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댁으로의 출퇴근

시댁으로의 출퇴근

by 마음벗

남편은 퇴근 후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나와 아기를 데리고 늘 시댁으로 향했다.

마치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과처럼, 우리가 어떤 하루를 보냈든, 아이가 어떤 상태든,

우리의 생활 리듬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은 퇴근 후 시댁으로 향하며

과거 가족이 가지지 못했던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남편은 평온했고 행복해했다. 우리가 도착하면 시댁에는 활기가 넘쳤다.

도착한 시댁에서 시어머니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고 나는 아기를 시아버지께 맡기고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의 저녁 준비를 도왔다. 그렇게 차려진 식사를 함께했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는 늘 내 몫이었다.

‘도와주는 ’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처럼 여겨졌고

누구도 그 수고에 대해 고마움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에게서 믿기 힘든 말까지 들게 되었다.

"너는 참 편하겠다. 엄마 덕분에 밥 준비도 안 하고 편하게 저녁밥을 먹었으니까."

그 말은 내 심장을 세게 후려쳤다. 나는 졸지에, 시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에 기대어 사는, 호강하는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으로 보이는 역할을 떠안았다.


그러나 그 '편함'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편해지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호의는 때론 의무보다 더 큰 짐이 된다. 남편은 그 사실을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시댁 식구들과의 식사 자리가 어찌 편할 수 있겠는가


실상은 나는 늘 남편과 함께할 저녁식사를 준비해 두었다.

퇴근 후 시댁에 가는 일정은 그날그날 남편의 일정에 맞춰 바뀌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걸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8~9시, 그제야 나의 저녁 일과가 시작되었다.

아기를 씻기고 잠을 재우고 샤워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남편과는 나눌 대화도 감정을 나눌 시간도 부족했다.

우리는 부부였지만 어느새 서로의 삶에서 가장 늦게 도착하는 손님이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 나는 투명해지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야 평온한 사람처럼,

말이 없을수록 편한 사람인 줄 아는 세상이 되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보다 더 자주 시댁 식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시댁 식구들과의 교류는 ‘관심’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간섭’ 그 이상이었다.

만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오는 육아와 살림의 조언과 잔소리는 내게 말이 아니라 감정의 침입처럼 느껴졌다.


아기가 조금이라도 칭얼대거나 울기라도 하면 시어머니는 애가 배가 고파서 그렇다며 어서

젖을 먹이라며 채근하였다. 내가 하고 싶은 육아의 패턴이나 방법은 전혀 상관없이 강요하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가는 방법이나 젖을 떼는 시기부터 아기 옷까지 사사건건 간섭이었다.

나에 대한 간섭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절마다 나는 친정에 가지 못했다. 명절의 전 주나 명절이 지난 다음 주에 얼굴을 비추는 것이 전부였다.

매해 명절 내내 시댁과 함께 지내야 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그것이 당연해졌다.

친정으로 가는 길은 점점 멀어지고,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친정 집에 나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힘들다는 말, 서운하다는 말, 억울하다는 말, 그 어떤 것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사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정확한 이름을 붙일 수도 없어

그저 가슴 깊숙이 무겁게 내려앉은 돌덩이 같은 감정뿐이었다.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해도,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답답했다.


어쩌면 나는 그 감정을 느끼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야지.'

'결혼했으면 다 이렇게 사는 거야.' 스스로를 타이르며 눌렀다. 그러나 그 눌린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촘촘하게 엉켜 갔다.


나는 점점, 조용히 작아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말을 아끼고, 표정을 감추고,

마음을 숨기며, 그들 앞에서는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내가 사라지고 있다는 걸 그 누구도 몰랐다.


나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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