제발 그냥 너만 가만히 그대로 버텨’ 이렇게 내게 말하는 듯한 남편의 행동은 나를 진짜 그렇게 만들어갔다.

남편은 내게 왜 그토록 잔인했을까?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시어머니에게는 아픈 손가락과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것.

큰 며느리인 나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유독 살갑지 않았고

같은 며느리여도 나에게만 유독 큰 희생과 배려를 요구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 관계는 각 각의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과 차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시어머니께서는

“OO이(시동생)는 큰 집 살 줄 몰라서 안 사는 줄 아냐?”

“ OO이(시동생)가 큰 차 살 줄 몰라서 안 사는 줄 아냐?”

라는 황당한 말들을 했었다.

시동생보다 넓은 집을 산다고, 더 큰 차를 산다며 며느리인 나에게만 불편한 마음을 전했다.

너희가 뭔데 시동생보다 더 좋은 걸 사려고 하느냐’라는 말이 숨어 있었다.


항상 기준이 시동생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시어머니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시어머니에게 우리 아이들에 대한 일상을 말씀드리면

시어머니께서는 “우리 OO(시동생 아이) 이도 할 수 있을 걸?” 지지 않으려는 듯 말씀하셨다.


뭐가 되었든 시동생의 가족들이 더 좋은 걸 가지고 있어야 하며, 더 똑똑해야 하고, 더 나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습에서 똑같은 자식, 손주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남편에게 당신의 위치는 여기 까지라는 사실을 말해주었지만, 아니라고 부정하였다.


남편은 그 가족들 사이에서 딱 그 정도 위치였다.


몇 년이 지나고

남편이 원가족으로부터 소외감을 명확히 느낄만한 일을 몇 개월간 겪었고 그제야 내 말의 뜻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우리 가족(원가족)으로부터 이러한 대접을 받았고, 그래서 너와 아이들까지 똑같은 대접을 받는 거 같아 미안해.” 남편은 말하며 씁쓸해했다.


그들 앞에서 남편도 늘 비교와 차별의 대상이었고, ‘며느리’라는 가장 쉬운 대상이 나타나자 그 화살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리고 더 거칠고 모질게 쏟아 낸 것이다.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더 약한 쪽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참으로 냉혹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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