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있는 집에서 '층간소음'은 늘 두근거리는 단어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장난감을 던지는 소리, 쉼 없이 울어대는 소리, 괴성을 지르는 소리. 옆에서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뒤틀리는 스트레스다.
그렇기에 주변 주민들이 느낄 스트레스는 얼마나 강력할까, 늘 마음 한편에서 걱정이 되었다.
두꺼운 매트를 깔아도, 소리는 완전히 상쇄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주민을 만날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언제든 꺼낼 준비를 하고 탔다.
처음엔 아래층 주민의 한마디가 고마웠다.
“9시 이후에만 조심시켜 주세요.”
단순한 부탁이었지만 마음속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저희 남편이 격주로 밤에 근무를 해서 낮에도 자야 해요.”
“남편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요. 내가 화를 누그러뜨리느라 고생했어요.”
이제는 단순한 걱정을 넘어, 나 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이들을 최대한 단속하려고 애썼다. 항상 “뛰지 마”라고 말했고, 아이들은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은 날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첫째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주민과 마주친 모양이었다.
“엄마, 아래층 아주머니가 너희는 왜 이렇게 뛰니? 그만 뛰면 안 되겠니?라고 말했어”
그 후로는
“엄마,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아주머니 있나 없나 살펴보고 있어. 너무 무서워.”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래층 아주머니는 말투가 약간 투박할 뿐, 나쁜 분은 아니셨다.
아이의 말에 나는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실 첫째는 잘 뛰지 않았다. 어린이집 다니는 둘째가 문제였으니, 첫째 아이의 잘못은 아니었다.
나는 혼자 이해하고, 원망하며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며칠 뒤 낮, 초인종이 울렸다. 아래층 아주머니가 직접 올라오신 것이었다.
아이들이 너무 뛰어 시끄럽다는 말을 하려고 오신 것 같았다.
하지만 집안 바닥에 깔린 두꺼운 매트를 보시고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지셨다.
“애들이 너무 시끄러우니까 조심 좀 시켜주세요.”
사실 그 시간에는 아이들은 조용히 앉아 만화 영화를 보고 있었던 때였다.
“지금은 아이들이 앉아서 만화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혹시 어느 순간 뛰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더 조심시키겠습니다.”
층간소음은 단지 아래층만 받는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층간소음의 주범인 아이들의 부모에게도, 마음을 조율하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그날 이후로, 직접 찾아오시는 일은 다신 없었다.
이사 후에도, 층간소음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막내아이가 백일이 되었을 때, 나는 백일떡을 주변 주민들에게 나누며 인사를 나누었다.
아래층 할머니께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고, 그분은 귤 한 박스를 들고 오셔서 백일떡을 맛있게 먹었다며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아래층 할머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셨다.
“아이가 뛰고 소리 지르며 시끄럽게 해서 죄송해요.”
나는 진심을 전했고
아래층 할머니는
“아이는 원래 뛰면서 크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순간, 내 마음속 긴장이 사라졌다. 매번 만날 때마다 사과를 드려도, 그분은 늘 같은 말로 마음을 가볍게 해 주셨다.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렸고, 그분 손에는 커다란 딸기가 박스째 들려 있었다.
“아이랑 맛있게 먹어요.” 라며 건네주시고 웃으며 돌아가셨다.
다음 날, 나는 귤 한 박스를 사서 아래층 할머니에게 전해드렸다.
쑥스러워하시면서도 받아 주셨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항상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 그분 덕분에 사람과의 연결이 오히려 내 마음에 따뜻한 에너지를 채워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사람과의 만남을 ‘소모’라고만 여겼던 나는, 이제 그것이 ‘충전’이 될 수도 있음을 배웠다.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과, 그 친절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단순한 교환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층간소음이라는 갈등 상황 속에서도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그리고 그로 인해 얻는 마음의 평화를 배우게 되었다. 내게 그 따뜻한 마음을 전해준 아래층 할머니는 나의 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