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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월 Jun 28. 2020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Vis ta vie! 너무 쓰면 마들렌을 먹으렴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한쪽 다리를 내어준 채 산다.
그러나 때로 어떤 과거는 우리의 두 다리를 모조리 집어삼키기도 한다. 침식은 찰나이다.


조각 난 과거의 파편들이 제자리를 되찾기 위해 이리저리 부딪치고 또 소란을 피울 때면 더욱더 깊은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시간이 간다고 정말 모든 것이 해결될까. 시간이 흘러도 지혈되지 않는 상처가 있다. 결국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도 되는 영역은 없는 셈이다.


우리는 때로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우리 스스로 과거를 유영해왔다 여긴다. 발목을 잡아채는 과거를 애써 쳐내며 바득바득 전진했던 고된 분투는 전부 망각한 것처럼.

출처:네이버 영화

아름다운 영상미와 사운드로 가득 찬 이 영화에 갈등이 있다면 그건 과거를 제대로 간직하는 자와 과거를 제대로 간직하지 못하는 자들 간의 갈등일 테다. 폴의 이모들은 폴에게 과거를 숨기고 폴 역시 가리어진 기억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간다.


비밀로 존재하는 과거는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때문에 과거는 오롯이 폴의 내면에서 자라나고 오해와 상처가 쌓인 과거는 왜곡된 형태로 폴 안에 깊숙이 자리 잡는다. 이러한 왜곡은 점차 그 위력을 더해 인물들의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를테면 폴이 말을 잃고 이모들은 폴을 여전히 아기처럼 대하며 폴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와 반대로 프루스트 부인은 폴 내면에서 점차 썩어가는 상처를 햇볕 아래에 드러내는 존재이다. 곪아가는 상처를 덮어두기만 한다면 폴은 앞으로도 두 살 꼬마일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부인이 폴로 하여금 과거와 마주하고 스스로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도록 이끌어준다.

인생은 행복으로만 가득 찰 수 없기에 우리는 좋은 기억과 마찬가지로 나쁜 기억을 가진다.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 모두를 간직하며 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나쁜 기억을 행복한 기억의 홍수 아래에 가라앉게 하는 것'. 그리고 그 홍수를 위해 '수도꼭지를 트는 것'.

출처:네이버 영화

그리고 여기 또 한 가지 최선의 방법이 있다. 폴이 개구리와 다시 마주했듯, 수면 아래에 있던 기억을 다시 소환했듯, 괴로움과 마주하는 것.

병든 나무는 뽑혀야 한다. 병든 과거 역시 뽑혀야 한다. 그러나 병든 것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그것을 마치 원래 없던 것 마냥 애써 지우는 일은 과거가 아닌 인간에게 더 잔인한 일이다.

언제고 이별이 정답인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빠른 이별은 당장은 최선의 방법인 양 보일 수 있으나 곪아 터질 상처를 남기기 십상이다.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제아무리 흉측할지라도 결국에는 나의 것인 나의 과거와도 화해해야 한다.
타인이 애써 잠재우려던, 나 역시 애써 가라앉히려던 과거와 마주 서서 그 상처를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그 상처가 아물어가는 과정 역시 지켜볼 수 있다.

말을 잃었던 폴이 '아빠'라는 단어를 내뱉는 순간에 울음보가 터지는 것은 엄마 아빠를 잃은 두 살의 꼬마 폴이, 이제는 누군가의 아빠가 될 만큼 자라났다는 것에 감격하기 때문이다.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상처에 감당하지 않는 편을 택했던 폴이 정원에서 보여준 용기들로 아픈 과거를 모조리 감당해냈음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한편에 숨겨져 있던 상처는 마침내 따스한 조각이 되어 세상에 나왔고 폴이 세상에 내보인 것은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치유의 기적이었다.  

내가 꼭 조개 같아요.

날카로운 작은 조각을 오랫동안 내 안에 간직하고 있다가,

더 편안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죠.

그래서 천천히 그 조각을 진주로 만들었어요.

소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속의 한 문장이다. 소설 속 에리카가 자신의 날카로운 작은 조각을 진주로 만들었듯 폴 역시 자신의 상처 난 조각을 다듬고 깎았다. 덕분에 타인도, 폴 스스로도 더 이상은 그 날카로운 조각에 찔려 피 흘리지 않을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병든 것은 제거돼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프루스트 부인이 나무 앞을 지키고 우쿨렐레를 연주했던 것은 이제 곧 뽑히게 될 자신의 삶을 향한 레퀴엠, 충분한 애도다. 누군가의 기억을 되찾아주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던 그녀 역시 인간이었음을. 이별이 어렵고 삶에 지치던, 인간이었음을.

쓰디쓴 과거를 헤엄치는 폴에게 프루스트 부인은 마들렌이다. 부인의 퉁명스러움이 위로로 변천하는 순간에, 따뜻함이 달콤함으로 전이되는 순간에 영화는 힐링 영화로서의 빛을 발한다. 저마다의 고달픔을 가지고 사는 모든 인간의 애처로움을 조명하는 동시에 회복과 치유의 기적을 말하는, 아니 바라는 영화의 마음씨가 참 예쁘다.



프루스트 부인이 그에게 찾아준 것은 과거의 기억. 불어넣어준 것은 무엇이든 맞닥뜨릴 용기, 그리고 계속 살아갈 의지. 그리고 폴 스스로 찾아낸 것은 잃었던 말, 새로운 삶, 현재와 미래.

vis ta vie!

자 이제 우리가 수도꼭지를 틀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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