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듣기 싫은 말들이 있었다.
“남녀 칠 세 부동석.”
“여자는 아홉 가지 죄를 지어서 여자로 태어났다.”
그리고 언제나 따라붙던, 남아선호 사상.
우리 할머니는 손자는 귀히 여겼지만 손녀는 그저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명절이면 더 분명해졌다. 친척들이 모이면, 늦은 밤 술 심부름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여자인 내가, 어두운 밤길을 홀로 나서야 했다. 친척 오빠들이 자처해도, 할머니는 굳이 내가 가야 한다고 했다.
1998년, 미성년자에게 술 판매가 전면 금지된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드디어 술 심부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명절이 되자 할머니는 어김없이 나를 불렀다.
“이제는 술 못 사요, 할머니. 저는 미성년 자니까요.”
나는 당당히 말했다.
할머니는 순간 놀라셨지만 곧 “괜찮다”며 웃어넘겼다. 마지못해 슈퍼에 간 나는, 주인에게 물었다.
“저 미성년자인데요. 술 못 사죠?”
그러자 슈퍼 주인은 집에 전화를 걸어 어른과 통화하더니 결국 술을 내어주었다. 시골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 순간 하늘이 무너졌다. 신고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린 나는 그저 분노를 꾹꾹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느 설날 아침, 친척들께 세배를 했다.
세뱃돈으로 대부분은 현금을 주셨지만, 고모부는 문화상품권을 내 손에 쥐여주셨다.
낯선 봉투 한 장. 시골에서 어디에 써야 할지도 몰랐지만, 그 순간 이상하게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날 오후, 할머니는 친척들 앞에서 나를 가리키며 타박했다.
“얘는 누굴 닮아 이리도 고집이 센지 몰라.”
여자애가 고집만 세다고, 못마땅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순간 속이 상했는데, 고모부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고집이 있어야 뭐라도 하지요. 고집 센 사람들이 원래 잘 삽니다, 장모님.”
할머니는 고모부를 좋아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그때 나는 괜히 우쭐해졌다. 그래, 맞아. 나는 그런 사람이야.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 한마디가 세상을 두렵지 않게 했다.
고모부가 내게 주신 문화상품권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너는 괜찮은 사람이다, 너를 믿는다’라는 메시지 같았다.
나는 그것을 책으로 바꾸며 다짐했다.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어른처럼 대해주셨던 고모부.
그 따뜻한 인정이 내 안의 자존감을 살려주었다.
지금도 그 감사함은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