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상상해 보기

by 마음벗

나는 가끔 극한의 상황을 상상해 본다.

왜냐하면 내가 세운 다짐이 얼마나 단단한지, 그 다짐이 실제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줄 만큼의 힘이 있는지를 시험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정의 내리지 않은 기준은 언제든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갈아 끼워질 수 있다.

“나는 저런 시어머니는 절대 안 될 거야.” 그렇게 다짐하지만, 그 다짐은 내가 겪어온 특정한 사례들 속에서만 유효하다.


그 외의 낯선 상황이 닥치면, 나는 또다시 보통의 시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미래의 여러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내가 아들 내외에게 충분한 거리와 자유를 선사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다음은 어떨까?

그들이 그 자유를 만끽함에 있어 나의 판단이 섞이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과연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마음이 바로 시험대다.

진짜 ‘자유를 준다’는 건, 그 자유의 결과가 내 뜻과 다르더라도 불평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시어머니가 내게 주신 물건과 음식들은 언제나 질문을 동반했다.

“그건 잘 쓰니?”

“그 음식은 다 먹었니?”

그 물음에는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확인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마다 나는 그 물건들이 단지 물건이 아니라, 시어머니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분이 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준 물건의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버릴 거면 가져가지 마라.”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감사보다 부담이 앞섰다.

“안 가져갈게요.”

그렇게 말하면, “그래도 가져가라.”

이 모순된 명령 앞에서 나는 늘 멈칫했다.


주고도 놓지 못하는 마음, 받으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마음.

그 사이에서 나는 ‘고마움’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움직였다.

한 번은 시어머니가 분홍색 티셔츠를 내게 건넸다.

“이거 내가 작아서 못 입겠더라. 네가 입어.”

색도 디자인도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거절하기엔 눈치가 보였다. 나는 그 옷을 장롱 속에 조용히 넣어두었다.


한 달 뒤, 시어머니가 말했다.

“그 옷은 왜 안 입니?”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내가 입는 옷도 당신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하나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말 대신 침묵이 흘렀다. 결국 그분은 말했다.

“그럼 다시 줘.”

나는 옷을 돌려드렸다.


그 순간, 묘한 해방감이 스쳤다. 동시에 ‘옷 한 벌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나’ 싶었고, 죄책감도 따라왔다.

돌이켜보면, 시어머니가 내게 물건을 건넬 때마다 단순히 ‘주는 행위’가 아니라 지배의 끈이 함께 따라왔다.

물건은 곧 관계의 매개였고, 그 관계 안에서 받는 사람은 늘 낮은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너에게 줬다.”는 그 문장 안에는, ‘그러니 네가 나를 잊지 말라’는 말이 숨어 있었다.

물건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물건을 받을 때,

‘이것을 받는 순간, 나는 내 공간 일부를 내어주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받더라도 나의 방식으로 쓸 것이다.

감사의 표현은 행동으로, 감시는 허락하지 않겠다.”


주는 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상대를 자유롭게 하는 주는 일,

또 하나는 상대를 묶어두는 주는 일이다.


시어머니는 후자였다.

그분의 사랑은 소유의 형태를 띠었고, 나는 그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 했다.

물건을 준다는 것은 단순히 소유권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그 마음의 무게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다.


주고도 놓아줄 줄 아는 사람, 받고도 짓눌리지 않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항상 피곤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상상해본다.

내가 아끼던 물건을 며느리에게 선물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녀가 그 물건을 소중히 쓰는지, 내 마음을 알아주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준 순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 물건을 버리든, 잊어버리든, 쓰지 않든 그것은 이제 며느리의 선택이다.

만약 그 선택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할 것 같다면, 애초에 주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소유의 연장이 아니며, 배려는 보상을 전제로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스스로를 지켜야 할 진짜 이유다.

‘내가 얼마나 해줬는가’에 집착하면 안 된다.

진짜 사랑은 계산이 없다.

주는 것만으로 기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머리로는 잘 새겨두었다. 이제 마음에 단단히 새기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 자신을 끊임없이 훈련한다.

‘보상받지 않는 연습’을.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은 연습’을.


나의 다짐은 이제 머리에 새겨진 약속이 아니라, 가슴으로 흘러들어 삶이 되어야 한다.

진짜 시어머니가 된다는 건, 아들의 배우자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욕심과 기대를 길들이는 일임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바꾸려는 노력 대신, 나를 다스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상상 속에서 늘 되뇌는 다짐이다.

나는 언젠가 진짜 며느리를 맞이하게 될 날을 떠올려 본다.

그녀가 내 집에 들어올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환영의 말을 건네는 것뿐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그녀의 몫이다.


그녀가 실수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고쳐줄 일이 아니다.

내가 감히 개입할 권한이 없는, 그들만의 세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물러서서 그들의 행복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상상한다.


혹시 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내가 먼저 잠시 멈추는 장면을.

말 대신 미소를 선택하고, 간섭 대신 기다림을 선택하는 나를.

그 상상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간다.


미래의 나는 오늘의 이 연습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나를 경계할 때, 사랑은 비로소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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