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속상한 마음에 친정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처음으로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시어머니가 너무 참견이 심해요.”
아버지의 대답은 단순했다.
“심심한신가 보네.”
그 말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맞아요. 심심한신가 보네요.”
통화가 끝난 후에 마음이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그 단순한 한 마디가 내 마음속의 답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견과 간섭은 결국 심심함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시어머니는 특별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외로움과 지루함을 느끼다 보니, 자식들의 삶과 일상을 궁금해하고, 참견하고, 통제하려는 마음이 생겨난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작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을 때도, 혼자 살고 있을 때도 그 말은 늘 같았다.
자식들이 가까운 곳에 살아도, 자주 찾아가도,
그 입에서는 여전히 “외롭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 말속에는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마음의 결핍이 담겨 있었다.
함께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기.
외로움은 누가 대신 지워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
그러니 혼자여서 외롭다고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외로움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마음의 허기로부터 생겨난 그림자일 뿐이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명절과 제사, 가족 행사에 기대어 삶의 활력을 찾았고, 그때마다 자식들의 일상이 시어머니의 손길에 휘둘렸다.
며느리는 어머니를 가까이하고 싶어도 가까이하기에 힘든 관계가 되었다.
시댁에 가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이 되는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삶을 침범하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가까이한다고 해서 진정한 사랑이나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 경험은 내게 강력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시어머니가 되고 싶은가?”
답은 명확했다. 저렇게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진짜 나만의 것이 있어야 한다.”
항상 배우고, 걷고, 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며 스스로 빛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외로움을 자식과의 관계로 채우지 않고, 내 안에서 충만함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지켜야 할 경계이자, 자녀의 자유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그게 바로 어른의 품격이 아니겠는가?
시어머니가 되어도, 내 인생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내 삶의 충만함이 곧 자식과 며느리에게 전해지는 사랑이 될 것이기에
나는 그들의 삶을 간섭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
배움과 나눔으로 채워진 삶, 스스로 단단히 지켜낸 세계.
그것이 자식들에게 진정한 존중을 전하는 방법임을 알아갔다.
좋은 시어머니가 되는 길은 며느리를 잘 대해주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바다의 등대처럼,
멀리서 조용히 빛을 비추되,
그들의 배에 올라타지 않는 사람.
그게 내가 되고 싶은 시어머니다.
“관계의 품격은 거리를 아는 데서 비롯된다.
사랑은 간섭이 아니라 믿음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