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나

by 마음벗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가 되어 버린 나


낯선 세계에 홀로 떨어진 느낌,

토끼를 따라 무심코 들어온 곳이,

이렇게까지 낯설지 몰랐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는

“너는 엄마가 없어 속상한 일 있으면 말할 곳도 딱히 없고 하니 나한테 말해라.” 내게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이 참 고맙고 감사했다.

한 번은 “남편이 술 약속이 많아 늦게 귀가해 걱정되고 속상해요.”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시어머니는 내 편을 들어주며 마치 따뜻하고 믿을만한 어른처럼 행동하셨다.


하지만, 역시나

어느 날 남편이 평소와 다르게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어머니가, 네가 자꾸 내 욕을 자기한테 해서 속상하시다고 하셨어.”


순간, 황당했고 이상했다.

속상하면 말하라고 시어머니께서 먼저 손 내밀어 주셨는데, 일상적인 걱정 한마디를 듣고는 울먹이며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남편에게 전하였다니...

어찌 이토록 해괴망측한 일이 다 있을 수 있는가?

누군가는 다정한 얼굴 뒤에, 상대를 조용히 시험하고 재는 마음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을.

겉으로는 걱정과 공감의 옷을 입고 다가오지만, 속으로는 그 대화를 무기 삼아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관계는 위험하다.

진심을 나눌수록 내 말이 왜곡되고, 내 마음은 빚으로 전락한다.

말과 마음이 안전하게 머물 곳이 아니라, 함정이 되어 돌아오는 공간이라면 차라리 침묵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패가 될 것이다.


그 순간부터 나는 경계를 세워야 했다.

아무리 가족이라는 이름을 쓰더라도 내 마음을 함부로 맡기지 않기로..

신뢰는 말과 행동이 쌓아 올린 진짜 기록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곳은 분명 ‘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였지만,

나는 그 안에서 ’ 있는 듯 없는 존재‘로 살아가야 했다.


매해 정월 대보름이면 빠짐없이 찰밥과 나물을 손수 싸 들고 우리 집에 찾아오셨다.

처음에는 정성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너무 많이 준비해 오셔서 같이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나는 사실 찰밥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어머니의 성의를 생각해 말없이 매번 먹어야만 했다.


하지만 점차 고마움보단 부담감으로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다음 해에는 남편에게 나는 찰밥을 좋아하지 않으니 조금만 가지고 오셨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을 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찰밥과 나물을 가지고 집에 찾아오셨고,

성이 난 표정으로 식탁에 찬통을 세게 내려놓으시면서

“너 찰밥 싫어한다면서?, 그럼 진작에 말을 하지 그랬냐”며 차갑은 목소리로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내가 불편한 마음을 말로 꺼내면 분란이 일어나는구나

결국 다 내 탓이구나.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억울하고 서운했다.

나조차도 내 마음이 늘 ‘불청객’ 처럼 받아들여졌다.

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항상 나는 힘들어지는구나,

이제는 내 마음의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것조차, 나 스스로 불편했다.

시댁에서 나는 화목한 가정을 위해 필요한 중간 경로, 필요한 도구 또는 일꾼 정도로 취급당했다.

또한 나는 미숙하여 자꾸 참견을 해줘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가족 내의 결정이 오갈 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가족이라기보다는 그들이 함께 식사하고 웃고 난 뒤 조용히 뒤처리하는 사람 같았다.

늘 함께 있지만 내 자리는 늘 식탁 끝자락이었고, 말할 기회도, 선택할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있었고, 동시에 없었습니다. 마치 투명 인간처럼

책임과 의무는 있으나 권한은 없는 그런 사람이다.

존중과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필요할 때 쓰이는 존재였다.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며느리로, 누군가의 엄마로만 존재하는 동안

나라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에 숨은 착각을 경험하고 보았다.


가족이 되었으니 내 편일 것이라는 기대,

가족이니까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허상이었다.

이해관계 상황의 변화에 따른 선택적 행동일 뿐 그들이 내게 베푸는 가끔의 선택적 친절은 위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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