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돌 하나라도 내가 귀하게 여기면, 주변 사람들도 그 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사람의 관계도 이와 같다.
내가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 마음을 통해 세상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게 된다.
단지, 귀하게 여길 마음이 없기에 많은 사람들은 귀한 인연을 곁에 두고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은 대개 자신이 손에 쥔 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다.’
사람을 귀히 대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인격과 품위를 지키는 사람이다.
인연을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타인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며느리와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며느리를 귀하게 대하면, 세상 누구보다도 귀한 인연이 된다.
하지만 며느리를 가볍게 여기면 그 순간부터 그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내가 곁에 두고도 소중히 대하지 못한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진다.
시어머니가 동네 사람들 앞에서, 친척들 앞에서 며느리의 흉을 본다면 그건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다.
며느리를 흉보는 그 입은 곧 자신의 아들을 향한 부끄러운 손가락질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을 누가 귀하게 여기겠는가?
결국 귀한 인연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그 인연을 하찮게 만든 장본인인 경우가 많다.
귀한 인연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내 마음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하찮은 인연이라도 귀히 여기면 언젠가 그 인연은 빛을 낸다.
반대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내가 함부로 대하면 결국 그 관계는 돌멩이처럼 차가워진다.
귀하게 여긴다는 건,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들의 방식, 그들의 기준,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깃든 관계는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단단하다.
겉으로 화려하지 않아도, 속이 곱고 깊다.
그런 관계야말로 오래간다.
그녀를 귀히 대하면, 나의 품격도 함께 높아진다.
그녀를 험담하면, 내 인격도 함께 깎인다.
며느리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결국 내 아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며, 그들의 가정을 축복하는 일이다.
귀한 인연은 누군가의 조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그를 귀히 여기겠노라’는 다짐에서 피어난다.
그 마음이 전해지면, 상대는 변하고 관계는 깊어진다.
인연이 귀해지는 것은 상대의 태도가 아니라
내가 귀히 여길 줄 아는 눈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사람이라도 내가 그 안의 빛을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나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된다.
세상에는 보석보다 귀한 관계가 있다.
그건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만든 인연이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에 새긴다.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 결국 나를 귀하게 만든다.”
내 곁의 며느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나는 보석이 되길 바란다.
“인연이 귀해지는 건,
귀히 여길 줄 아는 마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