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게 점심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버텨내는 작은 위로이자,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쉼표였다.
그러나 그만큼 고민도 많았다. 매일같이 비슷비슷한 음식, 똑같은 메뉴의 반복은 금세 지루해졌고, 나 또한 늘 같은 고민 속에 살았다. 오늘은 뭘 먹지? 또 같은 걸 먹어야 하나? 결국 나는 도시락을 싸가기로 했다.
도시락을 선택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다들 각자의 도시락을 꺼내 놓고 함께 모여 앉았다.
그 순간은 작은 뷔페에 와 있는 듯했다. 서로의 반찬을 나누어 맛보며 웃음꽃이 피었고, 그 안에서 직장이라는 단조로운 공간은 잠시 집밥의 온기로 가득 찼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여사님들의 도시락이었다.
그분들이 준비한 반찬은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정성스레 준비된 반찬 하나하나가 집밥의 품격을 보여주었고, 그 앞에서 나는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직장에서 이렇게 따뜻한 집밥을 맛볼 수 있다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 또한 차츰 도시락 반찬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요리의 가지 수를 늘려 갔다. 물론 맛은 보장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도시락의 모양새는 점점 제법 그럴듯해져 갔다.
내가 준비한 도시락 반찬이 맛이 없음에도 맛있다고 다들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점심시간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기다려지는 기쁨의 시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입덧은 없었다. 오히려 닥치는 대로 잘 먹는 ‘먹덧’이 찾아왔다.
덕분에 점심시간은 더욱 행복해졌다. 그런데 그즈음부터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여사님들의 도시락 반찬이 예전보다 더 풍성해지고, 신기하게도 내가 맛있다고 했던 반찬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연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분들은 임신한 나를 배려해 일부러 여러 반찬을 준비해 오신 것이었다. 그런데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너 먹으라고 가져왔어.” 하는 생색은커녕, 그저 자연스럽게 도시락을 나눠 먹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리던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지금 엄청난 배려 속에 있구나… 눈물이 핑 돌았다. 그들의 따뜻한 손길과 숨은 마음이, 말없이도 나를 감싸 주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나는 여사님들이 해주셨던 음식들이 문득문득 그리워졌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맛이 있다. 바로 간장 코다리 조림이었다. 단순한 한 끼 반찬이었지만, 그 맛은 내 생애 가장 감동적인 음식이었다. 지금도 떠올리면 입안에 침이 고이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생각한다. 선한 마음을 가진 분들을 만난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이 아닐까. 그분들은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인자함과 선함으로 주변을 감싸 주셨다.
분명히 우리들에게 미숙한 부분이 많이 보였을 것임에도 그분들은 잔소리도 하지 않으셨다. 노하우를 가르쳐 준다면서 이런저런 본인의 자랑을 늘어놓는 여느 다른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 상당한 지식인임에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게 묻어 두시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분들은 내 인생의 롤 모델이 되었다. 아, 진짜 어른이란 이런 모습이구나. 내가 상상하던 ‘어른다움’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깊이 있는 감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분들이 남겨주신 따뜻한 기억이 살아 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글로 남기고 싶다.
당신들은 내게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신, 진짜 어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