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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월 Feb 01. 2021

몸 이전의 기억 영화 <소울>과 콩나물 낙지찜

무직자 딸을 둔 실직자 아빠의 뚝딱 요리

갑작스러운 실직을 맞아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아빠의 레시피와 아직도 무직인 딸의 소담한 일상을 같이 씁니다. 우리 부녀는 (비록 직업은 없지만) 여전히 잘, 살고 있습니다. 



Ep.8

삶은 가끔 참 우스워진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기투 및 피투적 존재라고 설명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 속으로 그냥, 내던져진 인간. "신에게 우리는 너무 늦게 왔고, 존재에게는 너무 일찍 왔네."라고 말하는 그는 준비되지 않은 채 세상으로 떨어진, 너무 일찍 태어나버린 인간 존재를 규명한다. 하이데거의 논리를 따르자면 그렇기에 인간은 늘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다. 별다른 지식도, 확신도 없이 태어난 존재의 존재 물음. 인간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스스로의 존재를 의문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왜 태어났니~왜 태어났니~♬라는 노래가 귓가를 맴돌고 도무지 나도 모를 일이다, 라며 한숨짓던 그런 날들. 그런 때면 인간은 그저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존재라는 설명이 위로가 되었다. 어떤 합의도, 준비도 거치지 않고 그냥 무작정 내던져진 것에 실컷 짜증도 내고, 신의 무책임함을 탓한 후면 마음은 조금 후련했다. '그냥'은 때로 적절한 위로가 되어주니까. 


사실 그 위로의 근원은 인간 존재의 별 볼 일 없음에 대한 인식이다. 그냥 태어난 존재가 태어나서 뭐 큰 일을 하겠는가. 그냥 태어난 존재들은 그냥 살다가 그냥 죽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인간은 피투적 존재다 라는 명제가 가지는 위로의 힘은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마. 그냥 적당히 살렴."라는 토닥거림에서 온다는 것이다. 


한때 나는 '기투'와 '피투' 개념에 열광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면 내 뜻대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던 프랑켄슈타인의 음성과 하이데거의 인간관을 함께 떠올렸다.    



그리고 영화 <소울>


<소울>은 이와는 정반대의 개념을 담지한 영화다. 태어나기 전 'Great Beyond'의 세계에 있는 모든 영혼들은 지구에서 태어나거나, 태어나지 않을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태어나지 않는 편을 택하는 건 22 하나로 보인다. 다른 영혼들은 이리저리 쏘다니며 자신의 성격이 되어줄 요소들을 모으고 마지막 불꽃을 찾는 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판을 다 채워 지구 통행증을 받게 된 날이면 그들은 서슴없이 지구로 다이브한다. Dive into the Earth, 영혼들의 다이빙은 지극히 가볍고 경쾌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 제리와 테리의 이미지가 무척 좋았던

영화는 'Great Beyond'라는 세계를 통해 삶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거친 영혼의 역사를 보여준다. 인격 형성을 위한 엄밀한 체계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Great Beyond' 속에서 모든 영혼은 지구에서 태어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준비를 모두 마치면 태어나기 위한 가장 마지막 단계이자 시험인 '불꽃'을 거쳐 마침내 지구로 향한다. 오로지 준비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Great Beyond'의 세계를 거치는 한, 그냥 무작정 태어나는 존재는 없다. 


'Great Beyond'가 삶을 위한 준비의 은유라면 '마지막 불꽃'은 삶을 원하는 마음의 상징이다. 성취해야만 하는 목표나 이뤄야 하는 꿈이 아닌, 삶을 소망하는 마음의 자리. 태어날 준비를 모두 마친 영혼들에게는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누구도 함부로 태어나지 않는다. 


<소울>은 우리의 삶을 북돋기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대신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이미 완벽했던 그 시절을 이야기한다. 누구도 상처 받지 않는 세계, 삶을 준비하는 세계, 삶을 원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불꽃을 피워내던 완전한 순간을 그려낸다. 빈칸 채우기는 이미 그때 다 했던 일이라고, 모든 영혼은 이미 다 채워진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삶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자신에 대한 염려도 그때 이미 다 겪어본 일이고 또 이겨내 본 일이라고 그렇게 말한다. 



근데 왜 사는 게 힘들지?


맛을 느끼고 냄새를 맡는 건 몸의 몫이다. 몸은 좋은 것을 느끼되 또 동시에 가장 먼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한다. 그리하여 몸은 삶의 희비를 모두 간직한다. 


영혼이 삶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던 반면 몸은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상처를 받고, 살은 깎여 나가며, 인간은 늙어간다. 기어이 몸의 표피를 뚫고 마음까지 침투한 상처들은 물리적인 고통이 되어 몸을 찌른다. 삶이 고달픈 건 몸의 감각이다.


하지만 영혼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날 선 칼끝을 피하기 위해 한껏 웅크린 채 거기에 있다. 살고 싶어하던 그때 그 마음을 간직한 채로. 아무리 고달픈 인생이었어도 다시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조의 영혼이 증거하듯 삶을 사랑하던 태초의 기억은 녹슬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마음 깊숙한 곳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기름진 피자 냄새에 흠뻑 취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떨어지는 낙엽을 주워 감탄할 몸의 시간, 몸의 여유가 아닐까. 지쳤다는 감각은 마음이 아닌 몸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르니. 

출처: 네이버 영화/ 아, 피자 맛있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생 이전의 세계에서 나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지구로 뛰어들었을까. 한 판을 꽉 채워 완전해진 영혼들이 지구로 다이브하던 순간, 그 얼굴에 스친 감정을 문득 그리워해 본다. 

우습게도, 이제는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는 것이 더 위로가 된다. 



콩나물 낙지찜

필요한 재료: 낙지 4 마리, 콩나물 300g, 양파 1 개, 대파 2 개, 청양고추 3 개, 바지락 300g

1. 

양념장 만들기. 

<고춧가루 5 큰술, 간장 4 큰술, 국간장 2 큰술, 청주 2 큰술, 소금 1/2 숟가락, 마늘 3 큰술, 설탕 3 큰술>을 넣고 잘 섞어준다. 


(자취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혼자 해 먹기 시작했을 때쯤, 나는 요리는 장비빨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기본적으로 구비해놔야 하는 재료들이 어찌나 많은지. 본가에 다녀올 때면 집에 있는 재료들을 몇 개씩 훔쳐오곤 했다. 고추장, 된장, 밀가루, 맛술, 올리고당, 국간장, 진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등등. 엄마는 살림을 털어간다며 헛웃음 쳤고 나는 자취생이 돈이 어딨냐며 다소 뻔뻔한 태도로 집안 냉장고를 몇 번이고 거듭 탐색했다. 그렇게 내 자취방은 웬만한 가정집 뺨치게 되었다는... 그런 전설적인 이야기. 아무렴 이 덕에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며 가끔 아빠가 전수해준 요리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2.

낙지에 밀가루 4 큰술을 넣어 바락바락 씻어준다. 


3. 

(사진 없음 주의)

바지락을 해감한다.

콩나물을 잘 씻어 건져둔다. 

프라이팬을 예열한 뒤 청주 2 큰술을 넣고 해감한 바지락을 넣어 볶아준다. 


4.

채 썬 양파와 콩나물을 프라이팬에 넣고 그 위에 양념장을 올려준 다음 또 열심히 볶는다.


5.

고추와 대파를 먹기 좋게 자른 다음 낙지와 함께 프라이팬에 넣는다. 

재료들이 얼추 익었을 때쯤, 전분물(전분가루 1 큰술+물 3큰술)을 넣고 잘 볶아준다.


(이번 것도 한번 시도해볼까 했더니만 어김없이 전분가루가 들어간다. 전분가루는 없는데, 이번 설날에는 본가에 가서 전분가루를 좀 얻어와야겠다.)


6.

완성!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것들이 생략된 사진들. 다른 멋들어진 레시피들에 비해 영 서툴러 보일 수 있으나 서투른 것에서 오는 다정함이 또 있지 않은가. 우리의 서투름이 그러하듯. 어설픈 것들이 계속 어설플 수 있게 어설픔의 미학을 주창하는 중입니다. 다들 완벽하면 사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


+레시피/사진 출처 모두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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